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이지만 비키니는 입고 싶어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을 꾸는 것이다

by 미스킴라일락


30대 초반, 나는 다이어트에 집착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한 여배우의 청순미 흘러넘치는 모습에 반해 그녀를 빙의해보고 싶은 몹쓸 충동이 자극제였다. 유독 마음을 잡아끈 그 사진은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장난끼 넘치는 얼굴로 웃고 있는, 여리여리한 20대 여자 상큼미 폭발하는 옆모습 컷. 죽기전에 꼭 한번 갖고 싶은 저 장면. 갖고싶다, 갖고싶다, 미치도록 갖고싶다.


얼굴은 어차피 이렇게 태어나 버렸으니 내 평생 몸매라도 바로잡고 살고 싶었다. 그건 불가능해보이지는 않았으므로. 그럼 옷으로라도 커버가 될테고 사실 나이 들수록 얼굴보다는 몸매가 아니던가.

다양한 다이어트 정보가 돌아다녔는데 그 중 당시 유명하던 원푸드 다이어트를 시도했다. 종류는 바나나. 무려 3주를 이어갔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한동안 바나나맛 우유도 쳐다보지 못하게끔 하는 바나나거부증과 세트로 온 다이어트 후유증은 체중감량은 커녕 1~2킬로그램은 더 올라붙은 살덩이를 덤으로 줬다. 요요였다. 원푸드 다이어트는 포기하는 걸로.


그래, 먹는 건 먹고 대신 운동을 하자. 운동을 덜 해서 그런거라 여기며 부지런히 이른 아침이며 저녁이며 동네 운동장과 러닝머신 위를 달려도 보았다. 땀이 나는 건 좋았으나 복병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달고 나온 것이 아닌가 싶던, 단 한순간도 나와 떨어져 본 적이 없던 종아리 알이 더 탄탄하게 오르는 것이 아닌가. 이건 아니다.


일단 단단한 근육을 부드럽게 해야한다고 판단해 종아리며 허벅지에 멍이 들도록 주물주물 마사지를 했다. 그러나 시퍼렇게 멍만 들어 스커트를 입어야 할 때면 파운데이션이라도 발라야 할 지경. 하... 이게 아닌데.

스트레칭을 많이 해야 근육이 이완되어 라인이 예뻐진다고 해서 밤이면 벽에 두 다리를 올리고는 좌우로 쫙 벌려 180도로 일자가 되게 만들어 잠을 청해보기도 했다. 쳇. 현실은 다리가 좌우 일자로 벌어지기보다는 몸통이 벽을 밀어내는 다리에 밀리며 머리 위로 발사된 채 잠들기 일쑤.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뾰족하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하다하다 안 되면 의학의 힘을 빌리겠다는 마음으로 재산을 탕진할 각오를 했다. 그렇게 다이어트는 나의 오랜 꿈이었다.


