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암에 걸렸을까? 모든 암환자들이 한번씩은 건너는 생각의 다리다. 그간의 경험과 얄팍한 지식, 그리고 동료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것에 대해 한번 심도 있게 파헤쳐 봤다.
환우 카페의 한 남자 환우는 아직 한창 젊은 20대란다. 자신은 평소에 몸 관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건강에는 자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올린 과거 사진을 보니 몸에는 식스팩 비슷한 것도 있다. 그는 현재 항암치료 중이다. 가끔 이러고 누워있는 현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마무리는 피 끓는 청춘답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게. 나도 이렇게 아프기 전에는 한때 동네 러너였는데.
나도, 내가 아는 암환우들도 운동 안 해서 비만인 사람은 정녕 없다. 심지어 병실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1년 내내 달리신단다. 게다가 비 오면 운동 안 한다는 사람들은 다 꾀부리는 거라며, 어차피 씻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가슴을 콕 찌르는 말씀을 하신다. 그러면서 운동 열심히 해도 암 걸리더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고 억울해하신다.
그렇다. 각종 기사, 인터뷰에서 암 발병 원인에 대해 말할 때 ‘적절한 운동과 식습관’이라는 것은 아마도 ‘나도 몰라’의 다른 말인 듯. 영국 사이클 선수인 레베카 제임스는 자궁암을. 아르헨티나 요트 선수인 산티아고 랑게는 위암을, 사이클 선수로 유명한 랜스 암스트롱은 고환암, 그리고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쇼트트랙 선수 故 노진규 선수는 골육종을 앓았다. 이처럼 실제 올림픽 선수 출신 중에도 현직 선수로 암이 발병한 선수들이 적지 않으니 이제 그런 어설픈 이론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빠른 회복에 운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 또한 그걸 알기에 힘들어도 운동만큼은 꼭 꼭 챙겨서 해오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운동부족이 마치 암 발병의 원인이라는 듯한 논리에는 반대다. 그건 환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다. 가끔 나도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로 상처를 받기도 했다. 건강관리도 안 하고 살아온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죄책감. 그 느낌. 정말 싫다.
그것이 또 하나의 상처가 되어 마음에 병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일은 역시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고, 모르면 말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마음이 병들지 않도록 모르고 하는 말들에 적절히 귀를 잘 닫고 마음 간수를 잘하는 것도 환자인 우리가 할 일인가 보다.
어떤 유방암 환우는 자신이 고기를 먹을 때마다 남편 눈치를 봐야 한다고 했다. 사실 많은 양을 먹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남편님의 주장은 그렇게 고기를 많이 먹으니까 암에 걸린 거라고 한단다.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가끔 기사에서 ‘서양식 식습관의 변화로 한국 젊은 여성들의 유방암 발병률이 높아졌다’라고 한. 기사대로 정말 동양인 주제에 서양인처럼 육식을 많이 해서 암에 걸려버린 걸까?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한 번은 급하게 고기를 먹다 죽을 뻔했다. 열 살 때였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밤잠 못 잘 만큼 며칠을 끙끙 앓았다. 심지어 낮에는 음식을 먹으면 다 토해내 1주일가량 금식했다. 그렇잖아도 말랐었는데 더 야위었고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해 당연히 학교도 못 갔다. 매일 새벽이면 혼자 방에서 기어 나와 할머니 품에 파고들고는 할머니를 깨워 ‘할매 손은 약손’ 노랫가락에 맞춘 할머니표 손 마사지를 받곤 했다. 어쨌든 열 살 인생 최대의 고비였다. 그 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나았고 원인은 돼지고기 급체. 그 뒤로 돼지고기 삼겹살을 잘 먹지 않았다. 먹으면 여지없이 몸이 힘들었으므로.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 나지만 사실 육류는 생선을 가장 좋아하고 남들은 다 침을 질질 흘리는 돼지고기 삼겹살이니 한우 꽃등심이니 하는 것들도 내게 오면 찬밥신세다. 게다가 고기보다 야채와 과일을 귀히 여겨 탕수육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야채만 골라서 먹고 있다. 가끔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혼자 파인애플 통조림 한통을 끌어안고 혼자 퍼먹으며 풀었고 뷔페 레스토랑에 가면 과일 샐러드에 제일 흥분한다. 그리고 아주 아주 젊디 젊은 시절부터도 햄버거 사 먹을 돈으로 차라리 된장찌개를 사 먹자고 말한다. 회사에서 고기 회식을 가도 후식으로 나오는 냉면과 된장찌개가 가장 기다려지는데 과연 내가 서구식의 육식 식습관을 지향했는가.
사실 그렇다. 환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마음의 상처다. 암에 걸린 후 내 마음을 가장 괴롭힌 문제 중 하나가 사실 ‘왜 암에 걸렸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느라 스스로를 잘 돌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사이 내 마음과 몸이 많이 지치고 힘들어 쉬어가라고 신호를 보내어오는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왜 하필 나야’, ‘무엇 때문에 암에 걸렸을까’하는 문제에 속 시원히 답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그렇기에 문지 속에 퐁당 빠져있기보다는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할 선택은 무엇이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암에 걸렸다는 말에 나에게 이렇게 조언해준 분이 있었다.
“암은 그냥 감기예요. 조금 오래가는 감기. 누구나 다 걸릴 수 있는 거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
그랬다. 감기에 걸렸을 때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나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병원에 가고 보양식을 챙겨 먹으며 자신을 더 돌볼 뿐이다.
어차피 정확한 원인이란 건 현대 의학으로 밝힐 수가 없으니 괜한 죄책감에도 바보 같은 자책감에도 빠지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나 또한 이 긴 감기를 이겨내는 시간을 조금 더 나를 사랑하고 여유가 된다면 조금 더 세상을 사랑하는 여유를 가져보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살아온 시간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도 다시 설계해보고 싶다. 인생도 음악과 같아서 쉼표를 한번 찍고 나면 또 다른 아름다운 시간의 선율이 흘러가 줄거라 믿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