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숴(져) 버릴 거야

이기는 것보다 미치는 것

by 미스킴라일락



‘아, 오늘도 이렇게 누워서 끝나겠구나...’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고 머리가 핑 돌아서 몸이 반사적으로 주저앉았다. 오늘 컨디션도 꽝이다. 집에 누워서 하루 종일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로 웃음치료나 해야 한다. 하루의 스케줄이 결정 나는 순간이다. 대개 어지러움이 있다는 건 무기력증이나 우울감 등이 같이 온다는 걸 의미한다. 짧게는 하루 동안, 길게는 일주일 넘게 온 몸에 힘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일어날 힘도 없고 생각할 힘도 없어서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 하는 지루한 시간들이다. 이럴 때는 우울한 기운이 나를 덮치지 못하도록 웃음이 필요할 뿐이다. 예능인들이 이럴 땐 정말 고맙다.


소리 소문 없이 낮이고 밤이고 갑자기 찾아오는 컨디션 저하는 그야말로 난감하다. 시름시름 기운이 없다는 건 생활의 많은 불편을 초래한다. 아침을 먹다가도 너무 힘이 들면 바로 방으로 들어가 누워있어야 하고 분명 밤새 잤는데도 하루 종일 긴 잠으로 보내야 할 때도 많다. 무엇보다 싫은 건 간만에 기분 내서 옷까지 샤랄라 하게 챙겨 입고 외출했다가 이 녀석을 만났을 때다. 사람 많은 곳에서 혼자 발을 질질 끌며 초점 없는 눈빛으로 힘없이 걸어 다니는 꼴이란.

그런 각종의 증상들은 정신적으로도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결국 그런 걱정과 불안은 또 다른 신경적 병을 부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몸으론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암담하다. 일은커녕 어디 가서 사람들에게 민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니 말이다.

하루는 정오가 서서히 다가오는데도 이불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니 뭐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내가 이러고 있는 건 어쩌면 놈들(?)에게 진 거라는 생각. 첫 번째 항암을 한 이후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런 후유증이 나를 지배하게 둔다는 건 뭔가 잘 못 된 것 같았다. 암은 어쩌면 내가 이렇게 잘 활동하지 못하는 걸 노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항암치료 이후로는 아무래도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자연스레 줄어든 운동량은 점점 몸의 체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체력이 약해질수록 운동을 하려고 마음먹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는 사이 몸의 면역은 약해져만 가고 더 많은 면역질환에 노출된다. 이런 악순환이 어느새 반복되고 있었다는 걸 발견한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지러움으로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순간, 어디서 날아왔는지 이런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좋아. 누가 이기나 해보자. 어지럼증이 박살나버리던지 내가 박살나버리든지 둘 중 하나겠지 뭐!’


있는 기력을 다 끌어올려 초점이 흐린 눈으로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손에 물병을 하나 챙겨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아파트 지하에는 헬스장이 있는데 입주 초기라 아직 정상운영이 되고 있지 않아 불도 꺼져있고 오는 사람도 없었다. 여전히 온몸에 힘이 없었고 거기까지 가는 것도 힘이 들어 벌써 숨이 차 있었다.


도착하니 자전거 기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지러우니 앉아서 운동을 해야 했다. 전원 버튼을 찾아서 켜고는 목표를 10킬로미터에 맞추고 강도도 약간 높였다. 몸이 붕 떠있는 듯했고 정신이 아득하게 느껴졌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둘 중 하나는 부숴버리겠다는.


