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아니면 또 언제 해보랴

인생은 결국 지나고 나면 한 때일 뿐

by 미스킴라일락


그 날이 나에게도 바야흐로 다가왔다. 암병동 환자들의 모습과 같아질 시간이.

암 병실에서의 첫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아침 기척과 동시에 어스름한 아침 빛에 비춘, 이 침대 저 침대에 앉아있던 비구니 스님의 모습을 한 환자들의 모습을 말이다. 환자들도 스스로 여기가 절이냐 병원이냐 농담하실 만큼 어렴풋한 빛에서 보면 영락없이 절복 입은 비구니 스님이었다. 병원복이나 절복이나 새벽녘에 보면 디자인도 비슷하다.


첫 항암제 투여 후 15일이 지나면 탈모가 진행된다고 하더니 서서히 베개에 머리털이 묻기 시작했다. 때는 12월 중순이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집에서도 매일 두꺼운 니트 카디건을 걸치곤 했는데 그런 옷에 머리카락이 붙기 시작하니 그걸 한 올 한 올 떼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결국 시원하게 밀기로 했다. 사실 어떻게든 버티고 싶은 마음에 고무줄로 머리를 단정히 한 갈래로 묶어놓고 비니를 눌러쓰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면 비니가 내 머리카락 때문에 털 비니가 될 지경이었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언니와 함께 화장실에 쪼그리고 앉았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언니가 머리카락을 가위로 크게 크게 잘라낸 후 작은 미용 면도기로 깨끗하게 밀었다. 하지만 둘 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미용실을 가면 편하겠지만 이미 미용실을 갈 타임을 놓쳐 선택지가 없었다. 탈모가 골고루 진행되었더라면 용기 내어 미용실에라도 가봤을 터인데 나는 유독 한쪽이 심하게 빠져버린 상황. 여자 골룸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혐오스러운데 남에게 보이기란 돈을 내준대도 싫었다. 하는 수 없이 애꿎은 언니한테만 또 매달린 것이다.

그런데 우린 처음부터 웃음이 ‘빵’하고 터졌다. 나이 서른 넘은 두 여자가 일곱 살 개구쟁이들처럼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무슨 어린애 장난하듯 작은 면도기를 들고 머리를 미는 이 상황이 우리가 생각해도 너무 웃겼다.

그렇게 즐겁게 눈물 콧물 짜는 사이 작업을 마쳤고 고개를 들자 언니의 얼굴은 순간 얼음이 됐다.

“왜?”

“네가 거울 봐봐”


오묘한 언니의 얼굴을 뒤로하고 일어나 거울을 봤다.

“이게 뭐야!”

이건 반전이었다. 나는 두상이 작아서 머리를 밀어도 예쁠 거라며 내심 기대했는데 이건 아니었다. 나는 슬프게도 끝이 뾰족한 두상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양쪽 귀의 특징이 한몫 더 했다. 내 귀는 또 끝이 살짝 뾰족한(긍정적으로 보자면 엘프녀 귀다) 귀였고 그렇게 뾰족한 두상과 뾰족한 두 귀가 함께 만나 가끔 영화에서 보던 완벽한 외계 생물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시원하게 머리를 밀었다는 뭔지 모를 성취감에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삭발녀가 됐다.

밤에 잠깐 심심한 찰나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외계인의 모습을 왠지 세상에 알리고 싶은 생각에 셀카를 찍었다. 그리곤 용기 내어 남동생에게 전송.

잠시 후 온 답장.

“합성했나?”

농담이 아니라 진짜 합성한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 나도 합성이었으면 좋겠다.


곧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다가왔다. 언니가 나를 위해 예쁜 털모자를 사주겠다고 나섰다. 이쁜 게 너무 많아서 내가 어떤 걸 골라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언니가 귀달이 털모자를 사라고 아우성을 쳤다. 암환자가 무슨 귀달이 털모자냐고 반문하니 그게 귀엽다는 그녀. 대리만족의 민낯을 드러내는 언니였다. 싫다는 나에게 그럼 정수리에 폼폼이가 달린 털모자를 써달란다. 하지만 의외로 고지식한 나는 그런 모자를 쓴 암환자는 본 적이 없다며 거절하고 빨간 군밤장수 털모자를 골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빨간 군밤장수 털모자를 쓴 암환자도 없는데 말이다.


얼마 후, 이번에는 용기 내어 병실에서 한 컷 찍어 올렸다. 그것도 카스에. SNS인 만큼 외모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그 빨간 모자와 함께 평소 아끼던 뿔테 안경을 끼고 웃는 표정을 짓는 것조차 힘든 탓에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지익 올려 웃는 모습을 연출해서 업로드 완료.

“어머, 너 아팠어?”

“친구야, 힘내!”

“응원합니다”

많은 지인들의 관심 어린 댓글이 달리는 가운데 유독 나의 마음을 소심하게 만드는 댓글 하나.

“모자가 없나 보네. 내가 이쁜 거 하나 보내줘야겠다.”

평소 센스미를 자랑하는 가까운 지인이었다. 이런. 그래도 뭐라도 답장을 해야 하는데 상처 받은 걸 티 낼 순 없었다.

“아냐. 모자는 많아. 크리스마스잖아. 메리 크리스마스!”

아! 그냥 언니 말 들을 걸 그랬나 보다. 그래도 그 친구는 눈치 못 챘겠지? 내가 그 말에 상처 받은 걸 말이다. 그럼 다행.


