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이기심 키우기

나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

by 미스킴라일락

출근 날 아침부터 컨디션이 심상치 않다. 이거 왠지 오늘 또 날 잡을 느낌이다. 나는 극심한 생리통을 달고 있었다.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걸렸구나 싶을 때면 초비상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증상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일단, 몸이 꼬일 정도의 극심한 복통과 함께 설사를 시작으로 연이어 엄청난 구토가 수차례 연속된다. 그 사이 온 몸이 식은땀으로 다 젖어버린다. 그리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눈은 반쯤 풀리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어 바닥에 누워야 한다. 그렇게 꼬꾸라진 채 배를 감싸 안고는 모기소리만한 소리로 “못 했어요. 살려주세요 (자동으로 참회하게 한다)”를 반복하다가 잠이 든다. 이러면 그 날 치러야 할 관문이 다 끝난 것이다. 잠이 깨고 나면 핼쑥해진 얼굴과 땀에 젖은 머리로 몰골이 우습긴 하지만 정상으로 돌아온다. 지금은 항암치료로 생리통을 걱정하지 않는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그만큼 그 고통은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 날 내 예상대로 놈의 신호가 시작되었다. 출근 한 시간을 앞두고 비상사태다. 그런데 이렇게 출근하면 더 비상사태다. 가는 도중에 길바닥에서 험한 일을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주임님께 전화를 걸어 내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를 이해해 줄거라는 건 내 착각이었다. 보기 좋게 한방 먹었다.

“그래도 일단 출근하세요. 여기 와서 쓰러지세요!”

몇 번의 설명으로도 설득이 되지 않아 결국 나도 출발하겠다고 해버렸다. 급히 택시를 불렀고 뒷좌석에 꼬꾸라져 거친 숨을 내쉬며 통증을 참아내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택시 기사님은 운전하시는 내내 룸미러로 나를 주시하시며 계속해서 병원으로 가자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출근장부를 적고나서야 창고로 들어가 그녀의 말대로 거기서 쓰러지는 상황을 연출해줬다. 두 시간 뒤 겨우 몸을 가누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이번엔 이런 말이 돌아온다.


“그 사람 너무 미련한 거 같아.”

“그러니까... 그 정도로 아프면 못 나온다고 말을 해야지...”


주임과 다른 직원의 대화였다. 순간 아무 말이 안 나왔다.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짜증과 화가 폭발할 것 같았다. 그때 알았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자기 할 말도 잘 못 하는 어디 모자란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별로 같이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내심 칭찬을 기대하고 그런 일을 감행한 것일까? 과연 누구를 위해 그렇게 나를 혹사시키며 그런 사람들과 잘 지내보려고 애써 웃으며 그동안 버텨 온 것일까? 그 날도 나는 그들 앞에서 이제 괜찮다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못 했다. 더 싫은 건 그런 일을 겪고도 쉽게 바뀌지 못하고 여전히 사람들 분위기를 살피며 지내는 내 모습이었다. 습관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나는 혼자 있는 성격과 말이 없는 것을 극복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나름 애쓰며 살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좋은 인상을 남기며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되었다. 말이 너무 없는 게 문제가 된 듯해서 일부러 의식적으로 말을 많이 걸었는데 돌아온 건 쓸 데 없이 말이 많다는 핀잔이었다. 마음속에 말을 담아놓지 않으려고 생각나는 대로 말을 했는데 그런 말은 때론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끝이 없는 일 같았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한다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게 할까만 신경 썼지, 정작 나의 내면을 깊이 있게 신경 쓰지는 못 했다.


몇 해 전부터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이번엔 한번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나만 생각하는 사람 말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 몸 하나 잘 관리 못 한 주제로 누굴 걱정할 입장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가끔 내가 너무 힘들 때는 대중교통 노인석에 앉아보는 것, 힘들게 일하는 동생에게 돈 한 푼 내지 않고 뻔뻔하게 거처를 제공받는 것, 내가 하기 싫을 땐 휴식을 이유로 내 일을 남에게 떠넘겨버리는 것, 도움을 요청받더라도 내 건강을 생각해서 거절해버리는 것 등 평소에 내가 하지 않는 행동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은 때론 자기 자신을 위해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불행을 목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말이다. 왜냐하면 이기적인 행동을 할 줄 알면서도 내 의지에 따라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과 아예 할 줄 몰라서 못 하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후자였다. 그것은 내가 나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보지 못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주변사람들 또한 돌보지 못 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유방암에 걸린 후 사람들한테 들었던 말 중 가장 섭섭한 말이 하나 있었다.

“건강관리 안 해서 그래.”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했다. 사실 나는 유독 같이 자취하는 멤버 중 조깅에 열심이었고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받고 있었다. 사실 건강관리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정신과 내 마음의 건강은 돌볼 줄 몰랐다. 누구보다 극심한 불안감과 현실의 압박 속에 시달렸으면서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감정이 다치고 아플 때 내가 치료해주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런 상처들이 커지고 커져 결국 몸에도 이상신호들이 왔었던 것 같다.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 채 습관에 젖은 대로 그렇게 버티고만 있었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나 자신에게 참 미안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돌볼 사람은 내가 잘 지내려고 애쓴 타인이 아니었다. 결국, 나 자신이었다. 나는 이제 남에게 거절도 잘 하고 상대에 맞추는 선택이 아니라 내 생활을 더 존중하는 선택을 할 줄도 안다. 그렇게 살아보니 확실히 착한 이기심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힘든 순간일수록 내가 먼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타인도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 그것이 확실히 이해될 때 나도 더 건강한 마음으로 타인을 존종하는 법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구성원들이 모여야 사회도 더욱 더 건강한 정서로 발전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분명 이기심도 때론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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