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니스트로 산다는 것

조용함은 치유로 이어진다

by 미스킴라일락

나는 하루종일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그 시간 내내 티비를 켜지도 않고 음악도 듣지 않는다. 우리 집에서 하루종일 나는 소리라곤 이따금씩 전기밥솥에서 딸깍하고 자동으로 전기가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소리, 자다가 깨서 야옹야옹 하고 울며 나를 찾아오는 고양이 소리, 그리고 24시간 내내 밝으나 어두우나 솨아~하고 중저음으로 깔아주는 공기청정기 소리, 마지막으로 토닥토닥 찍어내려가는 내 키보드 소리 정도다. 소리 자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이런 저자극 100% 유기농 소리를 좋아해서 일부러 조용하게 있는다. 조용하게 있으면 마음도 한결 편안해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는 산책인데 혼자 집 뒤편 산책로를 걷고 있으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차르르 하고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어디선가 날아온, 모습을 알 수 없는 새들의 예쁘고 신비로운 노래소리도 아름다운 또 하나의 음악이다. 이렇게 숲길로 몇 발자국 걸어 들어가 호젓한 분위기에 젖노라면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게 된다.

‘아! 천국같아.’

이 시간엔 그냥 조용히 혼자 걷고 싶다. 물론 다들 바빠 대낮에 한가로이 같이 걸어줄 사람도 없겠지만. 숲속의 정취에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놀라운 힘이 있다. 아무말을 하지 않지만 어느 누구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있는 듯 말이다.


어린 시절, 혼자 있는 시간은 무서움이 느껴져 티비라도 켜놓아야 했다. 한번씩 운 나쁘게 하필이면 ‘전설의 고향’같은 공포극 재방송에 걸려 그야말로 식겁해야 했지만 그럴지라도 조용한 집은 정말 싫었다.

성장한 후 그런 무서움은 사라졌지만 자취방에서, 회사에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혼자 있게 되는 조용한 시간이면 여전히 그 자리는 음악이나 늘지도 않을 영어강의로 채워졌다. 심지어 새벽기도에 참여하는 시간에도 내 귀에는 잔잔한 성가연주곡이 이어폰을 따라 흘렀다. 소리 없이 조용한, 공백 같은 시간을 의외로 잘 못 견디고 살았다.

게다가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하던 직장은 쇼핑몰인 탓에 하루 종일 최신가요가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걸 매일 듣는다는 건 생기 넘친다기 보다는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특히나 뜨거운 여름날엔 빠른 비트의 댄스곡들이, 목에 핏대 세우며 불렀을 고음의 곡들이 듣는 자체만으로도 같이 숨이 차고 신경이 질겨지는 느낌이라 귀에 부담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혼자 있는 조용함을 사랑하게 됐다. 카페나 택시 안에서도 음악 소리를 줄여달라는 부탁을 많이 하고 어딜 가나 가장 조용한 곳을 찾아 외따로 떨어져 있는다. 게다가 시끌벅적한 시내 도심, 여행지, 유명 맛집 같은 곳은 아예 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노년은 꼭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지금보다 더 조용히 살까도 생각 중이다.


병원에 두 번째 입원했던 날이 생각난다. 초기암 치료 이후 줄곧 집에서 있다 폐전이판정을 받고 조직검사를 하게 되어 입원한 날이었다. 입원한 첫 날 밤 느낀 평온함은 잊을 수가 없다. 병원에 장기간 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오랜만에 쉬러온 듯한 기분이었다. 저녁을 먹고 잠시 뒷정리를 마친 후 혼자 있던 병실에서 일찌감치 불을 끄고 누우니 창밖에는 멀리 다리위로 가로등 불빛이 빛나는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병실 문 밖에서 들리는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옆 침상 환자 보호자와 간병인의 걱정어린 대화소리는 졸음을 살포시 몰고와 주었다. 병원 침상의 서걱거리는 이불도 왠일인지 친근했다. 모든 공기가 마치 ‘잠시 쉬었다 가면 돼’하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아주 깊은 잠을 달콤하게도 잔 기억이 난다. 암투병을 한 약 4년여의 시간을 통틀어 내가 가장 잊지 못하는 밤 중 하루였다.

그 전에도 투병하느라 쉬었지만 그땐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항암부작용에 시달리느라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긴장이 풀릴 정도로 컨디션이 좀 회복되면서 부터는 이제 뭐해먹고 사나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에 뛰어들지도 못하면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혼자 아등바등했었다. 그런데 전이 판정을 받으면서는 달랐다. 정말 모든 걸 다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용하게 그동안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많이 가져본 것 같다. 그리고 그 날 밤의 깨달음을 믿기로 했다. 쉬었다 가는 타이밍.


이 시간동안 나에게는 몇가지 변화가 있었다. 글을 쓰게 됐고 삶에 대한 더 깊은 감사를 알게 됐고 새로운 희망도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대단한 일을 해놓지는 못했지만 아무도 모르더라도 나란 사람 자체의 가치에 대해서도 매일 매일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 전처럼 깎아내리지 않고 말이다. 혼자 조용히 쉬는 동안 내가 이룬 변화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 때보다 훨씬 깊고 풍부하다. 타인으로부터 떨어져 혼자 있는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수없이 느꼈을 타인과의 비교로부터도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에 대해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하나씩 다시 발견하게 해주었다.


내 귓가에 늘 맴돌던 소리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동시에 내 마음 속의 내가 어쩌지 못하는 걱정과 근심들도 하나씩 덜어냈다. 그러자 그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던 숨은 소리들이 얼굴을 내밀며 내 귀에 들렸나보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숨어있던 진짜 내 소리들도 하나씩 자신의 존재를 있는 힘껏 소리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소리가 하나씩 내 마음의 신호에 잡혀 그 신호를 따라 한 걸음씩 내딛어 왔다.


내게 조용한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다. 더이상의 상처로부터 나를 방어하는 시간, 나 스스로의 자생력이 살아나는 시간, 다시 일어나 걷고 뛰게 할 힘이 키워지는 시간. 어쩌면 이렇게 쉬었다 가는 시간은 더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지금 나는 조용한 시간을 가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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