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이겨내야 하는 시간들

장기 투병환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

by 미스킴라일락

내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였다.

자전거 대여소가 있는 부산의 한 공설 운동장으로 몇몇 친구들과 같이 가서 자전거를 일단 빌렸다. 갓 스무 살이 넘은 나는 태어나서 처음 만져보는 자전거였다. 그리고 공터로 가서 자전거를 이미 탈 줄 아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랬더니 하나같이 다 이렇게 말했다. 한번 넘어지고 나면 타게 돼 있다고! 그 말을 철떡 같이 믿었다.


‘그래, 넘어져봐야 자전거를 타는 거니까 겁먹지 말고 넘어져보자!’


“꺄아아아아~~~!!!!”


죽을 뻔했다.

친구들 말만 믿고 이제 겨우 발을 뗀 주제에 겁 없이 자전거 페달을 힘껏, 아주 힘껏 밟았는데... 아뿔싸! 원치 않게 내리막길로 연결된 길로 빠져버렸고 내리막 길 끝은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였다. 어떻게 세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내리막길 끝에서 멈춰 서며 넘어졌고 무릎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 다행이었다. 게다가 친구들 말대로 된 것 같다.

이렇게 크게 넘어졌으니 이젠 나도 친구들처럼 자전거를 잘 타겠거니 생각하고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봤다. 평소에도 워낙 잘 넘어져서 무릎에 피 따윈 잘 닦아주면 끝이었다. 그보다는 대여소에서 빌린 자전거가 멀쩡해 다행이다.

자전거에 올라 페달에 발을 놓고는 반대 발을 바닥에서 뗐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나는 여전히 비틀거리고 자전거와 따로 노는 것이 아닌가.

‘뭐지?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 정말...’

왜 나는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전거 균형을 못 잡는 것일까. 왜 쟤는 오늘이 처음이라면서 저렇게 금방 잘 타는 것일까. 속상했다. 열심히 따라 하는데도 안 되니 말이다.

그런데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는 ‘감각이 자라는 시간’이 달랐던 것이다. 남들은 몇 번 해보면 생기는 감각 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배구 토스를 처음 배우던 날, 체육선생님은 얼굴 그을려가며 연습하는데도 도저히 늘지 않는 나의 토스 개수를 안타깝게 여겨 개인 레슨까지 해주시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 당일 B점밖에 못 받지 않았던가. 몸의 감각으로 해야 하는 건데 머리로 하려고 하니 힘든 것이다. 자전거 균형 잡는 법을 말로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지구 상엔 단 한 명도 없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영원히 못 한다. 나는 자전거를 꼭 타고 싶으므로 속도가 더디더라도 꼭 배우기로 했다.


그 후 서울로 이사를 했고 겨우겨우 용기를 내 혼자 한강공원 자전거 대여소를 찾아갔다. 구석진 곳을 일부러 찾아가 비틀비틀 거리며 중심잡기 연습을 해봤다. 나쁘지 않았다. 일단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공터라 다칠 사람도 나 말곤 없어 안전했다. 다만 아쉬운 건 뒤에서 누가 잡아준다면 페달을 굴려볼 수도 있고 그러면 감각이 더 빨리 생길 것 같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 그렇게 혼자 틈나는 대로 공원 구석에서 시간을 갖다 보니 혼자 비틀비틀거리며 50미터가량을 한 번에 갈 정도가 되었다. 아!! 나도 간다, 간다!!

그 느낌을 제대로 살려 보고 싶었다. 욕심이 났다. 나도 자전거길을 달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 자전거길은 늘 사람이 많아 용기가 안 났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혼자 도전해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처음 글을 배우고 자기만의 표현을 할 때 아무도 못 보게 꼭 한 손으로 가리고 혼자 글을 쓰는 느낌이랄까.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바람까지 많이 부는 날인데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춘천까지 갔다. 지하철 춘천역에 내리면 조금 떨어진 곳에 공지천이라는 호수가 있는데 그곳에 자전거길이 잘 되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자전거를 타러 간 것이다. 겨울에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 기대하고.

도착해보니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정말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없었고 자전거 대여소 할아버지는 이런 날에 무슨 자전거를 타냐며 의아해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였다. 생각보다 너무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미쳤나 봐, 나 이거 타다가 사고 나는 거 아냐?’

순간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다며 잔뜩 긴장해서 자전거를 끌고 공원을 찾아갔다. 나는 길치라 공원까지 가는 길도 헤맸다

간신히 공원에 도착했다. 휑한 호수와 잘 닦여진 자전거길이 맘에 쏙 들었다. 완벽했다. 자전거에 앉아서 발을 떼 보는데 평소보다 훨씬 더 중심을 못 잡았다. 갑자기 낡아 보이는 자전거가 의심스럽지만 바꾸러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혼자 중심을 잡아보겠노라며 낑낑대는데 누가 보는 건 아닌지 의식까지 되기 시작한다. 이 추운 날 강바람까지 맞아가며 인적 드문 공원에서 혼자 왜 저러나 할 것만 같았다.

갑자기 혼잣말이 터졌다.

“괜찮아,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자, 침착하게...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계속 중얼중얼 거리며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두 발을 뗐다. 그리고 몇 번 더 연습하다가 본격적으로 호수 둘레길에 올랐다.

‘설마 호수에 자전거 탄 채 빠지지는 않겠지?’

다행히 물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다만, 코스의 절반을 넘은 지점에서 자전거가 갑자기 고장 났을 뿐.

‘아... 아무도 없는데... 이걸 끌고 혼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일단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때였다. 커브길을 돌아 유유자적 자전거를 타고 오시는 풍부한 풍채의 아저씨를 발견했고 용기 내어 도움을 청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도 속도가 느린 데다 자주 멈추고 불안하게 페달을 밟으니 체인이 원래 위치에서 빠진 거였다. 간단한 수리로 금방 끝났다.

그날 결국 호수를 한 바퀴 다 돌고 혼자 감격한 나머지 파이팅이 넘쳐 한 바퀴를 더 돌기로 작정했고 그렇게 두 바퀴를 다 돈 후 당당하게 자전거를 반납하러 돌아왔다. 심지어 돌아오는 길엔 횡단보도 건널 때도 자전거를 타고 건넜다. 갈 땐 호수에 도착할 때까지 끌고 갔었는데 말이다.

그 날의 수고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꿈을 이루었다. 혼자인 것이 불편해서 계속 미루기만 했다면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부러워만 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뒤에서 내 자전거를 밀어달라고 부탁할 만한 한가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가 되는 상황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감당해낸다면 성장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과거의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나는 혼자가 되어야 할 선택의 순간을 두려워하진 않았었다. 뒤돌아보면 참 과감했지만 대책 없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추억이다.


투병의 시간 동안 때론 생사를 두고 겁을 먹기도 하고 처음 겪는 문제들 앞에 좌절하기도 하고 고통의 시간을 참아내느라 혼자 울기도 했다. 중병을 앓고 있으니 어딜 가나 늘 보호를 받는 입장인데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철저히 혼자임을 더 실감했다. 결국은 함께하기보다 혼자 이겨내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인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투병의 어려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의 시간이 있었고 나처럼 장시간 중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그런 과정은 꼭 필요하다. 아프다고 내 응석을 다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은 모두가 다 각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성장해내기 위해 도전 중이다. 그리고 그 도전에서 우리 모두는 혼자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건 그런 각자의 길을 끝까지 가자고 서로를 응원해주는 것 정도가 아닐까. 혼자라 외롭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순간이나마 같이 걸어준 이들의 고마움을 더 알아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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