사실 어린 시절부터 헤어에 불만이 많았다. 중학교를 입학하느라 미용실로 가서 긴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랐을 때 속상한 마음에 말없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늘 긴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다니다가 갑자기 원하지도 않는 단발머리라니.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서니 그렇게 못 생길 수가 없었다. ‘댕강’하고 귀 밑으로 바짝 잘린 촌스러운 단발 길이, 제 멋대로 이리저리 휘어진 지저분한 웨이브, 넓은 앞이마와 그 일대를 정신 사납게 장식하고 있는 곱실거리는 잔머리, 전체적으로 빈약한 숱, 정수리를 중심해 두상 표면을 감싸고 있는 부슬부슬한 머리카락. 이 모든 것이 한 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빗으로 씩씩 빗어대며 아니, 뜯어내며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데 술이 살짝 취한 아빠가 들어오셨다. 단발머리를 하고 속상한 얼굴로 씩씩 대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신 후 무겁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닮아 그런데 아빠가 미안하다.”

그랬다. 우리 아빠가 정말 딱 그런 머리카락이셨다. 그래도 난 여잔데 너무했다. 하늘을 원망해야지.

비가 오지 않아도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늘 눈에 거슬렸고 때론 나를 우울하게 하는 장본인이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날 화장하기가 얼마나 성가시고 힘든 일인지 여자들은 잘 안다. 더군다나 뜨거운 고데기까지 잡아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불쾌지수가 솟구치는 일이다.


여자들은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예쁜 헤어에 대한 로망들이 있다. 풍성하고 볼륨감 넘치는 탄력 있는 헤어. 뭘 해도 예쁜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들을 보면 “옷은 날개입니다. 그러나 헤어는 모든 것입니다”라고 주장한 한 헤어숍의 카피에 뼛속 깊이 공감한다.

예쁜 헤어는 고사하고 감고 잘 말린 후 이마 주변에서 곱실거리는 머리카락들 진정시켜주기, 머리카락 끝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뒤집어지는 웨이브 바로 잡아주기, 정수리에서 부슬부슬 거리는 아이들 진정시켜주기. 이 정도만 하는데도 선천적 곰손이라 시간이 꽤 걸린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도 티도 안 나서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안 하면 괜히 길거리에서 뭇사람들에게 안구 민폐를 끼치게 된다고 생각하니 막 나갈 수는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생각했다.

‘아... 그냥 확 삭발해서 가발을 쓰고 다닐까 보다. 1석2조인데...’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했다. 머리를 감을 일도, 말릴 일도, 때때마다 머리 염색을 할 일도, 파마를 할 일도 한 번에 없어지겠지? 그뿐인가? 외출 때마다 머리를 붙잡고 시름하지 않아도 되니 허둥지둥할 일도 줄어든다. 이거 생각할수록 괜찮은 아이디어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바람이 세게 불면 재빨리 두 손으로 가발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수영장이나 공중 사우나에는 보통 용기 있지 않고서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는 일은 그 자체로 스릴 넘치다 못해 호러가 된다는 사실을, 아무리 태양이 뜨겁거나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에도 모자까지 덧쓰기는 정말 부담스럽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옆으로 살짝 가발이 돌아가는 순간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므로 늘 가발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물론 편리함을 다 누리긴 했다. 민머리의 최대 장점을 꼽으라면 샴푸 과정이 필요 없다는 것. 세수하다 쓱 같이 문지르고 헹구면 된다. 이렇게 좋은 걸 여태 몰랐다니. 진정한 자유를 맛본 듯했다. 두 번째는 역시 단장 시간의 축소다. 5분이면 끝이니. 사실 가발도 샴푸를 하긴 하지만 1주일에 한두 번 정도면 충분했다. 보통은 가발 걸이에 잘 걸어서 보관하다가 외출할 때만 쓱쓱 잘 빗어서 머리에 잘 얹어주면 끝이다. 드라이 시간, 스타일 시간을 다 줄여주는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사실 가발이라고 다 잘 어울릴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처음 가발 매장에 갔을 때,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풍성한 긴 머리 가발을 써봤다. 하지만 너무 마음에 쏙 들던 비주얼을 자랑한 장모 가발은 내가 쓰니 조선시대, 칼을 차고 다니던 백정의 모습이 되었다. 그렇게 이 가발 저 가발을 쓰다가 결국 발병 전 헤어스타일과 똑같은 단발 스타일의 가발이 제일 자연스러워 그걸 샀다.


벌써 세 번째 가발이다. 그 사이 두 번의 삭발을 경험해봤다. 이렇게 청춘의 끝자락을 대범하게 장식할 줄이야. 어쨌든 삭발하고 가발을 쓰고 다녀보겠다던 객기 어린 꿈이 이루어져 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 나준 덕에 가발 없이 숏커트 헤어로 다니는 중이다. 다행스러운 건 숱도 없고(원래 양보다 더 적어졌다) 길이도 짧은 곱슬머리 숏커트가 나에게 놀라울 만큼 너무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 내가 숱 없는 곱슬머리를 탓하며 그토록 찾던 인생 헤어였다.


아직도 여성스럽게 묶어지는 풍성한 헤어에 대한 로망이 조금은 남아있지만 이젠 이 모습을 받아들이고 살까 한다. 남들 다 잘 어울린다는 헤어스타일을 두고 굳이 실현 불가능할 내 희망사항을 고집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대신 제대로 즐겨볼까 한다. 지금의 베리베리 숏커트 헤어를.


이건 뭐지 싶은 '당황'할 일도, 이게 다 그놈 때문이라고 '원망'할 일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게 '망가져야' 할 일도 있겠지만 인생은 피할 수 없으면 하루빨리 인정하고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이때 아니면 내가 또 언제 이걸 다시 해보겠나 하는 마음으로. 한 번뿐인 인생인데 구를 땐 제대로 굴러주는 거다. 까짓 껏.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누가 뭐래도 재밌게 살란다.

예쁘게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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