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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May 18. 2019

봄에는 병원에서 읽는 시가 제철

 창밖에는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 아니랄까봐 어찌나 사뿐사뿐 촉촉이 내리는지 마음까지 촉촉해져오고 있었다. 비가 오니 바깥 운동에도 영향이 있어 방에서만 지내게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다들 건물 안에서만 며칠 째 있어 갑갑했는지 지난번 야외 활동을 하며 안면이 익은 환자분이 같이 점심시간에 외식을 나가자고 제안해주셨다. 살짝 망설였지만 식사 후에 예쁜 카페도 가자고 하는 말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콜'을 외쳤다. 그렇게 뜻밖에 시간을 가졌지만, 예쁜 카페는 진정 예뻐서 좋았지만 다시는 이렇게 어색한 외식은 가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돌아왔다. 동행한 사람 중 나만 빼고 다들 결혼한 이모님들이라 여정 내내 서로 남편 자랑에 부부 생활 이야기만 어찌나 하시는지. 카메라라도 들고 가서 진정으로 다행이었다. 혼자 멋쩍어서 카페 정원으로 나가 봄비를 맞는 꽃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병원으로 돌아오며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남은 시간, 아무리 심심해도 병원에서 정말 혼자 잘 지내기로 굳게 다짐했다. 


 며칠전, 내리는 비 때문인지, 날씨 따라 다운된 컨디션 때문인지 잔잔한 글이 몹시 읽고 싶어졌었다. 마침 유난히 생각나는 시집이 한 권 있었고 그 시집을 제대로 다시 한번 음미해보고 싶어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이틀 . 내 병실로 작은 택배박스 하나가 배달되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다 그렇겠지만 외딴 마을 구석에서 받아보는 택배란 그 반가움과 고마움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마치 내가 가질 수 없는 귀한 물건이 온 것마냥 그리도 온몸으로 반갑다. 택배 박스를 조심스레 뜯어 그 안에 고이 놓인 얇고 촌스러운 감성의 표지를 한 내 책을 보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왔구나, 이 녀석.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로 창밖 멀리까지 온통 시야가 흐렸고 방 안 공기까지 꽤 쌀쌀하게 변하고 있었다. 다시 옷장에 넣었던 톡톡한 카디건을 걸쳐 입었지만 뭔가 2%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보일러를 켜 방 온도를 최고로 올려버렸다.


 해가 어두워지고 나니 비가 더 거세졌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무섭기까지 했다. 무서움도 달래고 며칠 전 상해서 돌아온 마음도 달랠 겸 낮에 받은 시집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침대가 아닌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평소에는 책상이나 침대에 앉아서 책을 읽지만 왠지 이 시집은, 그리고 지금 같은 이런 날은 왠지 구수하고 포근한 레트로 감성을 살려 따끈따끈하게 잘 달궈진 바닥에 '배를 지지며' 책장을 넘겨줘야 할 것만 같아서다.

 잠시 후, 거센 바람과 함께 내리는 봄비 소리를 들으며 슬렁슬렁 책장을 넘기던 중 생각하지도 못한 타이밍에 그만, 심장을 치이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혼자 시집을 꽈악 끌어안고는 좌로 우로 뒹굴거리기 시작했다. "으아... 표현 미쳤다... 대박... 어떡해~~~"라는 오두방정과 함께. 아, 진짜. 어릴 때는 유머러스한 남자가 좋았고 좀 커서는 운동 잘하는 남자가 멋있어보였는데 나이가 들었나 (들긴 들었지), 이제는 글 잘 쓰는 남자가 좋아지겠구나 직감한 순간이었다.

 내 심장을 치고 도망간 문장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젊은 시인, 박준 의 '낙서'라는 시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봄이 온 남해의 작은 분식가게에서 주인 부부의 눈빛을 살피며 식사를 마치고는 벽면 한 구석에 썼다는 낙서라니. 무슨 낙서를 이렇게 멋지게 한단 말인가. 역시 박준 님이다.   


 원래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병원에 입원했다가 우연히 '동주'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윤동주의 시들을 다시 읽어볼 기회가 생겼는데 그러면서 그의 아름다운 단어들에 빠졌었다. 시의 깊은 의미를 이해했다기보다는 뭔가 쓸쓸하면서도 맑고 아름다운 그의 문장들이 좋아 읽고 또 읽었고, 그렇게 그의 시가 홀로 있는 병실에서의 시간들을 채워주었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이상하게 병원에 입원만 하면 유독 시집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이곳에 입원할 때 집에서 가져온 시집도 3권이나 다. 집에서는 한 번을 못 열었던 책들이었다.


 왜 병원에만 오면 시가 그렇게 당길까 생각해봤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랬다. 시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강요가 없, 무슨 말인지 일일이 '이해'하지 않아도 되고(감정이란 건 시간의 숙성을 겪어야만 이해되는 것이므로),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건 건너뛰면서 그냥 쭉 읽다가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만나면 잠깐 멈추고 그 온기가 가슴 속 깊이 스며들때까지 기다리면서 오래도록  느끼면 그만인, 뭔가 따뜻한 것이 있는 친구였. 그 온기를 느끼려 시를 읽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순간엔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같이 허해져 있나 보다. 자꾸 따뜻한 단어들을 가슴속에 채워 넣으려고 하는 걸 보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곳에 있는 동안  감성이나 촉촉하게 채워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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