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연명하듯 살긴 싫습니다

정말 장례 치르고 싶었던 것

by 미스킴라일락

어느새부턴가 병원 진료실 앞에 '연명의료 중단 상담'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망단계의 환자에 대해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생존 선택권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나 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떠나보내기로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가혹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목숨이 그저 유지된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올초에 할머니를 먼저 보내드리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임원이라는 게 되고 학교에서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안내에 따라 엄마 대신 할머니가 오셨다. 젊은 엄마들 틈에 고운 한복 차림으로 쪽머리를 하시고 수줍게 학부모 회의를 오셨던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 나에게 할머니는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주는 따뜻한 품이었고 성인이 된 후에도 그 따뜻함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덧 아흔이 넘은 연세로 힘없이 누워있었다. 올해 설 명절날 찾아뵌 할머니는 내가 아는 할머니의 모습은 아니었다. 정확히 산 송장에 가까웠다. 자리에 누우 신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이토록 쇠약해진 낯선 모습과 온몸을 상처 내고 있는 피부병은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그리고 겨우 잠깐씩 의식이 들었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과 그런 할머니를 더 잘 모셔드리지 못하는 나의 현실에 가슴은 미칠 듯이 괴로웠다.

할머니가 앓아누우실 때부터 함께 마음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던 나는 더 이상 그 모습을 차마 더 지켜볼 수 없어 귀가 어두우신 할머니를 앞에 두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할머니. 나 어릴 때 안 버리고 예쁘게 잘 키워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할머니한테 정말 잘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많이 미안해요.

그런데 할머니, 사람은 죽으면 영원히 없어지는 게 아니래요.

그러니까 걱정 말고 먼저 가 계세요. 그래서 우리 꼭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알겠죠?


할머니...

내가 정말 정말 많이 사랑해요."


나 혼자서 이 말을 하고 나니 뜨거운 눈물이 흘렀고 동시에 이제 정말 편안한 곳으로 떠나보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 찼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놀란 마음도 잠시. 오랜 아픔이 사라진 듯 오히려 더없이 평온했다.



대부분 또래들이 자기의 길을 발견해 자리 잡아가던 서른둘, 나는 그들처럼 그러지를 못 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건강검진센터에서 안내 도우미를 하고,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 대학가 호프집 서빙을 했다. 갑자기 해고가 된 후 갈 곳을 급히 찾느라 구한 일자리였다. 힘들었지만 힘들다는 말을 할 시간도 없을 만큼 하루하루는 바빴다. 가장 힘들었던 건 언제쯤 이 상황에서 벗어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었다. 그때 나 스스로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하루살이'. 그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었을까.


내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를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단지 생계만 간신히 해결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목표였다. 내일, 아니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는, 그야말로 하루 하루 연명하며 죽지 못해 사는 것만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내가 만든 결과였다.

명확한 꿈을 갖자니 모든 걸 다 걸어 도전할 자신도, 그렇게 도전해서 성공할 자신도 없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자니 어리석다고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까 두려웠다. 한번 내린 결정을 끝까지 밀어붙일 배짱도 약했던 나는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선택'을 늘 미루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몰랐다. 그 어떤 인생을 살아도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그 길을 '후회'할 수 있고, 때론 그 일로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할 수 있고, 그 일에 대해 늘 '자신감'이 가득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렇게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면서 비겁하게 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는 길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죽어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길이라는 걸 알았어야 했다.



4기 유방암 환자, 그중에서도 표적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3중 음성 유방암 환자의 예후가 현저히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안지 오래다. 사람들은 나의 병이 호전되기를 바라며 늘 안부를 묻고 더러는 기도를 해주고 더러는 좋은 것을 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에게는 건강 회복이 제1의 관심사는 사실 아니다.

글을 쓰기로 한 이후, 때론 하루 한 끼만 먹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붙잡고 있다가 휘청거리며 일어나기, 밤새도록 혼자 머리 굴리며 연구하다 다음날 탈진해버리기, 까짓거 하다하다 안 되면 굶어죽지 뭐 하는 마음으로 버티기 등 나는 꽤나 막무가내로 달렸다. 평균 생존기간이 고작해야 2,3년 남짓한 주제에 무슨 배짱이냐고 할 것이다.

물론 건강이 무사히 회복된다는 건 너무나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4기 암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이것이 내가 원하는 인생의 타이틀은 아닐 테니 말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기에 병이 나은 후 그때의 삶이 되풀이될까 너무나 두려웠다. 그리고 나 스스로 약속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이든 의미 없이 연명하듯 살지는 말자고. 그리고 한번 찾아보자고.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잘하지도 못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는 지금.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에 가깝다. 더군다나 나란 사람은 겁쟁이 아니었던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함부로 뛰어들지 않는 겁쟁이. 사람은 죽을 때가 가까우면 변한다더니 그 사이 나는 변했다. 좀 더 빨리 변했다면 좋았겠다 싶다.


그나마 가진 것을 어쩌면 모두 잃는다고 해도, 나를 놓아버려야 한다고 해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고 싶고 발견하고 싶다. 내가 어쩌지 못해 사는 삶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삶.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 그 삶이 있다고 믿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쩌면 위로하는 능력은 우주 최강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