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움직이는 그 자체가 예술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

by 미스킴라일락

화장실에 앉은 지 20분째. 평생 변비라는 걸 몰랐던 나에게 생과 사를 오가게 할 만큼 극심한 변비가 찾아왔다. 이건 정말 뇌혈관이 터질 지경이고 하도 힘을 줘서 배에 복근이 생길 지경인 데다가(농담이 아니라 진짜임)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 새삼 생각하게 해 준다.


변비만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변비는 명함도 못 내밀 고통은 따로 있었다. 병명은 알 수 없으나 점점 고개를 내민 직장파열이었다. 직장 내시경을 한 의사 선생님 말에 의하면 직장 내벽에 깊은 상처가 3군데 정도 났고 길이는 10cm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 시작된 항암치료로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져 큰 일을 볼 때마다 비명 행세였다. 이러다 득음의 경지에 오르려나 싶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온 집안에 내가 큰 볼일 보는 중이라고 알리는 민망한 상황이 돼버렸다. 나오지 않으려는 녀석을 끌어내느라, 마취주사 없이 생살이 찢어지는 지옥 고통의 공포를 마주하느라 일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면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때로는 화장실을 나와 그대로 침대에 엎드린 채 내 의지라고는 1도 없는 눈물을 줄줄 흘리기도 했다.


나가는 것만큼이나 들어가는 일도 큰 일. 공포의 빨간약(유방암 항암제 세계에서 악명 높은 약제) 항암 중이니 입맛 없는 거야 당연한 건데 유독 식도와 위가 인간적으로 너무하다 싶게 예민해지곤 했다. 바나나, 현미, 삶은 양배추 외의 모든 음식을 아예 거부해서 사람이 되려고 쑥과 마늘만 먹었다는 곰 할아버지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지금은 다행히 항암치료를 하는 중이긴 해도 부작용에 시달리지는 않아서 다 지난 일이라 웃으면서 이야기할 정도지만 그 당시엔 음식을 삼키다가 마치 독사과를 한입 베어 먹고 쓰러진 백설공주처럼 "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목을 감싸고 그대로 쓰러져 신음하다 지쳐 잠들어버릴 정도로 고통이 극심했다. 조금이라도 예민한 걸 먹으면(그래 봤자 흰쌀밥, 밀가루 음식이 다였지만) 음식이 지나가는 식도 부위가 가시 돋친 듯 너무 따가웠고 그 통증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지 않으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에 항암 중에 단식투쟁도 했었다. 물론 항복을 외치고 다시 돌아와 영양공급 시스템을 가동하며 고통의 길로 걸어 들어가야 했지만. 그 이후 체력이 회복되어 그런 증상들로부터 벗어난 후로도 극심한 갈증이 후유증으로 남아 마치 군인들이 전쟁에 나갈 때 총탄을 장전하듯 한동안 외출할 때면 무거운 500ml 생수를(그렇다. 이 마저도 너무 무겁다) 4개씩 장전하고 다녔다. 그때 고생한 것 때문인지 가끔 책에서 암환우들의 투병기를 접할 때면 그날의 고통들이 다시금 생각나 슬며시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항암의 부작용은 나에게 지극히 당연한 일상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그 때문에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람이 음식을 먹어서 소화를 시키고 배출을 해내는 이 지극히 단순한 일이 나에게는 전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입으로 음식을 먹어서 위장에 무사히 안착시키는 것도, 위에서 대장까지 차례차례 내려 보내는 것도, 몸 밖으로 무사히 배출시켜 내는 것도 어느 하나 그냥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단 한 번도 내가 관여하지 않던, 지극히 자연스럽던 일상이었는데 말이다. 그땐 이렇게는 도저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구나 하며 속으로 자주 생각했고 괴로워했다. 단 1분도 이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연히 미간에는 나도 모르게 주름이 항상 잡혀 있었다. 오랜 통증을 견디며 투병하시는 이들의 얼굴이 그토록 피폐해지는 이유를 그제야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옥 같은 시간들을 견디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당연히 가동되어 나를 지탱하는 이 지극히 사소한 일이 우주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혼신을 다해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도전이 될 줄이야.


