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자연스러움을 꿈꾼다

사람들과 즐겁고 신나게 어울리는 법

by 미스킴라일락

통! 통! 통!

배드민턴 라켓이 콕을 맞추는 소리가 한참 들리는 코트장.

여느 날처럼 저녁 레슨을 받고 있었다. 왼손잡이도 아닌데 왜 왼손으로 배드민턴을 치냐는 질문에 대충 얼버무리며 쭐래쭐래 배드민턴 클럽에 오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여느 유방암 환자들이 그렇듯 나 또한 겨드랑이 림프절 일부를 떼어냈기에 부종방지를 위해 수술한 쪽의 오른손을 꽤 아낀다.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는 서먹서먹하지만 처음 배우는, 그것도 왼손으로 시작한 배드민턴은 조금씩 실력이 늘어 콕을 꽤 잘 맞추고 있었다.


이 날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열심히 코치의 공을 받아내고 있던 중이었다. 요즘따라 유난히 가발이 붕 뜨는 느낌이 들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언제쯤이면 이 불편감에서 벗어날까 하며 최선을 다해 라켓을 휘둘렀던 나는 순간 얼음이 됐다.


“웁~!!”


아뿔싸...

라켓을 휘두르다 그만 가발을 건드려 그대로 내 가발이... 아무도 가발인지 몰랐을 내 가발이... 그만 ‘옆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냥 차라리 시원하게 벗겨져버리지... 알지 모르겠지만 가발이 정상 각도에서 조금만 ‘옆으로’ 돌아가도 '동네바보각' 되는 건 순간이다.

그 순간 코치의 얼굴도 ‘얼음’이 됐다. 동그랗게 커진 눈, 살포시 올라갈 듯 말 듯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하는, 하지만 진정으로 실컷 올라가고 싶어 하는 입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능숙 능란하게 가발의 각도를 어서 바로 잡을까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걸 알고 그냥 시원하게 내 손으로 가발을 휙 벗어 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울 앞에서 이미 바깥세상을 구경해버린 내 머리카락들을 만지는 시간 동안 내 머릿속 생각이 시속 1300km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아, 그냥 이대로 집에 가버릴까?’

'공기중으로 사라져버리고 싶다.'

‘아냐, 내가 사람을 때린 것도 아닌데 왜 피해?’

‘진정해, 진정해. 자자, 생각 좀 해보자'

'지금 집에 가면 분명 사람들이 뒤에서 이상한 추측들을 하며 더 쑥떡쑥떡 거릴 거야’

‘그래, 아무렇지 않게 레슨 마저 받고 평소처럼 운동하다 가는 거야.’

'아, 할 수 있을까?'

'씨, 그냥 미친 척 하는거야!'

정말 그대로 집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지만(궁극의 부끄럼쟁이이므로) 생각해보니 내가 괜히 이 상황을 피해버리면 그 후 뒷수습이 더 골치 아플 게 뻔했다. 내 인생에 이런 재밌는 일도 한번 있었네 하고 생각하면 그뿐 아닌가. 자자,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 거야! 후아~ 후아~.


흩어진 머리도 고이 매만지고 산발이 되어버린 마음도 다시 가다듬고 체육관으로 다시 잽빠르게 들어가 가발을 가방 안에 고이 모셔넣고는 다시 내 코트장으로 가서 나머지 레슨시간을 채웠다.

레슨이 끝나 코트장을 나오는 나에게 몇몇 사람들이 머리가 더 짧아졌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잘 어울린다는 립서비스로 나를 위로해주기도 했다. 어차피 조마조마하게 운동하느라 그동안 레슨 받는 내내 신경 쓰이고 힘들었는데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가발 돌아갈 걱정, 붕 뜰 걱정, 허리를 뒤로 젖힐 때 혹여 벗겨질까 하는 각종 걱정에서 벗어나니 콕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훨씬 더 좋았다. 물론 가끔 유리에 비친, 내일 논산 훈련소로 입대하러 가야 할 것만 같은 짧은 머리를 한 내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야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가발을 쓰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역동적인 운동을 한다는 건 내가 나를 놓아버려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를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운동을 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사람을 유난히 좋아해서 가끔 고모라도 집에 오는 날이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명절날 서울에서 내려오시는 작은 아버지네는 정말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가 나도 내가 왜 이러나 했었다. 막상 도착해서 만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기다리는 시간이 애가 탄다고 스스로도 고백할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할머니는 사람이 그리워 그러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나에게 오는 친구들도 어울리기 힘들어했다. 말수가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과의 대화는 참 어려운 주제 중 하나였고 절대 자연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는 사람들과 나눌만한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없는 게 아니라 달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엄마한테 들은 잔소리 이야기를 할 때, 가족끼리 외식한 이야기를 할 때, 아빠랑 터무니없는 장난을 치며 논 이야기를 할 때, 가족들끼리 어딘가 근사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할 때, 새로 사거나 받은 나름의 핫템들을 이야기할 때 나는 항상 들어주는 것이 다였다. 맞장구를 치고 싶어도 가진 경험이 없으니 별 수 없었다. 당연히 친구들과 대화가 잘 통할 리 없었고 나와의 대화가 즐거울 리 없었다. 그렇다고 녀석들에게 우리 아빠는 매일 집에 계시다고 할 수도, 당시 다시 만나리라 생각도 하지 못한, 부재중이었던 엄마의 이야기를 할 수도, 할머니가 공사판에 나가신다는 세상 무거운 이야기로 괜히 죄 없는 아이들을 우울하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커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파면 팔수록, 하면 할수록 구질스러울 나라는 사람의 노출을 피하고 싶었다. 처음인 사람은 일단 대화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인 정도다. 어쨌든 사정이 그랬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감추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나였다. 그 덕에 나에게 다가왔다가 고구마 백 개 먹은 답답함을 못 이기고 튕겨 쳐 나간 사람도 많다. 결국 어린 시절부터 표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대신 감추고 사는 법을 택한 탓에 그것이 체질이 되고 습관이 되어버려 이젠 바꾸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운동은 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운동신경이 좋다고는 할 수 없기에( 없다시피 하다마는) 배우는 것이 어려울지언정 대화를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상대에게 나를 뭐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소재의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까 하며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들과 큰 어려움없이 어울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물론 나처럼 처음 접하는 초보 몇몇들과) 내가 잘 하게 된다면 더 그 안에서 더 다양한 많은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으리라.

운동을 할 때 필요한 것은 그들이 손이 있고 발이 있듯 나도 손이 있고 발이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값비싼 스포츠 용품과 의상을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시작할 때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그냥 배운 것에 집중하며 노력하면 될 일이었다.

이다음에 병이 다 나아서 활동하게 된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칠십, 팔십 살까지 살게 된다면 그날에는 과거의 나처럼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과도 무리없이 잘 소통하고 어울리면서 살고 싶다. 그것이 대화가 아니라 함께 하는 운동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비록 내 삶은 무거울지라도 운동을 하는 그 시간 만큼은 여유롭고 행복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즐겁고 신나게 웃으며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을것 같다. 그 바람 때문에, 가진 것은 시간뿐인 지금 이때에 조금씩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배우려면 그땐 더 힘들 테니 말이다.


비록 몸은 아프지만 아직 미래의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많은 것 같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그리고 어차피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며 뒤돌아보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려고 한다. 아직은 활동할 수 있는 체력이 남아있고 멀쩡한 사지육신이 있으며 남아도는 시간까지 있지 않은가.
그러니 바로 이때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뛰어놀 미래를 지금부터 준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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