그 정도 각오 없이 내가 운동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초기 항암을 할 때는 병실에서 창밖 풍경을 보다가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모습만 봐도 내 숨이 다 찰 지경이었다. 그땐 정말 그랬다.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치료 후 처음으로 하루 종일 바깥공기를 쐬던 날이 마치 딴 세상에 있듯이 그렇게 이상할 수가 없었다. 분명 내가 누리던 일상이었는데 병으로 인한 경험은 나를 너무나 위축시켜 버린 것이다. 다시는 예전처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뛰며 땀 흘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운동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은 내겐 큰 각오가 따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컨디션을 이겨내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이것 말고는 내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함께 온 우울증을 날려버릴 방법도 운동뿐이었다. 운동을 해서 체력을 올려야 했다. 그래야 면역도 좋아진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어지럽다는 이유로 아까운 시간들을 이렇게 다 몹쓸 증상들에게 갖다 바쳐버리고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다시 예전의 건강한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시간만 있다면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고, 또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던 나의 원래 모습으로.


쳇. 어지러움? 그래서 뭐! 뭐! 뭐!!!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회심의 미소였다. 여전히 골이 군무를 추듯 흔들리는 어지러움을 참아내고 있었지만 그렇게 운동을 하면서 느낀 성취감은 컸다. 물론 컨디션이 바로 좋아지는 게 아니어서 그 날 오후는 기절해서 쓰러져있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이 큰 발견이었다.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보다 내가 한계라고 생각한 상황을 스스로 벗어났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 자신감이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를 바깥으로 끌어내주기 시작했다.


나는 워낙에 이런 말들을 많이 했었다. ‘나는 안 똑똑해서 안 돼, 가진 게 없어서 안 돼, 성격이 안 좋아서 안 돼, 꾸준히 못 해서 안 돼......’ 온통 내 머릿속에는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때로 긍정적인 사람들이 그런 부정적인 나의 생각을 돌리려고 갖은 좋은 말들을 해줘도 내 생각을 굽히지 못했다. 내가 그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는 건 유일한 나의 특기였을 정도다.


그때는 ‘돼, 돼, 돼.’라는 주장에 맞서 ‘안 돼, 안 돼, 안 돼.’라는 논리를 폈고 하도 머릿속에서 그런 길로 체질이 나버려서 신나게 부정하고 나면 속이 후련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제 재밌는 일이 생겨버렸다.

이젠 내가 굳이 안 될 이유를 찾지 않아도 모두 다 ‘그래, 넌 이제 웬만한 건 다 안 될 거야, 그러니 쉬어’라고 말한다.


그렇게 작고 병들고 힘없는 '약한 놈'이 됐다. 그런 나를 인생이란 놈은 때론 무시하듯 했고 때론 약 올리듯 했고 때론 비 했다. '넌 절대 안 돼'하고 말하면서. 나도 그것을 인정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런 내가 강한 인생 앞에 마주 설 방법이 무엇인지도 역으로 알게 됐다. 강한 놈은 못 되지만 미친놈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리고 미친놈이 하는 상식 밖의 행동은 힘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상대를 이기는 힘이 아니라 당황시키는 힘. 밑도 끝도 없이 부딪혀보는 것이 어쩌면 나의 유일한 방어이자 공격이었다.


세상에 미친놈을 이기는 놈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것을 믿기에 궁지에 몰릴수록 나는 더욱 공격적인 쥐새끼가 되나 보다. 그럴 때 내 목적은 딱 하나.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살짝 미치는 것. 마치 그 불합리하고 두려운 상황을 즐기듯 올라 타 버리면 알 수 없는 쾌감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고개를 드니 말이다.


나는 다만 자유롭게 일상의 거리를 걷고 싶었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봄날이면 혼자라도 노랑노랑 하니 입고 동네 산책이라도 하며 기분 좀 내보고 싶었고,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코에 바람 좀 넣어가며 돌아다녀도 보고 싶었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밤도 좀 새워가며 무리한다는 소리도 좀 듣고 싶었고 무언가에 몰두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깊이 몰입하는, 왠지 프로페셔널해 보일 모습도 갖고 싶었다. 내가 원래 가졌던 나의 일상들을 말이다. 당연했지만 당연하지 못한 것이 된 일상들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계속해서 싸우는 중이다. 미치지 않으면 가질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상들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하루하루는 이토록 더더욱 소중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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