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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ug 16. 2021

(제주요가여행 2일차) 제주의 비바람을 지배하는자

햇빛은 지배못함

언젠가 세레나는 나에게 “언니가 제주도를 갈때마다 비가 오는 것 같다”고 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맑은 날의 제주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바로 그 전날까지 화창하고 심지어 기상 예보도 몇시간 전까지 화창하다고 했는데 내가 가는 날만 되면 제주도는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지연이 되곤 했다. 내가 여행하는 내내 비가 엄청 오고 내가 떠날 즈음에 하늘이 갰다. 아쉽게도 이번 요가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외에서 성산일출봉을 보고 하는 sunset 요가는 아쉽게도 취소되었으나 취다선 리조트의 차분한 분위기가 비오는 날에 더 멋지게 살아났으니, 그럭저럭 되었다.


여행 내내 계속해서 흐렸던 제주



3년 전부터 요가는 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지켜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내가 다니는 요가수련원은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고 주로 외국인 분들이 많이 오신다. 아무래도 평균적으로 서구의 외국분들의 운동 레벨이 한국인 여성에 비해 높은 터라 수업에서 요구하는 근력의 힘, 자세의 난이도 같은 것이 훨씬 더 많은 수련을 요구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수련원을 다니기 시작한 후 한 달 만에 지난 몇년동안 못했던 후굴 동작(Wheel Pose)을 성공했다.


후굴 동작


한국어와 영어로 유창하게 요가 수련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많이 없다. 아마 내가 알기론 우리 수련원이 유일할 거다. 서울의 혼혈이나 외국인, 이주민, 아니면 나같은 그냥 이태원 주민(…) 들은 이 수련원에서 마음껏 요가와 명상 수업을 즐길 수 있는데 제주도의 경우 이런 기회가 많이 없었나보다. 2박 3일간의 합숙 요가 수련에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생각보다 많이 왔다.


제주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거주한다. 그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도 있다고 한다. 한국의 치안 레벨도 좋은 편이고, 서울보다 더 많은 호텔리어 직군의 채용 수요가 존재하는 동시에 영어마을이나 국제학교의 영어 교사 직군도 채용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거주하는 이들은 제주도 천혜의 자연과 함께 거주하는 마을 아주머니들의 다소 과격한 인심, 서울보다 훨씬살기 편한 여유로움을 좋아한다. 내가 수업에서 만난 외국인 수련자들이(나 빼고 거의 외국인분들이었음) 모두 서울보다 여유로워서 살기 좋다고 말하는 걸 보면 서울에서 다들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다. 하긴 한국에서 나고자란 사람도 이 미친 working pace가 이해 안되는데… 삶의 질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그들에게 맞을 리가 있나.  


우리 수업의 시간표는 아래와 같았다.


첫날 빈야사 플로우와 사운드 바스, 댄스 플로우 수업을 마친 후 나는 룸메이트와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무료 차 체험을 했다. 다도를 정식으로 배워본 건 처음이다. 차 체험이 끝나고 각자 읽는 책에 대해서 룸메이트와 이야기를 하고 나는 밀린 일을(…) 했는데 요가 덕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몸은 피로했으나 딱 집중을 해서 끝내야 할 task를 마칠 수 있었다. 물론 다 끝낸건 아니지만, 어쨌든.

취다선 리조트는 원래 차와 명상 리조트로 아침 7시 반에 명상 수업을, 8시 10분에 요가와 동적명상 수업을, 저녁 19시에 또 다른 요가나 싱잉볼 명상 등을 요일에 따라 투숙객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우리 요가 수련원은 오전~ 오후 취다선 리조트가 수업을 열지 않는 시간에 수련 공간을 대관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거다. 따라서 원한다면 나도 우리 수련원의 수업 외에 취다선 리조트가 제공하는 다른 수업도 들을 수 있었는데, 두번째 날 8시 10분 아침 요가 수업을 신청했다.




8시 10분~9시 10분동안 아침에 뻣뻣한 몸을 깨우는 요가를 하고, 리조트 앞 식당에서 제공되는 호텔 조식을 먹었다. 제주들깨쑥떡국으로 속을 따듯하게 채운 뒤, 10시 반 요가 여행의 정규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됬다.  

