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면 다큐가 된다

채소를 키워보겠다는 야심

by 정글안

올해도 채소 모종을 샀다. 매년 실패를 하면서도 꾸역꾸역 플라스틱 모종판에 이것저것 골고루 담았다. 화원 사장님께 모종 이름을 읊어달라는 주문까지 하며 휴대폰 녹화 버튼을 눌러 영상도 손에 넣었다. 늘 이렇게 시작은 당당하다. 호기롭게 모종을 트렁크에 싣고 작업실로 돌아와 희망찬 내일을 꿈꾼다. 꿈꿨다.


지금은 반이 휴지통에 가 있다. 식물 꿈나무들에게 너무 잔혹한 동화 같겠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내 드림랜드 채소들이 휴지통으로 직행한 이유는 해충 떼의 습격 때문이다. 꽃상추, 양배추, 케일, 청 로메인, 아삭이고추, 당근, 가지, 토마토, 방풍나물, 옥수수, 미나리, 체리토마토, 딸기, 당귀를 샀다. 일부는 수업 실습 재료로 쓰고 일부는 집에서 키웠다. 그중 아삭이고추, 가지는 해충이 잎을 다 뒤덮는 바람에 식물용 살충제를 뿌렸지만 또 번식하는 해충을 막을 길이 없었다. 딸기는 흐름에 올라타 해충에 서서히 지배당하면서 서서히 시들어갔다.

잘 키워서 먹어보려고 흙도 유기농으로 샀지만 결국 이렇게 됐다. 나의 꿈은 또 일부 막을 내려야 했지만 토마토는 알이 점점 커지고 있고 해충도 생기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된 흙에 심지도 않았다는 고해성사를 한다. 체리토마토는 예쁜 꽃만 피고 옥수수로 위로 쑥쑥 자라고만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식물에게 필요한 영양공급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관엽식물처럼 물 주고 통풍만 신경 쓰며 키울 만한 식물이 아니다. 토마토 친구들에게 애정이 많이 생길 것 같다. 옥수수는 언제쯤 열매가 생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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