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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Jun 16. 2019

병원에서나 환자지 밖에서는 아니거든요?

 얼굴에 커다란 뾰루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많이, 심하게.

그리고 놈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여지없이 붉은 흉터들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그렇게 볼과 이마, 턱, 심지어 목까지 점령당하고 있었다. 비상사태다. 게다가 매일 바르는 화장품인데 갑자기 독을 바른 듯 얼굴이 너무 따가웠다. 병원에 이야기를 했더니 피부과를 방문해보라고 한다. 그럴 줄 알았다.

 피부 보호 차원으로 창가 블라인드를 모조리 내렸고 메인 전등도 잘 켜지 않았으며 1주일 내내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당연히 운동도 못 나갔다. 지금 운동이 문제가 아니다. 피부가, 안 그래도 작년부터 갑자기 급속도로 오늘내일 오늘내일하는 내 피부가 지금 이 지경이 되어가는 마당에 운동하겠다고 자외선 지옥으로 뛰어들 수는 없었다.

 화장품 금식 3일째. 피지라는 화산이 폭발했으나 건조함은 극에 달했다. 지금 쓰고 있는 제품도 유아 사용이 가능한 순하디 순한 제품인데. 다시 새로운 화장품을 찾아볼 것인가 금식을 이어갈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 천연 화장품을 만들기로 했다. 바로 이곳, 병원 병실, 코딱지만 한 싱크대 위에서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싱크대에 서서 유리 비커에 든 혼합물을 달그닥달그닥 저어가며 화학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천연화장품을 만들고 있었더랬다. 아, 내가 화장품을 제조하고 있다니. 스스로 대견했다. 내가 이렇게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래도.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나는 믿고 싶었다. 그것이 마법을 부려 따가움을 남기지 않을 것임은 물론, 얼굴의 모든 뾰루지들이 개선되고 흉터로 뒤덮여 부쩍 어두워진 피부톤을 밝게 개선해줄 것이며, 투병 때문인지 세월 때문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그러나 이건 투병 때문일 거라며 애써 흐르는 세월을 부인하고 있는 주름을 ‘어느 정도’는 회복시켜줄 것이라는 무한한 믿음에 기대었다.


 투병 전에는 주변에서 대여섯 살은 어려 보인다고,

다들, 내가 피부 하나는 타고났다며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나면 듣는 말이 "너 피부가 왜 그래?"다. 그 말에 또 무너지면서 주름 하나 추가되는 기분이다. 투병 이후로 한 해에 2년씩 늙더니 5년 지나니 이젠 옛날 사진 보면 10년은 늙어 보이고 온 얼굴은 여드름 투성이다. 하 - .

 

 암으로 투병 중인데 그깟 피부가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진료 들어가서 주치의에게 피부에 뾰루지가 심하게 난다고 칭얼대면  사실 주치의에게 혼난다. 열이 39도씩 오르락내리락 할 정도가 되면 모를까, 그 정도로는 명함도 내밀지 말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내가 가진 중병의 무게만큼 중요한 문제다. 나의 자존감 내지는 희로애락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니까.

 늘 고백하지만 나도 흔해 터진 여느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디 가서 피부 좋다,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 하는 달콤한 말에 영혼이 탈탈 털리며 어깨에 뽕이 꽉 찬단 말이다. 환자이기 이전에 나는 여자다. 어디 가서 다시 예쁘다, 곱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거금을 들여 한 방울 한 방울 직접 짜낸, 내 마법 화장품은 나를 그런 세계로 다시 데려가 주리라. 무모한 믿음이라도 가져야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피부를, 아직은, 포기할 수가 없다. 아니,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아유, 000님. 오늘 왜 이렇게 이쁘게 입으셨어요?”

병원에서 단체로 나들이 가는 날, 집합장소에 나타난 나를 보고 병원 직원이 말했다.

“제가 여기서나 환자지 밖에서는 아니에요.

웃으며 받아쳤다.

멀리서 걸어오시며 이모뻘 되시는 환자분도 한 마디 말했다.

