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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Mar 26. 2023

3월, 미국: 내가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3) 피터

결국 모든건 용기의 문제다

*이  글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커피챗, 사적인 대화, 경험에 기반합니다. 제가 속한 회사, 단체, 공식일정과는 그 어떤 연관성도 없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구성 역시 2주간의 미국 일정 중 시간 순서가 아닌 비슷한 느낀 점을 주었던 분들의 대화를 엮어서 구성했기에  시리즈에 나오는 사람들을 순차적인 만난 것도 아닙니다.


3월, 미국 시리즈 (내가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

(1) 제롬 / 아, 왜 이래서 미국오는지 알겠다

https://brunch.co.kr/@jessietheace/543

(2) 제제 / 시장의 크기와 인플레이션

https://brunch.co.kr/@jessietheace/547



죽을것 같은 해외 출장에도 따듯한 햇빛 몇줄기와 살아날 구멍은 있었습니다. 출장 기간 중 주말을 활용해서 지금은 LA에 살고있고 CalArts (California Institude of Arts) 를 지난 가을에 졸업한 피터를 만나러 갔습니다. 피터는 제 23살 시절부터 함께한 대학시절 친구인데, 그당시 광고회사 지망생이던 저는 늘 예술적인 감각이 있고 개같이 힘든 시간을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힘이 있는 피터가 항상 부러웠죠. 좋은 영향도 많이 받았고, 제 광고회사, 스타트업, 이전 외국계 대기업, 지금 회사까지 저의 성장기와 바닥치던 시간과 좋았던 시절을 모두 함께한 친구입니다. 대학 졸업후 피터는 칼아츠로 날아가 자신에게 잘 맞는 환경에서 날개를 펼치며 자신의  삶을 꾸려 갔습니다. 정말 공통점 없는 사람들도 다 어울리게 만들어버리는 피터가 LA로 가버리자 서울에 남겨진 사람들이 다들 심심하다고 하더군요.



LA로 도시를 옮겨 주말을 지내는 거기 때문에 숙소를 예약해야 했는데, 전부터 눈여겨본 LA 다운타운에서 제일 힙한 프리핸드 호텔 (https://freehandhotels.com/los-angeles/) 로 숙소를 잡았습니다 (물론 사비입니다..) 킹 침대가 하나 있는 스탠다드형 객실이 130불 (15만원) 선이라서 LA 다운타운 치고는 아주 합리적인 가격인데 결국 예약을 미루고 미루다 늦게해서 바빠서 정신이 없어가지고 하루전에함 어쩔수없이 4인 도미토리로 가긴했지만 대학생때 생각도 나고 좋았습니다. 혹시 LA에 가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프리핸드에 꼭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오래된 친구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그사람과 있을때 만큼은 내가 내 오래 전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인이 되면서 우리 모두는 크고 작게 단미 斷尾 의 과정을 거칩니다. 아이유가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 어른도 아이도 아닐때가 그저 나 일 때라고 했었죠.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꼬리를 자르고, TPO에 맞는 옷을 입습니다. 조금씩 내 자신은 어른이 되어가고 사회에서 무시받지 않고 자신이 뜻한 바를 펼치기 위해 강한 사람이 되죠. 강할 필요도, 현명할 필요도, 무언가가 될 필요 없이 그저 나일 때의 모습은 조금씩 탈곡이 됩니다. 오랜만에 피터를 만나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몇번씩 본적도, 밤 새워서 술마신 적도 있었고, 그리고 몇달, 몇년만에 한번씩 보던 시간에 쌓여서 우린 둘다 삼십대가 되었는데 왜 항상 다시 만나면 우린 20대 중반, 초반같은 걸까요?


