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을 해볼까?
설명회 당일이 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귀차니즘이 바이러스처럼 온몸에 퍼져 나갔다. ‘아, 가지 말까? 공짜면 진작에 안 갔을 텐데. 어떡하지...’ 나는 서서히 날 지배하려는 귀차니즘을 물리치고 용기 있게 발걸음을 뗐다.
‘아냐, 낸 돈 아까우니까 한 번 가 보자!’
지하철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모임 시간이 몇 분 지나 있었다. 나는 나의 짧은 다리를 재촉하며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은은한 조명으로 거리를 밝히는 작은 식물 가게가 보였다. 가게에 들어가니 이미 서너 명이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차와 쿠키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식물 집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식물이 가득한 공간에 생기가 넘쳤다. 선생님은 어떻게 창업을 시작했는지,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예쁜 식물이 가득 차 있는 공간의 주인인 선생님이 내심 부러웠다. 별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는데 설명회가 진행될수록 수업을 빨리 듣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편안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직장이나 일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꽃과 식물이 너무 좋아서 회사에서 짬을 내어 식물을 돌보는 사람,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식물 관련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공감이 되면서 이런 모임을 또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평일 오후와 저녁에 강사 일을 하고 있었다.
'평일 오전이나 주말에는 다른 일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투잡으로 해도 되잖아'
설명회가 끝나고 가게를 찬찬히 둘러봤다. 난생 처음보는 신기한 식물들로 가득했다. 화원에서 보는 것과는 식물의 분위기가 달랐다. 고급스러운 유리 화기에 담긴 식물들은 굉장히 우아했다. 덩달아 가격도 고급스러웠다.
'우와, 이렇게 비싸다고?' 1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표를 보고 내심 놀랐다. '이거 식물은 얼마 안 하는데 화기나 식물 디자인 때문에 비싼가? 이거 3개만 팔아도 돈이 얼마야? 혼자 속으로 '돈돈' 거리며 구경을 이어갔다. 처음 보는 식물부터 신기하고 진귀한 식물과 소품들까지 안 예쁜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이곳은 나에게 신세계였다. 가게 한쪽에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가게에서 전시도 하네. 여기 진짜 너무 멋있다. 또 오고 싶어. 여기서 배우고 싶어!'
혼자 가게에 남아 실컷 구경하고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뿌듯하게 여름휴가를 잘 마무리한 금요일 밤이었다. 번역가가 되기 위해 영상 번역, 출판 번역을 배우느라 1년 넘게 시간을 보냈는데 그동안의 시간이 오히려 값지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매다 보니 이렇게 새로운 식물의 세계를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몽글몽글했다.
영어 강사를 관두고 싶어서 번역 공부를 하던 중이었는데 이참에 식물을 배워 뭐라도 해볼까 싶었다. 선생님께 배울 게 무궁무진해 보였다. 우리 동네에는 이런 식물 가게가 없는데 내가 하나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화분 배달만 다녀도 괜찮을 것 같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래, 혹시 알아, 식물이 번역보다 재밌고 돈도 잘 벌게 될지?'
* 안녕하세요. 이 글은 6-7년 전 일을 바탕으로 쓴 글이에요. 현재 출간 예정중인 책의 일부를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정글라’라는 식물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투잡에서 전업가로 전향했습니다. 문의가 종종 있어 이렇게 글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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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