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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안 Jun 08. 2023

식물 킬러 대탈출기

식물 가게 말아먹는 상세 페이지

식물을 키우다 보면 완벽에 가까운 환경에서 키우더라도 얼마든지 시들 수 있다. 어쩌면 자연의 순리이고 우리 손으로 완벽하게 컨트롤되지 않는다. 식물 키우기에 자신감이 좀 생기자 쉬운 식물보다는 예쁜 식물에 관심이 갔다.


식물 킬러 타이틀이라도 벗은 듯 SNS에 유명한 금손 식물 집사의 계정들을 ‘눈팅’하며 갖가지 식물에 꽂히기 시작했다. 수형이 예쁜 야생 초목, 호주와 뉴질랜드산 야생화, 외국에서 수입되는 희귀 식물 사진을 보고 있으면 다 사고 싶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식물을 찜해 두고 식물 이름을 알아낸 뒤 검색창에 이름을 두드려 봤다. 좀 더 싸게 살 방법을 궁리하여 소위 득템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중적인 식물이 아닌 경우에는 키우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금손들이 SNS에 올려둔 유명 식물 게시글에서 관리법이나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온라인 스토어를 뒤졌다. 하지만 상세 페이지에는 식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아 꽉 막힌 고속도로처럼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실내에서 키우기 어려워 보이는데 어느 정도의 빛과 습도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애매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직간접 광이나 적당한 양지나 반 양지’라는 말은 머릿속에 물음표 하나를 더 추가해 줄 뿐이었다.




이제 입장이 바뀐 지금의 나도 상세 페이지를 읽는 이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을 수도 있다. 온라인 스토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간단명료하게 작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변명이다. 그래서 ‘코로키아 Corokia’라는 호주 야생화를 예로 들어 상세 페이지를 ‘가상’으로 써봤다.


‘실내나 베란다에서는 심지어 남향이라도 키우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바람이 부족하면 서큘레이터를 하루에 2~3시간이라도 틀어 주시고 빛이 부족하면 식물 조명등을 설치하세요. 조명등도 기능별로 종류가 다양하니 잘 검색해 보시고 식물에게 필요한 광도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도 창문이나 베란다 ‘미세 먼지가 많은 날이라도 창문이나 베란다 문을 열어 환기를 자주 해야 합니다. 계속되는 겨울철 한파로 인해 베란다에서 빛을 듬뿍 받던 식물을 실내로 들이면 1~2주 만에 갑자기 고사할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세요. 10년 공들인 탑이 한 방에 갑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식물을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써 놓을 리 없다. 그리고 혹여 누군가가 과학적으로 완벽한 가이드를 해준다고 해도 날씨 변화나 키 우는 사람의 물리적 환경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완벽에 가까운 환경에서 키우더라도
식물은 얼마든지 시들 수 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순리다.



초보 식물 집사들이 금손 집사들의 식물을 원한다면 같은 식물을 2~3개는 연속으로 죽일 각오를 하고 식물을 탐해야 한다.




그래도 식물과 빛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통 창문은 반음지 관엽식물에게는 적당하지만 야생 초목이 살기에는 좀 부족할 수도 있는 빛이다.

미국 메시추세츠주 여행중 들어간 식물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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