겨울 끝 즈음인데도 인데도 맑고 화창했던 LA DT


결국 모든건 용기의 문제다

노스 할리우드에서 펍에서 위스키와 와인과 칵테일을 섞어마시며 각자 살아온 이야기와 서울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저는 어느새 이직을 해서 이태원 전세집 4년차가 되었으며 (물론 대출이 다지만) 차도 샀고, 미국출장을 왔습니다. 대학에서 밤새서 같이 과제하고 놀던 다른 사람 누구들은 결혼을 했습니다. 피터는 어느새 졸업을 했고, 학위가 하나 더 생겼으며, 조교 생활도 했고(자랑스러워!), 자신에게 맞는 국가에서 자신에게 맞는 디자인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었죠.


아마존 프레시에서 위스키를 하나 더사서 피터가 룸메이트들하고 같이사는 집에 가서 2차를 했습니다. 룸메이트들하고 인사하고, 너무 사실 그때 술취해있던 상태라 분명히 인사했는데 뭔이야기했는지 그분들 이름도 기억이 안나네요. 하여튼... 피터가 살고 있는 방에 붙어있는 졸업 전시 포스터, 학교에서 했던 작업물들, 침대 매트리스, 방의 구성을 보는데 유학생의 방 그 자체더군요. 그 모든것에 순수하게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 내 작업물에 대한 고민, 나아감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이 묻어있었습니다. 전세대출 알아보고 주말에 생명보험 갱신하고 신도시 청약 알아보는 저희 집과는 많이 달랐던것 같습니다. 아, 나도 이렇게 살았던 때가 있었는데.


연남동에서 방송작가 지망하던 룸메이트와 집을 고쳐 가며 살았었던. 그때 피터도 연남동에 살아서 밤 11시에도 술을 퍼마시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술 그 자체였던 노스 할리우드의 밤


그렇다고 철없이 나도 공부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유학을 와도 피터처럼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지 못했을 거같아요. 늘 노심초사하고, 걱정하고, 불안했겠죠. 피터의 방을 보면서 결국 모든건 용기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거라고요.


사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외국계 회사를 연달아 2개째 다니면서 해외진출에 대한 생각을 안했던 건 아닙니다. 광고회사 다닐때도 별의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호주나 이런 곳 가서 디자인 배워서 퍼블리셔를 할지, 미국에서 학위를 하나 더 받을지, 하고싶은 게 참 많았던 시절이고 지금도 하고싶은게 참 많습니다...


어느날 저와 비슷한 연차의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맨날 해외 이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왜 안하고 있느냐. 1) 비자 2) 영어 3) 전문성


비자는, 비자 스폰서십 있는 회사와 인터뷰를 봐서 잘 협상하면 될거고, 호주나 싱가폴같은 외국인 채용이 어느정도 관습화되어있는 나라에서 못할 것도 아니고, 영어는? 뭐 지금도 영어로 잘 일하고 이야기 잘 통하잖아. 전문성이 사실 어떻게 보면 제일 문제입니다. 계속 일을 할거니까 거기서의 네트워크도 중요하고 보내온 시간도 중요한데, 이건 개발자나 엔지니어, 기술 가진 사람들에게도 중요합니다. 내가 일하고자 하는 커뮤니티와 회사가 얼마나 건강한지, 몸담고자 하는 사업체가 시장에서 어느 포지션인지도 크고, 이건 제너럴리스트들에게는 더 크리티컬합니다.


저는 그때 전문성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전문적으로 내 경력이 쌓여야하는데 지금 내가 이 커리어 트랙을 타고 갈거면 나는 아직 한국에 있어야 된다.


과연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어떻게든 바닥부터 시작하면 하겠죠. 저는 그냥 바닥부터 시작하고싶지 않았던 겁니다. 어떻게 내가 이만큼 돈 모았는데, 한국에서 이만큼 올라왔고 인지도 쌓았는데. 취미와 자기계발과 일과 삶의 균형도 드디어 어느정도 맞췄는데. 한국에서 지난 10년넘게 치열하게 산만큼 어찌되었든 그때보다는 숨통이 트였습니다. 저는 그걸 놓고싶지 않았던 거죠. 만약 제가 미국 진출을 한다 하면 영어도 다시 세련되게 다듬어야 할거고, 통장에 잔고는 떨어져 갈거고, 적응하고 자리잡으면서 알게 모르게 겪는 불편함(제가 서울에서 자리잡으며 겪었던 불편함들)을 지난 10년 넘게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처음부터 하기에는 지금의 시점이 적절하지 않았던 거죠.


