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보며 견뎌낸 시간들
중 3 때 내 별명은 ‘들썩들썩’.
뒷자리에 앉은 현정이란 친구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수업시간에 자주 혼자 엎드리고 소리 없이 어깨만 들썩들썩거린다고 말이다. 사실은 한 입담 하는 현정이 때문에 웃음보가 터져 선생님께 들키지 않으려고 엎드려 입을 틀어막고 배를 움켜쥐고는 어깨만 들썩거리며 웃음보를 삭히는 중이었다. 당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늘 현정이의 입담에 그렇게 KO를 당한다. 그걸 알기에 그녀는 일부러 수업시간에 늘 나를 공격했다. 참 좋아하는 친구인데 그럴 땐 너무 얄밉다.
대학교 때 내 천적은 두 학번 밑으로 들어온 남자 후배 경원이.
꼭 점심시간이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 “누나, 같이 먹어요” 하고 어느새 내 맞은편에 앉는다. 목적은 하나. 경원이는 일단 빛의 속도로 밥을 먹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여유롭게 숟가락을 놓으면서 동시에 작전을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엔 교내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입담이 뛰어났다던 이 녀석의 표적은 역시 나다. 웃느라 시간 안에 절대 밥을 다 못 먹게 만들기. 아무리 기를 쓰고 안 웃어보려고 해도 늘 나의 패배다.
그렇게 웃음보가 잘 터지는 탓에 지인에게 공연 중 자기 차례가 되면 잘 좀 웃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을 정도다. 개그프로 방청객으로는 아주 훌륭한 재능이다.
그런 재능 덕분에 자칫 우울하고 지루할 수 있는 지금의 기간들을 보내는 데, 그리고 보내온 데 큰 힘이 되었다. 마음이 괜히 우울하고 아무 의욕도 없을 때, 이따금씩 어지러움으로 누워만 있어야 할 때, 그리고 통증이 느껴져 예민해지는 항암주사 시간. 나는 하는 일이 딱 정해져 있다. 바로 유튜브 채널의 1박 2일 시청이다. 강호동, 김종민, 이수근, 이승기. 엠씨몽, 김C, 은지원이 주요 멤버로 활동한 시즌의 영상이다.
TV를 따로 시청하며 지내지 않은 아니, 못한 탓에 예전 영상들이긴 하지만 다 나에게는 처음 보는 새로운 영상들이었고 언제나 신선한 웃음을 가져다준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편을 보며 만족했는데 점점 횟수가 늘어 하루 종일 보는 일도 잦아지고 때론 밤을 새울 때도 있었다. 그렇게 보고 또 봐도 새로운 회차의 영상은 떨어지지 않았다. 실로 놀라운 양이었다. 여전히 내가 못 본 분량이 차고 넘친다. 이렇게 나는 웃음을 공급받을 믿을만하고 안전하며 풍부하기까지 한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나 재밌는 프로그램을 실컷 볼 수 있다니. 나영석 피디에게 고맙고 1박 2일 멤버들은 존경스럽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은 자랑스럽다. 그렇게 나는 예능프로그램과 함께 이 시기를 깔깔깔 웃어대며 잘 이겨내고 있다.
우울할 때 웃음만 한 건 없을 것 같다. 웃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머릿속에 나쁜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으니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이 복잡해지지도 않는다. 쓸데없는 생각들, 풀지도 못할 문제들에 싸여있느니 차라리 무념무상 웃으면서 현실에서 벗어나는 건 꽤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웃음은 이렇게 단순히 현실도피에 그치지 않았다. 웃음의 효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한바탕 크게 웃을 때 우리 몸속 231개의 근육과 206개의 뼈가 한꺼번에 움직인다고 하는데 이것은 5분 동안 에어로빅을 한 것만큼의 열량 소비와 동일한 효과라고 한다. 그리고 웃음은 혈압을 낮추고 혈액순환을 개선하며, 면역체계와 소화기관의 안정까지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리고 암을 사멸시킨다는 산소의 공급량을 2배로 증가시킨다고도 한다.
그뿐 아니다. 엔돌핀, 엔케팔린 등의 호르몬을 분비시켜 여러 통증을 잊게 해 주고 스트레스를 이겨낼 힘을 주기도 하며 ‘웃음치료’를 통해 몸의 면역세포와 항체 생산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임상실험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웃음의 의학적 효과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미국의 리버트 박사는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의 피에는 암을 일으키는 종양세포를 공격하는 ‘킬러 세포’가 많이 생성되어 있다. 이는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암과 성인병을 예방해준다”라고 주장한다. 실제 코미디물을 보고 난 사람들의 혈액검사 결과 병균을 막는 항체가 무려 200배나 증가한다고 한다.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려서 여명 6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집안에 틀어박혔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다. 어떤 치료행위도 하지 않고 꼬박 6개월을 집에서만 지냈다고 한다. 그 6개월 동안 그는 혼자 평소 좋아하는 코미디 프로를 보며 실컷 웃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여명을 훌쩍 넘도록 잘 지냈고 결국에는 암이 나아버렸다고 한다. 아주 아주 어릴 때 들은 이야기였는데 그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잘 기억했다가 나도 혹시 그런 상황이 생기면 그렇게 따라 해 봐야겠다 라고.
그래서일까. 집에서 한가로이 유튜브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참 많이 웃어본 것 같다. 그동안 TV를 못 보고 지냈던 것이 다행스러웠다.
때론 어두운 방구석에서 긴 터널을 지나듯 숨죽여 살아야 하는 시간도 있다. 어차피 지나야 하는 어두운 터널이 너무 지루하지 않도록, 너무 우울하지 않도록 웃음이라는 처방을 내려보길. 그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견디다 보면 어느새 터널의 끝에 이르러 어둠 밖으로 나와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걷게 될 날이 있을 거라고 믿는 힘이 꽤나 크다. 그 믿음이 희망이 되었고 그 희망이 현실이 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