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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ug 18. 2021

지금 여기, 제주

@부르네 스테이

일반적인 여행기라면 첫날 불안하고 둘째날 적응하고 셋째날 개운한 마음을 가지는 플롯으로 진행되었을 거다. 하지만 역시 내 인생은 순탄치가 않아서.. 셋째날 아침은 유독 더 바람도 많이 불었고 갑작스레 시작된 Moon Cycle로 새벽에 몇번 복통으로 깼다.


3시에 한번, 5시에 한번 깼나. 더이상 자지 못해 7시경에 일어난 나는 성산일출봉 근처 해안도로길을 따라 조깅을 나왔다. 물론 컨디션이 안좋아서 가는 길만 달리고 오는 길은 걸어서 왔다. 오는 길에는 제주스타벅스에서만 파는 까망 라떼를 한잔 들고 걷자니 위로가 됬다. 돌아와서 씻고, 11 체크아웃에 맞춰 짐을 싼다. 체크아웃 이전에 30-40 정도 여유가 있어서 방에서 책을  읽다가 깜빡 잠이 든다.


아침 조깅길


이틀간의 연이은 운동으로 셋째날 수업은 다소 젠틀한 플로우로 구성이 된다. 11시 명상 수업, 12시 반 인&양 플로우다. 11시 명상 수업에서는 수련실 창 밖의 제주의 자연을 보면서 수련을 하고 이어서 인&양 요가의 시간이다. 요가는 선무도와 결합된 선요가, 음악과 함께 결합된 비트요가 등 여러 갈래가 있으나 가장 기본적인 중추는 인과 양(음과 양)이다. 양의 경우 에너지를 발산하는 빈야사와 아쉬탕가 등의 플로우를 포함하며, 인요가는 그와 달리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요가다. 몸을 이완하고, 교정하고, 긴장을 푸는 데 중점을 둔다. 오늘 12시 반에는 아쉬탕가 자세를 45분-1시간정도 하고, 이어서 인요가 자세로 수련을 마무리한다.


말짱한 컨디션으로 2박 3일간의 수련을 마무리했으면 참 좋았겠으나.. 집이 아닌 타지에서 겪는 생리통이라 그런지 더 요가를 해도 점점 더 심해졌고(보통은 적당한 정도로 몸을 따듯하게 하는 요가는 통증을 가라앉혀줌) 12시 반 수업 요가는 1시간 반 수업시간동안 말그대로 울면서 요가를 했다. 눈물을 훔치면서 하니까 옆에 있던 분이 좀 놀랐던 것 같다. 나중에 수업 끝나고 인스타 DM으로 연락해서 괜찮냐고 물어봐 주심..ㅠ


수업이 끝나고 수련생들과 다같이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나도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식은땀과 피로에 절어서 거의 헤롱헤롱한 상태로 비척비척 나왔다. 몇몇 수련생들로부터 제주 탑동 맥파이에 같이 가자는 초대를 받았지만 이 상태로 간다면 정말요단강을 건널것 같아서 정중히 사양을한다. 다행히도 룸메이트의 남편분께서 차를 가지고 픽업을 왔는데, 친절하게도 가는 길이라며 탑동광장까지 태워주셨다.


탑동 시내로 와서 병원에 들르고 어찌어찌 점심을 도시락으로 때운 다음 진통제를 먹은 후 죽은듯이 네시간을 잔다. 좀 기력이 살아나니 여유가 생겨서 앤디의 지인 분이 하시는 공항 근처 카페 겸 숙소 부르네 스테이에 간다.


부르네스테이 오트라떼. 달지않고 맛있다.


차분하게 오트라떼 한 잔과 함께 제주 서해안을 내다보며 일기를 쓰고, 브런치를 쓰고, 차마 마무리 못한 업무를 마무리하고 내일 보낼 이메일을 예약한다. 진통제를 삼키면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다쿠아즈 하나를 서비스로 내어 주셨다. 부르네 스테이 감사합니다 ㅠㅠ 카페 주인 분의 인심 덕에 자칫 개고생으로 끝날 뻔한 요가 여행이 조금은 달콤해진다.


나원 참. 이래저래 많이 지친 나, 괜찮아질수 있을까? 라는 물음으로 제주에 왔는데 이젠 그런 고민이고 나발이고 그냥 우선 안전하게 서울이나 가고싶은 마지막 날이었다. 내 인생이 그렇지, 라며 체념일지 인정일지 모르겠을 감정을 느낀다.


근데 정말 역설적이게도, 그 자체가 정답일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괜찮아질지 안괜찮아질지 미래를 걱정하는 건 하등 쓸모가 없다고 말이다. 우리는 걱정을 참 많이한다. 이러면 미래에 안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내가 예전에 좀 다르게 행동했다면 달랐을까, 내가 지금 어떻게 행동을 해야 나중에 괜찮아질까? 안괜찮아지면 어쩌지? 이딴건 다 쓸데가 없다


실존적인 고민이고 미안함이고, 과거의 여러 사건들로 인한 감정부채이건 간에 일단 나부터 지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일단 다 먹고살자고 하는거 아니야? 아프지 말고 더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산다.

 

 항상 그렇듯이, 우리 자신이 고민하는 인생의 답은 외부에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답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지 않다. 적어도, 나는 여기 지금 살아있다. 그러면   아닐까.


지금 여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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