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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Mar 16. 2023

2월, 강릉 (2) 고민할 기회

<2월, 강릉 시리즈>

(1) 기회의 땅은 어디로

https://brunch.co.kr/@jessietheace/538

(2) 고민할 기회

(3) 가난이 무서운 것은 내가 가난하다는것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민할 기회

민경쌤이랑 하타와 프리야 빈야사를 섞어서 금요일 저녁 1시간 반 수련을 지도받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요가 수업, 이어지는 차담도 물흐르듯이 이루어져서 그런지 대화의 주제도 물흐르듯이 이루어졌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취업해서 회사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살다가는 인생의 변화없이 쭉 이렇게 살것같았다고, 그렇다고 대기업이나 뭐 사회에서 알아주는 포지션인것도 아니고 이게 맞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렇게 회사를 그만뒀고, 그 이후로도 뾰족한 수나 방법을 빨리 찾지는 않아 이리저리 거닐었던 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게 뭔지 생각을 많이 못해봤던거 같아요. 집을 나와서 독립한다라는 생각도, 요가원을 차리는 생각도 최근에서야 급격하게 했고, 변화가 생긴거고, 이제까지는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될지 모르겠는데 그런걸 고민해볼 기회가 없었어요."


민경쌤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을 "기회" 라고 했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싶은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은 고생도, 자격지심도, 억울함도 아닌 기회라고. 정성을 다해야하는 순간이자 누군가에게는 평생다가오지않을수도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행운같이 찾아오는 그런 기회.


내가 이제까지 로컬 출신으로서, 나아가고싶은 지향상은 높은데 가진게 없어서 힘들었던 지난 20대의 10년이 그 순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최선을 미친듯이 다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해 고통스러웠던 순간, 긴긴 밤 부모님 친구 연인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눈물로 지새웠던, 프랑스어 자격증을 따려고 시골의 외국어고에서 밤을 새웠던 그 많은 뜬눈의 밤들, 마음이 가난하지 않았던 안정된 가정에서의 정서적 빈곤없는 친구들이 부러워 알게모르게 남아있었던 내 마음속 자격지심을 뛰어넘기 위해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순간, 스펙과 백그라운드가 없어 그저 모든순간 이악물고 여기까지 올라왔던 그 모든 외로움은 사실 기회였구나. 내가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 만들어주었던 기회.


다음날 두번째 수업에서 민경쌤은 요가 시작 전 수련의 방향을 정하기전에 엽서 한 장을 주면서 자신의 비전보드를 보여주었다. 요가의 수련이란 매트 안에만 있지 않다. 나도 민경쌤의 요가 매트 안과 밖을 이어주는 에센스가 궁금했었다. 선생님은 비전이나 Goal이 너무 거창하고 목표지향적이고 무거워 보여서 새로운 단어를 찾다가 "봄꿈"이라는 단어를 만났다고 했다.


봄꿈

 1 봄꿈  : 봄날에 나른해져 깜빡 잠든 사이에 꾸는 꿈.

 2 봄꿈  : 달콤하고 행복한 것을 그려 보는 꿈.


그리고 내가 요가 수련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뭔지를 물어봤다. 나의 봄꿈은 뭔지.


아, 이 사람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꿈이구나. 달콤하고 행복한 봄날에 꾸는 나른한,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그 어느순간보다 투명하게 깨어있는 과정. 이제껏 해왔던 지난한 정체성찾기는 투쟁과 전쟁의 과정이었다. 그래 내가 원래가 호전적인 스타일이긴 했지, 생각하며 살짝 웃었다.


부모님의 갱년기와 인플레이션과 수많은 인생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서른살의 2월에 봄꿈같이 삶을 펼쳐나가는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다. 그렇게 요가 수련을 하고 다시 서울로 나는 돌아왔다.


고민해볼 기회, 라는 단어가 얼마나 내 마음 속에 심쿵하게 다가왔는지 이사람은 알까. 단어 하나하나의 선택에 사람은 무심결에 자신의 가치관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구나. 긍정적으로 사는건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좋은 법이다. 2년 전 문득 마음 속에 떠올랐던 답처럼 수천 수만번 물었던 질문의 답은 결국 우리 자신이었다. 요가원을 차리며 불안하기도 설레기도 하다라는 민경쌤은 기회를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지금, 기회라는 강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강릉에서 가장 따듯하고 단단한 요가는 -> 강릉 몸집 (instagram: @yoga.mo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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