“결혼 안 했지? 그랴~ 옷 입는 거 보니 아가씨야.”

요즘 결혼한 또래들은 더 잘 입는다마는 내가 미니스커트나 핫팬츠를 입은 것도, 촥 달라붙은 레깅스 패션을 선보인 것도 아닌데 늘 펑퍼짐한 환자복이나 입고 있다가 외출복을 입어서인지 관심들이 많았다.


 내가 기분 전환하는 방법 중 하나가 ‘옷’이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가진 아이템들은 내 나이보다 사뭇 젊은 분위기였으리라.  주로 화사한 패턴의 롱스커트, 밝은 톤의 원피스를 좋아했고 짧아진 까닭에 예쁘고 여성스럽게 헤어를 묶어보지 못하는 깊은 아쉬움을 다양한 디자인의 반다나 헤어밴드로 달랬다. 이날은 날씨가 살짝 흐려서 청바지 차림에 내가 좋아하는 긴팔 루즈핏 스트라이프 화이트 셔츠와 와인색 줄무늬가 들어간 반다나 헤어밴드를 코디했다. 외출을 하는 날엔 이렇게 컨셉을 정하고 코디하는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그렇게 꾸미고 외출하는 날이면 기분이 좋았다.


 병원에서 긴 시간 생활하다 보면 인간의 본능에 의해 편한 것에 익숙해져서 점점 자기 관리에 느슨해지게 된다. 물론 그럴 체력도 없어 자연스레 내려놓고 살게 되지만. 이곳에 있으면서 화장을 하고 있는 환자는 없다. 맨 얼굴인 무방비 상태로 온 병원을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도 만나고 우리와는 상대적으로 멀끔하게 차려입고 있는 의료진들과도 대면한다. 그것이 이곳에서 ‘우리끼리’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게다가 애물단지였던 머리카락이 남자보다도 짧아 헤어 손질도 안 해도 되고.(사실 수년 전, 처음 수술했을 땐 아침마다 병원에서 정성스럽게 앞머리 고대기만큼은 했었다.)화장도, 머리 손질도, 옷차림도 늘 과하게 네츄럴한 상태로 있다보니 꾸미는 것보단 안 꾸미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생활로 인해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이게 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렇게 물이 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컨디션이 어느 정도 복되어서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리고 1주일에 한번, 단체 나들이 갈 때 만이라도 신나게 꾸며보자고 다짐했다.


 외출을 나가면 우리는 서로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익어 모르겠지만 과연 외부의 일반인들이 보는 눈에도 우리의 모습이 자연스러울까? 사실 나는 그런 시선이 걱정되었다. ‘우리끼리’ 우르르 몰려다닐 때, 일반인들의 눈에 우리는 모르는 '우리의 초췌한 몰골' 내지 '암환자 내 풍기는 그 무언가'를 그들에게 캐치당할까 봐. 사실 머리 길이 짧은 분도 꽤 계시고 면 비니 쓰신 분도 계셔서 한눈에 파악되겠지만. 하지만 어쨌든 우울한 모습으로 비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들이 일정은 때론 컨디션 문제로 매주 참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막상 나가서도 다들 돌아다니는데 혼자 셀프 낙오되어 카페에 앉아있기만 하다 온 날도 꽤 됐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참여했다. 그것엔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적응하고 적응한 대로 변하기 마련이다. 화장을 하고, 꾸미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광지에 가서 함께 섞이고. 이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어색한 일이 될까 봐서다. 화장을 했는데 뭔가 어색함이 묻어날까 봐, 기분 전환하려고 꾸몄는데 꾸민 내 모습이 스스로 어색해질까 봐, 일반인들과 섞여있는 것에 괜히 혼자 위축감을 느낄까 봐, 이런 갖가지 걱정으로 스스로 그것들을 경계하고자 했던 나의 노력이었다. 언젠가는 다시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가서 자연스럽게 잘 지내고 싶으니까. 늘 환자들 속에서만 살지는 않을 테니까.

어찌 보면 내 유일한 특기인 "쓸데없는 걱정 미리 끌어당겨서 하기"가 또 발동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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