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따윈 보글보글 찌개나 해 먹겠습니다

운명을 내가 결정하는 법

by 미스킴라일락


유방 절제 수술 후 1주일이 지났다. 병원생활도 잘 적응하고 있었고 상처의 회복도 빠르게 잘 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 뉴스에 평소 좋아하던 한 배우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사인은 폐로 전이된 대장암이란다.

만약 평소라면 이 소식을 듣고 단지 안타까워하고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2주 전쯤 암을 통보받고 들은 이 소식은 마음을 온통 뒤흔들었다.


‘뭐라고? 암은 현대의학으로 웬만하면 다 낫는 거 아니었어? 게다가 유명한 연예인이잖아.’


하지만 다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여자의 유방이란 기관은 폐와는 달리 생명 유지와는 직접적인 관여가 없으니까 유방암으로 죽지는 않을 거라는. 분명 그러하리라.

그리곤 조심스레 포털 사이트 검색 창에 한 자 한 자 글자들을 입력하며 기사를 띄웠다. 그리고 곧. 내가 얼마나 이 병에 대해 무지한가를 인지하게 되었다. 기사에는 몇 해 전 유방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여배우의 자료가 떴다. 그것도 나보다 어린 나이에. 몇 번이고 뉴스 기사를 다시 확인한 후 병에 대한 정보를 확실히 안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커튼이 쳐진 8인 병실 병상 위에서 얼마나 숨죽여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쳐냈는지. 눈물로 축축해진 휴지조각들이 발 앞에 얼마나 수북이 쌓이던지. 한 시간 즈음 지나서야 겨우 눈물이 멈추었다. 그리고 휴지통에 그것들을 꾹꾹 눌러 담으며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그 눈물은 고인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발병 이후 처음으로 느낀 공포심이었다. 이 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 그 사실에 처음으로 두려웠다.


내가 암에 걸리기 전에는 조용하던 세상이었는데 이상하게 암에 걸리고 나니 여기저기 자꾸 암으로 떠난 이들의 소식이 속속들이 전해졌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나에게 그런 소식만 전하듯 주변에 온통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소식이 계속 들렸다. 일상으로 돌아와 친구와 기분 전환하려고 보러 간 영화였는데 주인공이 마지막엔 암으로 세상을 뜨질 않나 지인들이 전하는 연세 있는 누군가의 부고 사인은 절반이 넘게 꼭 암이란다.

그리고 하나 더. 병원에서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날, 혼자 우연히 본 영화가 <울지 마, 톤즈>. 故이태석 신부가 아프리카 톤즈에서 의료봉사와 복음사역을 한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는 모금활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건강검진에서 발견한 암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항암치료를 하다 끝내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귀에 익은 이름이라 그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랬다. 믿기 싫었지만, 보험회사에서 상품을 팔기 위해서 사용하는 멘트라고만 치부하고 말았던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란 말은 사실이었다. 내 두려움이 괜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땐 비록 유방암 1기였지만 말이다.




병실에서의 밤은 길고 길다. 낮 시간 내내 자고, 밥 먹고 자고, 심심하면 자니까 밤에 정상적으로 잠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혼자 쓰는 방이 아니니 불 끄고 누워서 자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누워있으면 스르르 약기운에 잠들기도 하고.

잠은 안 오지만 그날도 그렇게 누워서 조용히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그때 건너편 침대의 환자 한 분이 그 옆 침대 환자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자?”

“안 자. 잠이 안 오네”

“그러게. 나도 그러네. 참, 옆 병실에 OO언니, 요즘 안 보이더라”

“오늘 죽었잖아?”

“응? 무슨 소리야, 지난주까지 이야기 잘하고 얼굴 좋았는데...”

“오늘 짐 다 뺐어. 갑자기 그렇게 됐대.”

“어이구, 참. 너무했네.”


옆 병실에 환자가 죽었다니... 전혀 몰랐던 소식이었다.


“그러게, 암은 초기라고 해도 안심 못 해. 전이되고 재발되면 끝인데 뭐...”


암은 전이되고 재발되면 끝. 그 말은 내 뇌 속에 깊이 박히듯 했다. 마치 나에게 전해지라고 나온 말인 듯. 순간 두 손으로 이불 끝을 잡고 머리끝까지 조용히 덮었다. 아니라고, 나는 초기라서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무서웠다. 전이되거나 재발할까 봐. 그랬던 탓에 1기였던 암이 4기로 훌쩍 건너뛸 때는 깊은 충격에 휩싸였다. ‘재발되거나 전이되면 끝장이야’라고 생각하며 초기라 다행으로 여기고 살던 나에게 전이 통보는 너무나 가혹한 소식이었다. 생각하지 못한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그러나 단순히 이제 세상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남은 가족들에 대한, 내가 어쩌지 못하는 슬픔이 두려웠다. 나를 잃고 살아갈 가족들이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슬픔이 나의 두려움이었다.



병을 치료하는 동안 그렇게 수많은 감정에 시달렸다. 특히 다양한 두려움에. 수술과 힘든 치료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나 몰래 괴로워할 가족들의 슬픔이 두렵고 이제는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세상이 두렵고 하루하루 겉모습도 속마음도 변해갈 것만 같은 나 스스로가 때론 두렵다. 그리고 힘든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지쳐갈 주변인들의 마음에도 두렵다. 내가 치료해야 할 것은 암이라는 병뿐만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암과의 사투는 때론 내 마음과의 사투이기도다. 마음속 두려움과 싸워 이겨야 하는 사투. 어차피 인생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 건데 두려움에 묶여 산다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암 앞에 벌벌 떨다 죽는 인생은 되지 않고 싶다. 그런다고 나를 봐줄 녀석이 아니다.


사람은 생각에 따라 운명까지도 좌우된다는 걸 배웠다. 실패했다고 생각할지 배운 거라고 생각할지, 이젠 늦었다고 생각할지 지금이 제일 빠른 때라고 생각할지, 고독하다고 생각할지 자유롭다고 생각할지 모든 것은 결국 나의 선택이다. 두려움을 대하는 태도도 결국 내가 선택할 문제였다. 두려움에 삼켜질지 두려움을 삼켜버릴지. 그리고 나는 녀석보다 더 강해지기로 했다. 환자들이 자주 표현하곤 했던 ‘막강한 암세포’보다 내 면역력과 내 의지는 더 막강하다고. 그래서 반드시 종국에는 내가 이길 거라고. 남은 시간 동안 벌벌 겁에 질려 살지도, 다 끝났다고 포기하고 살지도, 될 대로 되라며 방관하고 살지도 않기로 했다.

마지막 그 순간이 언제 올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은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뿐이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마음으로 의연하게 살 계획이다. 혹시 또 모른다. 암덩어리 요 녀석, 어쩜 생각지 못한 천하태평한 내 태도에 당황한 탓에 암세포 시스템에 에러가 발생해 스스로 자폭할지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가끔 자연스러움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