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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Apr 26. 2019

 보호자는 첫째, 건강할 것.

건강이 절대 의무가 되는 사람

 하루 종일 병실에만 콕 박혀있다가 운동시간이 되어서야 얼굴을 빼꼼히 내미는 나는 내 옆 병실에 누가 있는지 모른다. 방에서 주로 만나는 사람이라면 의료진, 청소하시는 분과 배식하시는 분 정도. 사실 나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다들 그런 듯했다. 암환자들의 체력이야 뻔해서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때론 벅차 다들 각자 방에서 혼자 요양, 또 요양 중이리라.

 그렇게 다른 환자들에게 관심 없이 지내지만 운동 시간만큼은 싫든 좋든 몇몇 사람과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그래 봐야 기껏 세네 명이지만. 다들 야외운동을 안 좋아하는지, 기공체조를 안 좋아하는지 참여율이 저조하다. 늘 참여하는 사람은 나와 입원 시기가 거의 같은 새내기들 뿐이다.  

 처음 운동할 때는 몇 안 되는 그들과도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를 나누기가 힘들 만큼 기력이 없었는데(그들도 그래 보였다) 날씨가 따뜻하게 풀리면서 기분 탓인지 어느 날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재밌는 것은 병원에서 만나는 암환자들은 서로 말을 틀 때 규칙처럼 하는 행동이 있다. 통성명을 하기 전 먼저 무슨 암인지, 몇 기인지를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그랬다.

 그렇게 처음으로 환자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 한 명은 암병동에서 유일하게 나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친구다. 그녀는 2년 전 뇌종양 수술을 하고 잘 지내던 중 다시 재발해서 엄마와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침샘암 치료 중이라고 하시는, 어머니뻘 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신데 이 분은 마치 전원일기에 나오는 일용엄니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좋게 표현한다면 정겹다고 해야겠지만 한 마디로 아주 그냥, 구수~하시다. 성격이 적극적이시고 자존감도 강하시고 궁금한 건 못 참으신다. 요즘에도 나에게 "나도 그런 거 원래 안 물어보는데 어떻게 하다 알게 된겨" 하시면서 내가 궁금해하지도 않은 다른 환자들 이야기를 자꾸 해주신다.

  그리고 한 명 더. 함께 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늘 이 시간이면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혼자 나와계신 할아버지다. 아직은 바람이 차가운데도 할아버지는 늘 반팔 차림으로 나오셔서 달팽이 걸음으로 느릿느릿 걷는 우리와는 달리 아주 빠른 걸음으로 산책로뿐 아니라 온 병원 곳곳을 돌고 또 돌면서 드문 드문 마주치고 있었다. 그럴 때면 굳게 다문 입술과 뭔가 무거운 눈빛이 느껴지곤 했는데 운동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단련을 한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매일매일 혼자서 장시간 파워워킹을 하시는 분이셨다.    

 산책로에 운동을 나오는 사람은 재활병동 환자들과 병원 직원들도 있었기에 처음에는 그분이 단지 병원 관계자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늦은 밤, 병실 문 앞에 놓인 연두색 소파에 앉아 혼자 책장을 넘기며 글을 읽고 계신 것을 보고 나와 같은 환자 시겠거니 짐작해보았다. 알고 보니 내 바로 옆 병실에 계셨다. 저분은 어떤 암일까 궁금했던 것도 잠시.

 다음 날, 구수한 일용엄니 삘의 환자분으로부터 내 옆방에는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분이 계시고 할아버지는 그분의 남편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하루 종일 아내분의 대소변을 비롯한 모든 수발을 다 들고 계신 상황이었다. 그제야 산책로에서 마주친 할아버지의 비장한 눈빛이 이해가 갔다.

 칠순이 넘으신 듯한 할아버지는 아마도 아내의 수발을 드는 일이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그러나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으셨을 것이고 힘든 병수발을 하다 정작 본인의 건강이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암담해질 상황. 그에게 운동이란, 선택의 여지 따위란 것 없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이 건강해야만 하는 상황을 견뎌내기 위한 몸부림이셨으리라.

 밤에 잠들기 전에는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잠깐 기도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 밤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 순간 할아버지가 밤에 혼자 앉아 읽던 책이 성경이었던 것이 생각났다. 마음이 감동되어 옆방 할아버지와 그 아내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이들의 영혼을 기억해달라고.

 그러던 어느 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곧장 잠들어버린 나는 두 시간이나 흘러 겨우 잠에서 깨서 식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병실 문을 여는 순간 눈 앞에는 소독된 이동형 병상이 보였고 내가 잠이 깨기 전부터 큰 소리로 내 귓가를 울리도록 누군가와 통화를 하시던 옆방 할아버지가 배식함 뒤편에 보였다. 통화가 끝나 나와 눈이 마주친 할아버지는 꿈뻑 아는 체를 해주셨고 잠이 덜 깨 멍한 눈으로 마주친 나도 꿈뻑 인사를 하고 다시 자리로 들어오며 할머니가 다른 병원으로 가시나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뒤. 소식통인 일용엄니 환자분을 통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내가 잠든 사이 옆 병실에서는 할머니의 영혼이 소천하신 것이었다. 그 날 하루 종일 들락거리던 아들분들의 모습도 할아버지의 모습도 무척이나 덤덤했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는 속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늘 산책로에서 마주치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동안 하셨던 것처럼 어딘가에서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시지 않으실까 생각한다. 아픈 것도 간병할 사람이 있든 돈이 있든 뭔가 기반이 있어야 마음껏 아플 수 있지(난 보험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실 테니 말이다. 할아버지 옆에는 본인 외에는 간병해줄 사람이 없다. 할아버지가 부디 남은 여생 동안 건강하시길 빌어본다. 나도 그런 의미에서 운동 땡땡이를 더더욱 금해야겠다. 오늘도 쥐약 먹은 것처럼 너무 피곤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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