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밤은 아름다워

책과 친구가 된다는 것

by 미스킴라일락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이 시간을 뭔가 더 알차게 보내겠다는 다짐으로 찾아간 우리 동네 핫플레이스 '책 대여점'. 선생님이 방학식날 나눠주신 유인물에 ‘청소년 권장도서목록’이라는 표가 있었고 방학 동안 그 목록을 섭렵해보기로 했다. 나름 비장한 마음을 먹고 집어 든 첫 책은 목록번호 1번, ‘데미안’.

데미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스토리가 어떤지, 왜 추천도서인지 사전 지식 하나 없이 집어 든 책은 첫 장을 넘기는 데만 30분. 한글인데 무슨 말인지 전혀 머릿속으로 입력이 되지 않아 다시 읽고 다시 읽다가 그렇게 시간만 끌기를 며칠째. 집중을 못해서 그렇다며 애꿎은 내 정신만 나무라며 방학 내내 시름을 했다. 어느덧 꾸역꾸역 절반 넘게 읽어 간 책이었지만 여름의 열기와 함께 쳐다만 봐도 쏟아질 것 같은 졸음과 지루함에 결국 완독은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도 여전히 내 머릿속에 이 소설의 스토리와 등장인물은 전혀 기억에 없고 문양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카인이라는 단어만 맴돈다.

사실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선생님이 책을 많이 읽는 아이를 좋아하셨기 때문인데 안타깝게도 재밌게 읽은 책은 기억에 없다. 대신 담임 선생님께 특별히 하사 받은 책을 정말 열심히, 그러나 ‘재미없게’ 읽은 기억은 있다. 그 유명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다. 어쩐지 내 감성이란 녀석은 아무리 훌륭한 책을 읽고 읽어도 촉촉하게 글 안으로 젖어들지 못한 채 겉돌았고 괜스레 나의 이해력에 대한 의구심만 품게 했다.

이렇게 책과 나와의 거리는 꽤 어색하게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우리 사이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스무 살 그리고 스물한 살의 내 머릿속은 실타래가 엉킨 듯 도저히 풀지 못할 것 같은 문제들로 가득 엉켜있었다. 나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고민과 걱정들을 가지고 면담하러 간 자리에서 오히려 상처를 받고 돌아오기를 몇 차례. 그렇게 받은 상처 덕에 다행히 어린 나이에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혼자서도 잘 서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과도 거리를 둔 탓에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은 길어졌다. 하루는 울적한 마음을 잊어버리려고 사람이 많은 시내로 혼자 조용히 나섰다. 당연히 혼자 갈 만한 곳은 많이 없었고 그러다 생각난 곳은 대형서점이었다. 그곳은 딱 내가 원하는 곳이었다.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펼쳐 든 책에 빠져 두 시간 동안 선 자리에 박힌 듯 멈춰 서서 책의 반을 읽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세상에는 재밌는 책이 많은데 그걸 몰랐을 뿐이란 걸.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듯 책을 좋아하는 취향도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심오하고 아름다운 문학보다는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문학의 아름다움에 눈 뜨지 못했다는 건 애석하지만 그렇다고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뭐라도 좋아하는 게 있으면 다행이니까.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와 함께 매일매일 애청한 프로그램이 ‘동물의 왕국’이기도 했었으니 취향은 자유다.


책은 그 이후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말수가 적어 친구도 별로 없었고 가까운 어른이 있지도 않아 말할 일이 적어 늘 입을 닫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에겐 누군가 이해할 수 있는 문제보다는 나조차도 깔끔하게 한 마디로 정리되지 않는 문제들이 가득했기에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책은 내 이야기들을 먼저 묻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내가 말하지 않은 그 이야기들을 책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가만히 책 속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 위로를 주고 새로운 힘을 주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책’이 있어 너무 다행이었다. 그런 경험이 한 번 두 번 쌓이면서 자연히 마음이 힘들 때면 사람이 아니라 책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오히려 더 기다리게 되었고 어디서든 책이 있으면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듯이 세상에 많은 책들이 있다. 사람들 중에 나와 잘 통하는 사람이 있듯이 책 중에 나와 잘 통하는 책이 있다. 그래서 책을 고르는 시간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시간처럼 설레고, 잘 들어주려고 집중하게 되고 통하는 부분이 있으면 흥분하게 된다.


하루 15시간을 일하는데도 희망이라는 게 없던 시절, 나를 견디게 한 것은 잠자기 전 베개 위에 펼쳐놓고 어스름한 불빛 아래서 읽던 책이라는 사치였다. 그렇다. 그것은 사치에 가까운 짓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정녕 행복했다. 그 시간은 내가 혼자라는 것도, 조용하다는 것도, 불빛이 비추인다는 것도, 읽고 싶은 글이 있다는 것도 온통 다 나를 설레게 했다. 혼자 조용히 이불 안에서 책 읽는 밤 시간이 미치도록 좋았던 것이다. 마음이 평안해지는 느낌도 느낌이지만 어쩌면 그 시간만큼은 내가 오직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낮은 나의 자존감이 그 시간만큼은 회복되는 듯한 시간.


아파서 좋은 게 하나 있다면 쉬는 시간이 많아 책을 읽을 시간이 많다는 것. 물론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야 한다. 병실에서 푹 빠져 읽게 했던 《동주》의 여운은 아직도 나를 감상에 젖게 한다. 남은 시간에 대해 생각할 때 읽던《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남은 여명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한 내 결심이 맞다는 걸 확인시켜 줬다. 스스로 성격에 문제가 있다며 자기 비하에 빠지곤 했는데 《혼자가 편한 사람들》을 읽고 그것은 단지 내향적인 성향의 차이임을 알게 되었다. 투병에 집중하면서도 나만의 길을 발견하고 싶어 마음도 생각도 강하게 하고자 읽고 또 읽었던 《자기 신뢰》 등 다 나열할 수 없지만 투병기간에도 좋아하는 책들이 꽤 생겼다.


저자가 혼자 있는 시간에 썼을 글을 내가 혼자 있는 시간에 읽는다는 것. 책을 읽는 시간은 그와 내가 직접 만나는 시간보다 어쩌면 더 깊은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과시하기 위해서도, 의무감에 의해서도, 맹목적인 교양을 위해서도 말고 정말 나를 위한 책을 찾아 읽는다면 말이다. 이 멋진 만남을 위한 시간이 많다는 건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희열을 느껴본 사람은 안다. 정말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면 한 장 한 장을 넘기기가 얼마나 아까운지. 그렇게 아껴가며 책을 읽는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게 느껴지는지. 내 취향에 맞는 재밌는 책을 찾기 위한 노력의 시간은 길지 몰라도 그렇게 찾은 책은 남은 평생의 시간 내내 특별한 추억을 누리게 해 준다.

많은 책을 읽지는 않지만 나에게 책은 한 권 한 권 소중한 인연과도 같다. 아마 이것도 사람을 많이 사귀지 못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오래도록 사귀는 내 성향 탓인 듯하다. 이렇게 앞으로도 오랜 시간을 나는 책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 나에게 노년기가 허락된다면 그 날의 내가 시력이 너무 빨리 나빠지지 않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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