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시절, 하루는 새로 이사 간 집의 싱크대 거름망이 지저분해 새 걸로 갈아 끼우고 있었다. 크기가 잘 맞아서 잘 샀다고 생각하며 물을 흘려봤더니 물이 바로 안 빠졌다. 이상하다 생각해서 다시 물을 흘렸는데 역시나 고였다가 서서히 빠지는 것이다. 같이 사는 친구를 불러 배수에 문제가 있다고 하며 보여줬더니 친구가 한 말.
“너 혹시 비닐 안 벗긴 거 아냐?”
맞았다. 비닐에 구멍이 막혀 물이 빨리 안 빠진 것이었다. 혼자 그 비닐을 벗기는데 하루 종일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보다 두 배는 무거운 상실감이 나를 짓눌렀다. ‘으이그, 이 바보멍충이야’라는 말이 또 속에서 한차례 내게 쏟아졌다. 그런데 이 날은 평소보다 훨씬 더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기가 죽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마음 한편으로 나 자신이 안 된 생각이 들어 다시 차분하게 타일렀다.
“바보... 이건 포장 뜯을 때 잘 보고 이렇게 다 뜯었어야지. 이제 알겠지? 다음부터는 꼭 그러자.”
평소에 나는 말도 안 되는 실수들을 많이 했다. 내가 봐도 어이없는 실수들이 많았다. 계산을 잘해놓고 손님과 대화하다 순간 착각해 5만 원짜리 지폐 대신 만 원짜리 지폐를 내어주고 보내는가 하면(다행히 잘 처리했다) 준비를 잘하고 시간 맞춰 집을 나섰는데 어젯밤에 철두철미하게 준비해둔 서류는 두고 오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통화하다가 선반에 가방을 올려둔 채 하차해버리기도 해서 출근하자마자 철도 분실물 보관소에 연락을 돌리고 가방을 추적하느라 난리를 피우기도 했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는 분명 나의 단어였다.
어린 시절, 밖에서 뛰어놀다가 넘어져 다쳐서 집에 가는 날이면 그날은 약보다 욕을 더 많이 얻어먹곤 했다. 그런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던 나는 초등학교 시절 내내 크게 다칠수록 오히려 감추는 버릇이 있었다. 상처가 아픈 것보다 욕을 듣고 혼나는 게 더 싫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때 치유하지 못한 상처는 고스란히 흉터로 다리 여기저기에 남아버려 무릎은 늘 가려야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한참이 흐른 후에 알았다. 유리컵을 실수로 떨어뜨려 깨뜨리면 “으이구, 조심 좀 하지!”가 아니라 “괜찮니? 안 다쳤어?”라는 말을 먼저 들어야 한다는 걸. 그 말 한마디를 배우며 또 알았다. 실수하고 다치고 아프고 놀랬을 때 누군가로부터 듣는 위로 한 마디가 사람에게 얼마나 필요한 말인지를.
초기암 치료로 항암을 할 때 나는 많이 지쳐버렸다. 약이 투여되고 난 다음 날이면 온 몸에서 반응이 시작됐다. 히어로 영화에서 보면 악당들이 생체실험을 하는 장면이 가끔 있는데 주삿바늘을 통해 사람들에게 약물이 투여되면 그들에게는 이상한 반응들이 나타난다. 갑자기 부룩부룩 소리가 나며 피부 여기저기서 뭔가 튀어나올 듯 올라오기도 하고 눈동자 색깔이 변하기도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나도 그런 영화 속 인물이 된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약 기운이 퍼지면 많은 자유시간이 부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사지가 멀쩡함에도 나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서 주로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34살의 건강해 보이는 젊은 여자를 순간 비실비실한 약골로 만들어버리는 게 항암제의 무서운 모습이었다. 약기운이 맥시멈을 찍고 있을 때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내 숨소리가 감지되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생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떴다만 반복하곤 했다.
항암제가 온몸에 퍼지고 나서 다시 서서히 몸 밖으로 어느 정도 빠져나가면 살짝 기력이 생기는 시간이 있다. 다음 항암제가 투여되기 전까지의 1주일 정도다. 그 시간엔 그동안 못 한 샤워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마음처럼 쉽지 않아 언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도움을 요청해야 간신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런 날이면 혼자 샤워 준비를 하다가 여지없이 나는 거울 속에서 외계인을 만났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도록 볼륨감 없이 깡마른 몸, 매끈하고 끝이 약간 뾰족한 민머리(내 두상이 뾰족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눈썹 없는 얼굴에 역시 뾰족한 두 귀를 한 외계인이었다. 외계인의 눈은 퀭하고 초점이 없었는데 얼굴뿐 아니라 온 몸의 살가죽이 다 쳐져있고 탄력이라는 건 없었다.
처음엔 많이 낯설었다. 아니, 충격적이었다. 아직 그래도 한창때인데 이런 몰골을 한 나를 본다는 것이. 뭔가 허무한 마음이 파고들었다. 어쩌다가 이 나이에 여기까지 온건지.
어느 날, 거울 속 측은한 외계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너, 정말 못 생겼다. 진짜 못 봐주겠어.
그리고...
고마워. 힘들텐데 이렇게 잘 견뎌줘서..."
언젠가 이 시간들이 지나더라도 한때 피부미인이던(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예전 얼굴로 다시 돌아갈 순 없을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수술이란 걸 하기 전날 밤에도 잠이 오지 않는 병실에서 혼자 누워 나에게 그런 말들을 건넸다.
‘가슴아, 잘 들어. 내가 좀 미안한 일이 있어.
안 그래도 너를 그렇게 성장시켜주지는 못 해서 미안했는데 말이야...
내일이면 그 마저도 더 작아질 거란다. 흉터까지 생길 거야.
내가 지켜주지 못해 많이 미안해.’
다음날 나는 예정대로 오른쪽 가슴에 칼을 대서 암세포를 중심한 일부분을 도려냈다. 전절제가 아니라 부분절제로 이루어져 다행히 외관상 큰 변화는 없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남의 것을 허락 없이 쓰면 실례지만 동의를 구하면 문제가 없듯이 왠지 내 몸에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덜 무거웠다. 그리고 그날 밤의 내가 한 이야기에 마치 대답하기라도 한 듯 긴 수술 흉터는 예쁘게, 너무나 잘 아물어줬다. 참 고마웠다.
아이들도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가 혼내고 야단치는 것보다 잘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번 생이 처음인 우리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실수하지 않을까. 그런 실수를 할 때마다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비난할 때도 나만은 나를 일으켜 세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