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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안 Aug 10. 2022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이유

식물의 유혹

내가 식물 킬러 딱지를 떼기 시작한 계기는 번역 공부에 매진 중일 때였다. 10년 차 영어강사였던 나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번역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영어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영어는 기본이고 한국어 글쓰기 실력까지 좋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대로 한국어로 된 책도 이것저것 열심히 봐야 했다. 번역이 잘된 글을 보고 싶어서 번역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우연히 잡지 <나우 매거진>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도시를 주제로 다룬 잡지였는데 한국어와 영어 텍스트 일부가 한 권에 다 들어있어서 번역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구매를 했다. 물론 내용도 끌렸다.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다룬 내용이 나왔는데 멋있게 생긴 사람들이 행복이 가득한 얼굴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옆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게 있었다. 바로 식물이었다. 


'역시, 저 동네 힙스터들은 다르네'


나는 당장 우리 동네 꽃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본 것은 식물이었는데 난 동네 꽃집을 찾아서 꽃과 꽃병을 사 와서 내 책상에 꽂았다. 식물과 화분이 아닌 꽃을 샀다는 게 이상하면서도 내 눈앞에 생기 있는 존재를 두고 싶은데 내가 아는 건 꽃이 다였을 거다. 식물은 언제나 내 손에 죽어 나갔으니 내 무의식 속에 생기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나 보다. 


그렇게 책상 위의 꽃을 시작으로 우리집 구석구석을 꽃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우리집이 꽃집인지 사람 사는 집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꽃에 대한 내 집착은 과해졌다. 다행히 그 집착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매일 책상 위의 꽃을 바라볼 때마다 너무 행복했지만 매일 조금씩 시들어가는 꽃을 보면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결국 4-5일이 지나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꽃을 보며 조금씩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어여쁜 꽃들이 고개를 떨구며 잎이 녹아내리는 동안 아랑곳 하지 않고 버텨주는 존재들이 있었는데 바로 초록잎이었다. 화훼 시장에서 소재라고 부르는 이파리들은 꽃병에서 꽃보다 훨씬 오래 생존했다. 그다음부터는 또 소재들에 꽂혀서 꽃보다 잎을 더 많이 사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잎만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꽂이를 해둔 잎들이 꽃보다는 오래갔지만 결국에는 시들어 또다시 쓰레기통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식물과 이별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소재를 파는 꽃시장 사장님중에 화분을 같이 파는 분이 계셨다. 


'물꽂이 하는 식물보다는 오래 살겠지?'


식물을 어떻게 키우는지도 모르면서 용감하게 식물을 샀다.

결국 나는 집에서 가까운 화원을 검색해서 차를 몰고 갔다. 


'10분 거리에 화원이 이렇게 많다니 너무 좋은데!'


나는 새로 사온 식물들을 당당하게 베란다로 모셨다. 대충 3일 만에 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물을 주자 식물을 시들기 시작했다. 식물이 시들어가자 새로 또 사들이기 시작했고 꽃이 피는 식물까지 사들였다.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열정만 가득했던 식물 킬러였다.


하지만 그 예쁘던 식물들이 시들자 이번에는 생명을 죽인 것만 같아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다음엔 화원 사장님께 어떻게 키우는 건지 꼭 물어봐야겠어.'


물론 돌아온 답변은 결국 3-4일에 한 번이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인터넷에 식물 이름을 쳐서 식물 고수들의 노하우를 읽어봤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도 검색하고 SNS에서 예쁜 식물 사진들도 염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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