상체는 55, 하체는 77. 이것이 이십대의 내 신체칫수였다. 일명 하체비만. 옷을 사러 갔다가 66치수 바지가 맞지 않는 내 몸을 보며 그럴 리가 없다고, 이 집 옷이 뭔가 이상하게 만들어졌다며 현실을 부인하던 엄마, 함께 목욕탕에 갔다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따로 노는 동생의 몸매에 놀란 언니, 뒤에서 내 다리를 보고 놀래서 달려와 “너 다리가 왜 그래? 언니가 기도해줄게!”라며 나를 두 번 죽인 교회 언니. 내 평생 단 하루라도 날씬하고 균형있는 몸매로 살아봤으면 하고 꿈꿨으나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그로인해 꽃다운 이십대부터 비키니는커녕 원피스 수영복조차도 입을 생각을 쉬이 하지 못했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일에 치이느라 다이어트를 할 체력도 없어져 버린 후, 마치 운명처럼 유방암이 찾아왔고 독한 항암치료는 내 몸의 살덩이들을 쏘옥 쏘옥 잘도 가져가주었다. 처음 항암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던 날, 간호사들과 찍은 사진을 보다 깜짝 놀랐다. 사진 속 내 다리는 이게 진정 내것이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날씬해져 있었다. 그렇게 빼려고 안간힘을 쓰고 맥주병 소주병 다 동원해 밀던 종아리며, 말벅지가 이런 것인가 싶던 두 허벅지가 마치 남의 것을 붙여놓은 듯 몰라볼 모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학의 힘으로(?) 다이어트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투병 3년차 되던 겨울, 나는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돈이 있어서도, 해외여행에 미쳐있어서도 아니다. 함께 동행한 친구 녀석은 나쁜 놈에게 사기를 당해 매일 나를 붙잡고 울고불던 차였다. 하는 수 없이 녀석을 좀 진정시켜주려 쌈지돈을 쏟아부어 여행에 동행해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떠난 그곳에는 아름다운 리조트가 있었고 밤에도 은은한 조명과 함께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전용 풀장이 두 층에 걸쳐 있었다. 하지만 정말 내 마음을 잡아끄는 건 리조트 제일 안 쪽에 자리잡고 있는 프라이빗 비치. 넓지도 길지도 않았지만 나지막한 파도가 찰싹거리고 해변 곳곳에는 파라솔 그늘이 드리워진 비치베드가 쌍쌍이 놓여있었다. 가끔 잡지에서 보곤 하던 바로 그런 파라다이스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게다가 저녁이면 멀리 아름다운 석양이 물드는 곳이었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외국이 아니던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몸매와 상관없이 비키니를 입은 외국인 아가씨들이 해변을 거닐고 있는, 아주 자유로운 곳이었다.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 엎드려 호젓하게 혼자 독서하는 외국인들이 이곳에 있을 것만 같다. 아... 이곳은 그런 곳이다. 내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며 갖겠노라 다짐했던 그 장면을 마음껏 연출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곧장 수영복을 갈아입고 비치로 달려갔다. 실제 현장의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다. 바람은 따뜻했고 사람들은 붐비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거나 나 스스로 누군가를 의식하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나도 사진 속 그 연예인처럼 청순미 폴폴 흘러넘치리라 믿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래, 여자라면 해변에서 수영복은 한번 입어봐야지. 기왕이며 비키니로다가. 암요.

이 때 내 나이 서른 일곱. 머리는 군인스타일에 그마저도 항암 중이라 듬성듬성 꽤 빠져있다. 한 쪽 가슴엔 긴 수술 자국까지 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기뻤다. 해변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꿈꾸던 모습을 빙의해 볼 날이 왔다니. 외모는 어떨지 몰라도 기분은 20대 생기터지는 인터넷 사진 속 그녀가 되는 순간이었다. 참. 나이를 먹어도 여자라서 어쩔 수 없다.


아픈 4년의 시간에 사실 나는 꿈꾸던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며 미루던 가족관계의 발전, 용기가 없어 발조차 내딛지 못했던 내 길에 대한 발견과 도전, 나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의 치유 등 분명 예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각종 깨달음과 마음의 여유까지 눈에 보이는 것들과 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이다.

행복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드라마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오지는 않는다. 이것 또한 내가 얻은 소중한 깨달음이다.
중요한 것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날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와 같이 앞으로도 그럴 날들이 계속해서 때마다 올 것이라는 것이다.

참 지루한 이야기지만 살면 살수록, 인생을 겪으면 겪을수록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맞다는 걸 알겠다. 그 꿈을 얼마나 눈에 그려지듯 구체적이고 행동으로 이어질만큼 간절하게 꾸느냐 하는 건 본인의 몫이겠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욕심이란 걸 부려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욕심이 바로 내 남은 인생에, 그리고 우리 모두 각자 저마다의 삶에 창조력을 더해주는 중요한 원동력이니 말이다. 때론 엉뚱하고 무모할지라도 내 남은 꿈들을 무한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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