안되는건 없었습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거지. 그 반례로서 제 눈 앞에 피터가 서 있었죠. 학교에서 까다롭기로 소문난 교수의 조교생활을 성실하고 성공적으로 해내고 그 대학커뮤니티 안에서 네트워크도 만들고, 다음 커리어 스텝도 차분히 밟아보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내가 안하는 거다라는 걸 깨달으니까 마음이 가벼워지고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하면 나중엔 어떻게든 될거라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나는 어떻게든 할수 있다. 그러려면 지금 뭘해야할까. 토스트 마스터즈도 더 자주 나가고, 미국이나 여러 해외 등지에서 네트워크도 만들고, 영어 블로그도 더 자주 쓰고, 돈도없고 백도없으니까 우선 더 유능해져야 되겠죠... 투자공부도 좀더 해야되고, 마음수련도 더 단단하게.


유학이나 여행, 해외진출, 놀랍게도 꼭 해외 관련 아니더라도 인생의 많은 문제들은 사실 돈과 시간의 문제를 떠나서 용기의 문제입니다. 내가 그거 다 책임질 용기. 돈이 떨어지면 그 다음에 어떻게 벌건지, 한국에서 어떤 시간만큼 공백이 생기면 다시 돌아와서 어떻게 경력 공백을 이겨낼건지. 이겨낼거면 다 이겨낼수 있어요. 물론 계속 일을 한 사람에 비해서는 밀릴 수도 있겠죠. 잠시 그 패널티를 감수하고 인생 길게 보고 그걸 감수할만큼 추가적인 공부나 경력을 쌓는게 싫은 겁니다. 잃기 싫은 거죠. 그럼 본인이 정말 원하는 건 여행이나 해외진출이 아닐 수도 있어요. 주어진 곳에서 성실하게 자리잡는게 나에게 첫번째 우선순위인거죠.



피터를 인천 송도에서 처음 만났던 22살.. 정도 되었던 시절이었을까요? 아무것도 없어서 저는 그 시간이 힘들었는데 피터는 아무것도 없는 그 시간을 자신의 색으로 채우며 살았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스스로 일을 망쳐버리던 미숙함과 조급함으로 가득차있던 20대 초반의 저에게 너는 열심히 하고 감각이 있다고 말해 줬습니다. 자신을 믿고 한발씩 건강하게 삶을 펼쳐나가는 사람들, 질레질레 자기 인생도 못챙기면서 다른 사람 쑤시지 않고 자신의 에너지를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시킬 수 있는 사람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까지 자신이 좋아하는게 뭔지, 사회가 나를 바쁘게 몰아쳐서 놓고 있었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사실은 내가 부지런하지 못해서, 내가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는 근육이 발달하지 못해서 놓고 있었다고 저절로 부드럽게 깨닫게 하죠. 그리고 나의 감각을 찾아가게끔 합니다.


4년 전 인도네시아에 여행을 갔을때 드로잉을 해서 피터에게 보내준 적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그림실력이 좋다고 했고 그 이후로 조금씩 드로잉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미루고 미뤘죠. 더이상 내가 하고싶은 것에 게으름을 부리지 말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LA에서 피터를 만난 것은 저에게 미루고 있던 많은 것들에 문을 깨 부숴 주었어요. 그 중하나 small step으로 아이패드 드로잉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하나씩 아래 인스타 계정에 올려볼까 해요. 종종 놀러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thejessiedr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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