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가서 "저기... 죄송하지만 통화 좀 작게 해 주시면 어떨까요?"라고 웃는 얼굴로 용감하게 한 마디 하고 싶지만 소심한 성격이라, 나 말고는 딱히 거슬려하지도 않는 분위기라 꾸욱 참으며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운동 프로그램 시간만 되면 늘 혼자 나와 큰 소리로 통화를 하는 그는 이 병동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는 남자 환자 중 한 명 되신다. 게다가 흥부자라 우리 병동에서 '혼자 노래하고 다니는 남자'내지는 '노래 못 하면서 계속 노래 부르고 다니는 남자'로 누군가에게 인식되어 있는,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한 분이다.
그런 그는 매일 아침이면 그렇게 누군가와 늘 큰 소리로 통화를 하며 운동인지 업무인지 모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조용한 산책로에서 마주칠 때마다 뜻하지 않게 남의 전화통화 소리를 다 엿듣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면 비즈니스가 바쁜 듯했다. 그도 병원에서나 환자지 밖에서는 분명 자기 위치가 있었을 테니 여전히 이곳에서도 업무를 연장하고 있을 수도.
그날도 다 함께 준비체조를 마친 후 명상 시간에 돌입하고 있었는데 그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렸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조금 다른 듯하다. 비즈니스라기보다는 개인 사담 같은 분위기.
오늘은 병원 생활의 불만에 대해 토로하고 있는 듯했다. 병원 시설이 어떻네, 식단이 어떻네 등등의 말에 그렇구나, 그게 불만이구나 하며 그의 이야기를 강제 입력당하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나도 내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라. 그러고 보니 통화 내내 '대화'를 했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발산'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엄마에게 쫑알쫑알 고자질을 하며 응석을 부리는 남자아이 같은 느낌이랄까. 내 병실은 간호 데스크 바로 앞인 데다 병실 문 바로 옆엔 공용 벤치가 있는 '만남의 광장'터라 병실 안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웬만한 병원 돌아가는 이야기는 다 알 수 있을 정도인데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은 일이 거의 없어서 그가 같은 층에 있는 환자인지도 한참 후에나 알았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루 종일 꾹 참고 있다가 이 시간만 되면 방언처럼 터지셨던 것이다.
그래, 학교를 마치고 오면 서로 자기가 먼저 말하려고 손을 들어대며 엄마에게 달려드는 초등학생 조카들만 봐도 할 말이 그리 많은데 하물며 인생 좀 살아온 사람들이 오죽하랴.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암병동에 입원한 남자는 더 할 말이 많다.
몸이 꽤나 많이 아파진다는 건, 그리고 병원에 장기간 입원을 하게 된다는 건 그렇지 않아도 할 말 많은 인생에 그동안 하지 않던 종류의 이야기가 하나 더 축적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 온 모두는 겉으로 표를 내지 않아도 할 말이 많아질 수밖에. 다들 그 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 걸까.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기나긴 이야기가 다 끝나고 말은 내가 다 했는데 돈은 왜 내가 내냐는 할아버지에게 상담사가
"할아버지. 살면서 누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할아버지 이야기 들어주신 분 계신가요?" 하자 할아버지가 그러고 보니 없었다며 수긍하셨다는 귀여운 이야기. 이야기를 들어줄, 그것도 별 중요하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무료로 잘'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사실, 참 고마워할 일이었다. 그 중요하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수긍해주고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 주며 자신의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 나를, 혹은 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힘든 일일테니 말이다.
예전에 나에게는 비공개 카페가 하나 있었다. 회원수는 나 한 명. 카테고리는 3개.
A 카테고리에는 직장에서 열불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분노의 타이핑으로 써내려간 얼굴 화끈한 속마음들이, B카테고리에는 왠지 마음이 쓸쓸해지면 써내려간 우울내 폴폴 나는 글들이, C 카테고리에는 그야말로 비밀글들이 모여 산다. 비밀글 소재는 비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 말하기는 미안하고(나는 반가운 사람 앉혀놓고 내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건 몰상식한 사람의 행동으로 생각하는 '교양 떠는 부류'임으로 솔직히 그 짓을 '못' 하는 것인지도) 넘쳐흐르는 억울함 내지 황당함과 깊어지는 상처들은 어딘가 쏟아내야겠고 그렇다고 어디 딱히 말할 곳은 없고, 딱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었고 결과는 분노 표출 및 수다 욕구 해소용 등으로 아주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덤으로 타이핑 실력까지 늘었더랬다. (사람은 분노할 때 평소 불가능한 스피드를 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암병동에 입원한 과묵한 아재도, 말단 초짜 어벙벙 신입도, 노는 게 제일 좋은 초딩도 모두 하나같이 할 말 많은 인생이다. 말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도. 그러니. 지금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해도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에 한 번쯤 마음 깊이 뜨겁게 행복해보길.
누군가 자꾸 나더러 말 좀 하고 살라고 성화인데 입으로는 안 해도 손으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사니 걱정 마시길. 봐라. 내 브런치 독자도 200명이나 된다.(세상에나. 200명이 어디니.) 이때까지 평생 내가 얼굴을 마주하며 사귄 사람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농담 아니다. 그들이, 그리고 또 새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다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으니 나도 꽤나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글을 읽는, 읽은, 그리고 읽을 독자, 비독자 여러분들께 참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