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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May 09. 2019

내 몸 하나 건사도 못 하는 주제로 고양이를 키웁니다만

 나는 고양이 바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녀석에게 자주, 푹  빠졌었다. 그러나 입원을 준비하면서 알았다. 그 좋은 반려동물을 혼자 키우면 때론 '성가신 문제'에 부딪힌다는 걸.

"이번 기회에 고양이를 다른 곳에 보내면 어때? 너를 위해서도 그렇고 초코( 반려묘 이름)를 위해서도 그게 더 낫지 않나?"

 언니가 말했다. 사실 주변 사람들이 다 말은 안 하지만 내심 내가 그래 주길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몸도 못 챙기면서 반려묘를 데리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고집스럽고 이기적으로 보였을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뭔가를 중간에 중단하고 그만 두는 느낌이 싫다. 어떻게되든 내 반려동물의 한 생애를  같이 걸어가주겠노라고 늘 생각했었다. 또 두 살이 넘은 흔한 고등어 태비 코숏을 데려갈 사람도 없을 터. 어쨌든 긴 시간동안 안심하고 맡길, 그러면서도 '저렴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출장이 끝나는 4월부터는 임보 해주겠노라는, 나보다 더한 고양이 바보 동생이 있어 맡기기로 하고 그전에 2주 정도만 근처에 사는 언니가 낮에 와서 잠깐잠깐 케어해주는 걸로 최종 합의를 거쳤다. 하우스 메이트 E양에게도 상황을 설명한 후,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입원한 지 1주째 되는 날 카톡이 하나 온다.  

 "언니. 초코가 토를 자주 하는데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걱정이에요!ㅜㅜ"

 올 것이 왔다. 초코가 토를 한다는 건 캣글라스를 많이 먹었거나 사람에게 관심받고 싶다는 것. 이 경우는 후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녀석이 밤마다 E양이 혼자 자러 들어가면 문 앞에서 옹골지게 울어대고, 그러다가 E양이 다시 나타나면 보는 앞에서 여러 차례 토를 길어 올리며 반려묘 진상 스테이지를 펼쳤는데 착한 E양이 병원에 가있는 나에게 미안해서 말을 빨리 못 한 상황이었다. 내가 잘 못 했다. 내가 나쁜 놈이다. 다 내 탓이오.

 

 4월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하루가 급한 상황이라 병원에서 안절부절하며 급히 탁묘처를 찾았다. 내 몸도 힘든데  '그렇게까지 해야하니?'하는 주변사람들의 눈치까지 보며 녀석을 신경쓴다는 게  심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하는데까지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운 좋게도 병원이 있는 지역에서  지원자가 나타났다. 살았다.


 그날, 언니의 차에 실려온 반려묘를 병원 주차장에서 열흘만에 만났다.

 "아고~ 우리 강아지(고양이지만 내 입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잘 있었어? 언니 안 보고 시뽀쬬?"

 역시 녀석은 새침스런 표정을 뿜어대며 귀찮게 왜 또 그러시냐는 눈빛으로 쌀쌀맞게 나를 대한다. 토할 정도로 보고 싶었으면서. 그게 고양이의 매력인가 보다.

 

 탁묘처로 이동하기 전, 그렇게 반려묘와의 면회 시간을 가지며 잠시 혼자 은밀한 생각을 해봤다.


'잘 봐. 내 병실 뒤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뜰이 있어. 이제 봄이라 날씨도 따뜻해지잖아?

우리 고양이를 저기에다 데려다 놓고 같이 있는 거야. 강아지집을 사서 따뜻하게 해주고 밥이랑 물도 챙겨주고 똥도 치워주고하면 나도 안 심심하고. 근처 농가에서 키우는 고양이도 산책로에 자주 출몰해서 환자들이랑도 어울려 놀고 하잖아. 괜찮을 거야.'


 '야...진짜... 여긴 병원이야. 아무리 사람들 발길이 뜸하다고 해도 다 알게 될텐데. 병원에서 허락할 리 없잖아. 괜히 병원에다 헛소리 하지 말자. 요양병원이 정신병원 되기 전에.'


 '그래도... 방법이 없을까. 같이 있고 싶은데.'

 

 혼자 철없이 또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차 안도 신기하고 바깥 풍경도 신기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나도 신기한 듯한 호기심 어린 눈빛. 갑자기 또 미안해졌다. 지금 나 좋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어서 안전한 탁묘처로 신속한 배송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하고 약속 장소로 갔고 어여쁜 탁묘 집사에게 안심하며 녀석을 맡기고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벌써 한 달 하고 열흘이 지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탁묘 집사에게 오랜만에 반려묘의 소식을 가득 담은 카톡이 왔다. 사진과 영상 속  '우리 강아지'는 지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냥이 친구들과 날마다 같이 식사하고 일광욕하다 낮잠도 자고 서로 우다다고 잘 논다. 게다가 예쁜 탁묘 집사가 마음에 들었는지(애나 고양이나 다 젊고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허벅지에 앉아 뱃살에 꾹꾹이를 해주는 신박한 기술을 펼치기도 한단다. 어째 우리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여서, 늙고 병든 나는 이제 잊은 듯해서 마음이 괜히 쓸쓸해지다가도 어쨌든 지금 잘 지내면 좋은 거라며 다시 감사해하는 중이다.

 혹시 이 놈. 내가 아픈 걸 알고 저도 안심이 안 돼서 우야든둥 험한 세상 미리 대비하며 살려고 더 그러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영악한 짐승이니 진짜 그럴지도.


  그나저나. 가끔 운동시간에, 혹은 저녁 산책 중에 근처 농가에 사는 냥이 가족들이 출몰하기도 하는데 자기들끼리 장난치고 노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혼자 운동이고 뭐고 넋을 잃고 녀석들을 조용히 주시하면서 그 귀여움에 몸서리를 치곤 한다. 이보다 더 큰 힐링이 있을까.

 장기간 삭막한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을 위한 '동물힐링 프로그램'이 도입되는 상상을 몰래 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병원에는 사랑스런 동물들의 공생을 위한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 

아! 아니다. 녀석들은 너무 귀여워 심장에 해로우므로 위할지도.

집사가 저 모양이니 내 치아 관리는 내가 해야한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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