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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Apr 23. 2019

집으로 갑니다.

편히 쉬게 해주는 곳.

 3월 중순. 아직 꽃이 피지 않았지만 따뜻한 바람이 꽤 불기 시작하는 기분 좋은 봄날에 오랜만에 병원을 나와 외출을 했다. 서울 A병원에 몇가지 서류를 요청하러 가는 길.

 매주 가던 병원 일정이 갑자기 뚝 끊어져서 뭔가 허전했는데 오랜만에 가니 괜히 기분이 좋다. 2년 넘게 다니면서 그 사이 A병원과도 정이 많이 들어버렸나 보다.

 

 그런데 내 기분이랑 달리 컨디션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버스에서 속이 울렁거려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병원에 도착할 즈음에 이미 녹초가 되어 버려 그 좋던 기분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원래 계획은 병원업무가 끝나면 서점에 들려 책구경도 하고 병원 근처 공원도 거닐면서 꽃봉오리 구경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하철 입구에 내려 병원까지 가는 그 짧은 거리도 중간에 몇번이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탓에 그 곱던 나의 계획들은 어서 빨리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수정됐다.


 요양병원을 떠난지 시간만에 A병원 입구에 간신히 다다랐다. 잠시 쉬었다 들어가려고 편의점에 들렸다. 음료수 두 병과 초코쿠키, 에너지바, 아이스크림 등 간식거리를 한아름 사들고 나와서 맞은편 화단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스듬히 비추이는 햇볕을 쬐며 초코 아이스크림을 하나 깨물었다. 점심시간이라 여기저기 병원 직원들이 둘러서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였다. 멀리 셔틀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 삼삼오오 모여 식당으로 이동하는 모습 모두 그대로였다.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이다.

 그런데 그 건강한 모습들이 아픈 몸을 하고 바라보는 눈에는 조금 어색하게 다가왔다. 낯설었다. 며칠이라도 입원해있다가 나오면 늘 느끼는 감정이다. 입원의 여파가 몸보다는 정신적으로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군인이 제대 후 민간인 신분으로 바뀔 때 한동안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너무나 잘 이해된다.


 병원에 들어선 지 30분도 안 걸려 병원 일정을 끝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왔다. 늘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오가곤 했는데 올해 들어 컨디션이 나빠진 탓에 지하철 이동시간을 최대한 줄이느라 병원에서 가까운 동서울 터미널로 변경했었다. 덕분에 터미널에 내려 A 병원까지 가는 이동시간은 줄었지만 나머지는 불편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 제일 불편한 것은 배차시간. 15분에 한 대씩 있던 차가 이곳에서는 1시간 간격이라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이 날도 미리 계산을 하고 왔는데 착오가 있어 결국 5분차로 버스를 놓쳐버렸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한 시간동안 너무 갈등이 되었다. 내 원래 계획은 서울에서 일정을 끝내고 오랜만에 집으로 갈 계획이었다. 터미널에서 한시간 반을 달려서 도착하면 그곳에서는 택시로 10분이면 집이니 어서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 외박증도 이미 끊어서 나왔으니.

 하지만 이 상태로 집으로 간다면 아마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서 내일까지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겠지. 내일 안에 병원을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렇다고 다시 요양병원으로 가려면 그 힘든 버스를 두 시간을 타고 다시 택시로 25분을 더 가야하는데 생각만 해도 진이 빠진다. 가까운 집을 두고 더 멀리 가려니 괜히 마음이 심란해온다. 집이 이토록 그리운 적은 참 오랜만이다.

 몇번을 다시 계산해보지만 병원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앓더라도 병원에서 앓는 게 아무래도 나으니. 다시 병원에 연락을 해서 취소했던 식사를 다시 신청했다.


 그렇게 병원일정만 간단히 끝내고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바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는 일정이 고단했던지(뭘 했다고?) 깊이 잠들어버렸다. 다행이다. 울렁거림을 못 느꼈으니.

 늦은 오후,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선 작은 터미널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터미널 앞에 택시들이 대기 중이었다.

 택시를 타고 "OO요양병원이요" 하고는 뒷자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25분 더 가야하니 다시 길을 떠나보자.

 눈을 떠보니 어느덧 택시는 한참을 달려 시내를 빠져나와 외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여전히 몸을 기댄 채 고개만 돌려 차창 밖을 바라봤다. 고요한 강줄기 위로 먼 하늘은 차분한 주홍빛으로 물들었고 푸른 어둠이 가만히 내리고 있었다. 이 시간 하루 일과를 끝낸 사람들은 어서 가서 쉴려고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들 가고 있겠지?

나도 어서 집으로 가야겠다. 어서 가서 편히 쉬어야지.

가자, OO요양병원 207호로.

가서 푹 쉴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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