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쇼핑의 시작
매일 꽃 사진을 찍었다. 당시 말로 '소확행'이었다. 꽃을 보고 있으면 나도 반짝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꽃집의 단골이 되었다. 꽃집 사장님과 편해지면서 화병 꽃꽂이 수업도 들었다. 예쁜 유리병에 꽃을 꽂으며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아한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꽃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더 다양한 꽃을 보고 싶어서 강남 꽃시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돌아와 거실에 사 온 꽃들을 풀어헤쳐 두는 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했다. 우리 집은 꽃밭이 되고 있었다.
얼마 뒤 집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꽃들이 모두 휴지통으로 가는 루틴이 생겼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싱싱한 꽃들이 시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 면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꽃이 너무 좋 아서 꽃시장을 계속 오갔다. 싱싱한 꽃을 오 래 보려고 한여름에 외출할 때는 집에 에어컨 예약을 걸어 두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더 오 래가는 꽃을 알아내려고 우리집 휴지통에 누 가 꼴등으로 도착하는지 눈여겨봤다. 마지막 주자는 소량으로 샀던 이파리들이었다.
꽃시장에서 ‘소재’라 불리는 식물 잎이 제일 오래 살아남았다.
내가 처음 꽂힌 소재는 대형 ‘셀럼’이다. 셀럼과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꽃집에 들른 어느 날, 셀럼은 화려한 꽃들 사이로 혼자 우두커니 유리병에 꽂혀 있었다. 선반 꼭대기에서 혼자 넓은 잎자락을 뽐내며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사장님, 저건 뭐예요?'
'아, 이건 셀럼이에요'
'살게요. 너무 멋있어요'
집에 있던 대형 유리 화병에 왕건이 잎을 꽂아 두자 순식간에 내 방이 휴양지로 바뀐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꽃이 아닌 소재에 꽂히기 시작했다. 꽃은 길어야 일주일인데, 소재는 2주도 너끈히 처음 모습 그대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꽃은 조금만 사고 소재들을 왕창 샀다. 코끝이 시원해지 는 ‘유칼립투스’부터 이국적인 분위기의 ‘몬스테라’ 잎과 시원하게 뻗은 ‘아레카야자’ 잎 그리고 ‘보스턴 고사리’ 잎은 단골 메뉴였다. ‘드라세나’는 유리병에 넣고 열흘 정도 지나자 뿌리가 나와 너무 신기했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수경재배로 키우는 몬스테라 가 살고있다.
하지만 소재들도 2주가 지나자 시들기 시작했다. ‘안 돼, 제발 가지마…’ 다시 휴지통으로 직행하게 된 인스턴트 식물들은 나를 슬프게 했다. 이 상황이 너무 아쉬워서 휴지통 앞에서 소재들을 버리는 내 동작이 느려질 정도였다. 또다시 회의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였다. 꽃시 장에서 포트에 심긴 보스턴고사리를 발견했다. ‘어? 이건 키우는 건가? 이런 이국적인 식물도 구할 수 있다니! 너 여기 있었구 나! 유레카!’ 그렇게 보스턴고사리와 나는 꽃시장에 서 극적인 만남을 가졌다.
너무 신이 나서 당장 화 원으로 가고 싶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꽃시장을 나왔다.
‘꽃 시장 안녕~ 잘 있어! 그동안 고마웠다’
‘자 이제 화원으로 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