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게스트하우스 위크엔더스의 스탭이었다가 어느새 요가 강사로 다시 등장한 민경쌤의 강릉 요가 수업을 들으러 금요일 반차를 내고 훌쩍 떠났다. 내가 알던 민경쌤은 귀엽고, 발랄하고, 작고 요정같은 20대 초중반만이 가질수 있는 느낌이 뿜뿜한 스탭이었는데, 훌쩍 요가선생님이 되어 나름의 단단함과 고민으로 한결 성숙해진 아우라를 뿜고 있었다. 곧 3월에 몸집 이라는 요가 스튜디오를 강릉대로에 연다고 했다. 요가 티티시를 몇개월만에 따고, 1:1 요가강습을 하다가 워케이션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이젠 요가원장님이 되는 민경쌤. 아, 이래서 도전적인 환경에 자신을 밀어넣는 사람들이 훅훅 성장하는 법이구나.
결국 해내는 사람들은 이렇다. 합리적이기보다는 도전적이다. 나도 저런 빛나는 용기를 가졌던 적이 있었을까. 머리가 굵어져버린 월급쟁이 7년차들은 사이드프로젝트를 그저 주말에 할 뿐이고, 잘되면 퇴사하고 이건 보험이지라는 접근이 더 합리적이고, 일반적이다. 영어를 배우려면 미국땅에 훅 떨어져보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듯, 역시 사람이 성장하려면 정말 Skin in the Game 을 하는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민경쌤을 만나서 강릉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민경쌤은 강릉을 아직 젊은이에게 기회가 남은 땅 이라고 했다.
"그래도 강릉은, 아직 기회가 있잖아요. 서울과 다르게 긍정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강릉에 젊고 감각적인 카페와 차방, 공간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 국내여행 특수와 KTX 의 접근성, 동해의 푸르름이 겹쳐 강릉은 지난 부동산 하락사태에도 꾸준한 트래픽과 수요와 기대로 상가와 집값이 계속 올랐다.
서핑하러 자전거타러 1년에 한번씩은 오는 강릉인데 올해들어 그 변화가 두드러졌다. 강릉에 디지털 노마드와 "힙"한 문화를 가진 디자이너 등등이 모여 강릉의 청년모임 솔방울 https://www.instagram.com/sol.bangwools/ 이 생겼고,
한국과 일본의 차를 큐레이션해서 향과 차와 함께 시간을 만끽할수 있는 시만향/시만차 카페까지. 원래 강릉의 젊은 감각의 레저/액티비티/워케이션을 이끌었던 위크엔더스 가 유일했던게 불과 2년 전이다.
이제껏 서울을 사랑했다. 서울. 강한자만 살아남는 나라의 수도. 10대 후반 상경 이후 앞만 보고 달린 나는 그 모든것을 밟고 올라갈수 있는 기회를 좇았으며 아직도 서울의 눈물과 기회를, 그 잔인함을 사랑한다. 아직도 나는 더 나아가고싶고 살아남아서 그 최정상에 섰으면 좋겠다. 서울이야말로 대도시고, 대도시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없다고 힘들었던 적은 나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주위에게도 세상일이 다 그렇고 힘든건 어찌되었든 변명이라고, 더 채찍질해야한다고 여겼던 내 sterotype이 한순간에 깨졌다.
맞다. 서울은 기회가 없다.
강릉은 청년이 자립하기에 비교적 완전한 환경이었다. 없진 않겠지만, 부동산을 빌리거나 임대하거나 적응할때 적은 텃세와 강릉 관광도시로서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는게 맞다라는 환대, 청년을 성장시키기 위한 모험, 등쳐먹지 않는 구조 속에서의 투명한 보상과 뜻밖의 행운.
서울에서는 모두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23살, 월에 30만원 다세대 주택에 들어가려고 돈이 없어 택배박스에 이삿짐을 싸서 택시를 타고 짐을 1층에 내려놓고 첫번째 노트북 가방을 3층 방에 올려놓고 1층에 내려와보니 이삿짐이 도둑맞고 없었다. 주위 상가에 내 짐을 못봤느냐 물어봤는데 다들 모른다 했다. 알고 보니 쓰레기 고물상 할머니가 그 짐을 다 쏜살같이 가져간 모양인데 그 할머니와 함께 산 동네 분들이라 모른척 했던 거였다.
달에 70만원으로 밥먹고 책사고 교통비하고 학교를 다니고 알바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영어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가난한자들이 가난한 자를, 더 순진무구하고 영악하지 않은 자를 착취했다.
서울은 역사적으로 각 지방과 수도권의 젊은이, 그리고 서울 토박이의 젊은이까지, 기회를 찾아온 젊은이들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랐다. 야근했고, 투잡을 했고, 45만원 이내의 다세대 주택에서 집같지도 않은 집에서 살고 매일 노력하고 공부했다. 그렇게 어느정도 먹고살만한 돈을 모은 사람들은 주위 신도시로 떠났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더욱 열악한 기회의 조건에 생존싸움을 하러 덤비는 새로운세대의 젊은이가 채웠다.
강릉은 그래도 몇천만원의 돈으로 상가를 임대할수있고, 자기 공방을 만들수 있고, 지속가능한 커뮤니티와 비즈니스를 만들고자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모든 문화가 살인적인 물가와 지대에 위협받지 않는다.
내 주위에 대학졸업 이후 주거에 드는 허리휘는 현금흐름과 그 땅에서 내가 얻을 기회들을 합쳐봤을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서울살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집사기어려운 세상에 학자금 대출과 세상에서 가장 높은 가계부채를 짊어진 밀레니얼과 Z세대는 노마드 문화, 외주문화, 워라밸 문화와 경제침체가 이상하게 겹쳐 4대보험과 살만한 월급을 제공하는 일자리, 대기업 대졸공채가 사라졌다. 정부에서 푸는 돈은 공공연하게 3년이면 없어지는 돈, 눈먼돈이 됬다. 공무원들 보고서 쓰는 돈이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돈이 아닌거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여전히 힘없고 약하고 어린 자들에게 잔인하다. 과연 대도시는 여전히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가.
참고 -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6868883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강릉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3024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