그렇게 그동안 몰랐던 위장의 완벽한 기능에 감탄하면서 평소 책에서나 보던, 단 한 번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몸속 기관 하나하나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녀석들, 그러고 보니 내가 우리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위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단 한 번도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 못했던 녀석들이었다. 때론 폭식에, 밤샘에, 정크 푸드에, 스트레스에 고된 적도 많았을 텐데 파업 선언 한번 못 해보고 24시간 연중무휴로 항시 대기하면서 여기까지 달려온 녀석들이었다. 어리석은 주인을 만나 이제야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는 가여운 녀석들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값비싼 예술작품이나 역사 깊은 유적지, 신비하고 웅장한 자연의 모습에 감탄하며 아름답다고 여기지만 나는 그날부로 이 세상 어떤 것보다 가장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것은 바로 때때마다 자동으로 기능을 하는 인간의 신체라는 걸 깨달았다. 먹은 음식물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몸 밖으로 배출되다니... 말하면서도 낯간지럽다 싶지만 정말이지 이 포인트가 너무, 아름답다. 음식이란 게 입으로 꾸역꾸역 넣고 내가 똑바로 서 있는다고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아래로 내려가는 게 결단코 아니었다. 그야말로 인간이 어떤 의학, 어떤 과학 기술을 동원해도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하고 놀라운 신체기관의 능력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혹은 무엇인가를 해내면서 늘 나도 언젠간 저런 존재가 되겠지 하며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또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써왔고 그런 인정으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했던 모습들을 뒤돌아봤다. 더 안타까운 건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늘 타인의 인정보다는 질책을 받고 스스로 낙심하고 아파한 경험이 훨씬 많았다. 그런 나에게 스스로도 이런 말들을 거침없이 자주 뿜어댔었다.


“이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하네”

“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네”

“ 네가 하는 게 늘 그렇지 뭐...”


고등학교 때부터 어딜 가나 지각을 달고 사는 지각대장, 잠만 아니면 내가 성공했다고 꾸준히 주장만 해온 타고난 잠보, 뭐든 한번 시작했다 하면 작심삼일 아니라 작심이일도 버거운 포기의 달인,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내가 손댔다 하면 왜 다 고장이 나는지 궁금한 마이너스의 손...
부인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란 사람의 실체였다. 나이를 먹을수록 실망스러운 나란 존재에게 내가 자주 하던 말들이 저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나에게 생존을 위한 극심한 고통들은 그런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아주 조금 뒤바꿨다. 내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하지만 나를 살아있게 했던 내 ‘안’의 존재에 눈뜨면서 말이다.


인간이라는 자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자체만으로 우리는 참 아름답다. 우주만큼의 신비함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더 이상 실감 나게 표현하기 힘든 이것을 확실히 느껴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나의 자존감이나 가치성에 대한 회복은 굳이 타인의 인정을 살만한 특수한 일을 해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하나하나 발견해가면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잘하는 것이 눈곱만큼도 없다고 생각될 때, 거울 속에서 한 마리 오징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가만히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느껴보자. 내가 인정해주든 인정해주지 않든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쉬지 않은, 아니 쉬지 못하고 나를 위해 콩닥콩닥 뛰어준 심장을. 매일매일 변화하는 나의 세포들을. 나를 지탱해주는 많은 체내 조직들을.


살아있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그 자체가 경이로운 예술이다. 내가 살아 존재하는 오늘 하루하루가 예술이다. 그리고 단 하나뿐인 내 인생 자체가 예술이다. 이 순간, 그런 나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 오직 나만을 응원하고 나만을 위해 존재해주는 수천수만 개의 내 몸속 스텝들에게 박수갈채를 뜨겁게 보내봐도 참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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