오늘 10시 반 deep flow수업은 등과 허리, 복부의 힘을 단련하는 백밴드(Back-bend) 자세를 위주로 진행됬다. 보통 요가 수련원의 수업은 50분~1시간 내외로 구성이 되는데 이번 제주 요가 여행 프로그램에서는 넉넉한 시간이 있었기에 한 프로그램당 1시간 반 정도로 길다. 더 긴 시간 집중하고 더 높은 강도의 자세를 다양하게 훈련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백밴딩 운동이 워낙에 고강도인 터라 1시간이 넘어가자 조금 울뻔했다.. 낙타 자세는 역시 어렵다.


이어지는 1 수업은 사운드 바스(Soundbath). 한국인이 운영하는 요가원을 안다닌지  되서 한국에서 사운드바스라는 개념이 친숙한지 안친숙한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우리 요가원은 1  전부터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Gong(), 여러 크기의 싱잉볼, 프랑스에서 수입한 , 일렉트로닉 건반 등을 이용해 사운드바스 수업을 진행해 왔다. 사운드바스는 영적인 사운드에 둘러싸여 자신의 호흡과 내면에 집중하는 명상 기법이다. 주로 마일드한 수준의 요가 자세와 함께 진행된다. 긴장을 풀고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에 온전히 머물며 생각없이 숨쉬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사운드바스 수업을 좋아하는데, 내가 긴장을   있는 시간 거의 없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사운드바스 수업을  때마다 긴장이 풀리면 자꾸 잔다(…) 요가 지도자 선생님은 그것도 좋은 거라고 말씀해주시긴 하지만.. 이분이 친절하셔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건지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씀해주시는 건지는 모르겠다.

사운드 바스에 사용되는 악기들

댄스 플로우까지 수업을 마치고 또 한번 더 차 체험을 했다. 어제는 카페인이 없는 쑥 차였고 오늘은 어린잎 녹차였는데, 세작을 거친 녹차와 어린잎 녹차는 잎을 거두는 과정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잎의 특성에 따라 맛도 다르고 차를 우리는 시간 같은게 다 다르다. 어린잎 녹차도 맛있었다.


차 체험이 끝나고 샤워 후 나는 일을 좀 할까 했으나 갑작스럽게 1층 로비 베란다에서 맥주를 마시며 저녁을 먹는 자리가 생겼다. (취다선 리조트에서는 객실에서 식사가 금지되어 있다) 다행히 여름치고 그렇게 열대야도 아니었고 비도 그쳤기에, 밖에서 잠깐 맥주와 음식을 먹기 적당했다. 오스트렐리아에서 태어나 여러 나라를 거쳐 덴마크에서 거주하다 지금은 서울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톰, 내 룸메이트인 리지, 싱가포리안으로 제주도에서 호텔리어로 근무하는 또다른 리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식사자리를 가졌는데 함께 어떤 이유로 요가를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40대 초반 따듯한 심성을 가진 내 룸메이트인 리지는 유대인으로, 정말 정말 똑똑했다. 가끔씩 버벅거리는 내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듣는 언어적 능력과 함께 냄새와 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책을 읽고 미국 워싱던 DC의 정치 체계와 역사를 미국 역사 문외한인 나에게 간단 명료하게 설명해줄 줄 알고 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는 봉사활동도 제주도에서 하고 있다.


한국의 독립에 대한 역사와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같은 한국인도 잘 모르는 사실을 관심있게 물어보고 (내가 오히려 대답을 더 못함) 공부하는 자세는 정말 멋졌다. 리지처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용감하고 바르게 삶을 빚어 나가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저녁 식사자리는 리지 뿐만 아니라 멋진 삶을 사는 다른 이들과도 좋은 에너지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 자신의 또다른 의식을 깨우는 대화였다.  


세상은 넓고, 멋진 사람은 많다. 계속해서 내 자신의 바운더리를 넓혀가는 과정은 그래서 필요하다. 내가 삶을 더 단단하고 깊게 살아가기 위해. 내가 인생에서 중요시하는 가치를 재정립하는, 깊은 밤이었다.


2021-08-15 취다선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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