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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Jun 28. 2019

이럴 때일수록 '오늘'을 살겠습니다.

 “죄송한데 제 식판 좀 탁자에 옮겨주세요.”

 아침부터 컨디션이 심상치 않았다. 새벽 6시부터 배가 고파 눈을 떴으나 배식 시간이 8시라 두 시간을 기다렸기에 너무너무 배가 고팠다. 그런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걸음 앞 싱크대 위의 식판을 가지러 갈 힘이 없어(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힘이 없다) 자리에 다시 누워 잠들었다가 눈 뜨면 다시 식판을 가지러 가려고 일어났다가 또 어지러워 누웠다를 반복하다 10시가 넘어서야 간호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내 소중한 식사를 옮겨놓을 수 있었다. 세상에. 그깟 식판 하나를 못 들어서 이런다니. 내 눈으로 보면서도 이게 기분 탓인가 컨디션 탓인가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제야 밥을 좀 먹나 하며 자리를 옮겨 식탁 앞에 앉았는데 몸에 반응이 이상하다. 여기까지 몇 걸음이나 된다고 갑자기 숨이 차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점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고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는 한참을 그렇게 숨을 고르느라 숟가락을 집어 들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간호사가 급히 잰 혈압과 산소 포화도는 정상. 맥박만 106이란다. 심장아. 제발 밥 좀 먹게 나대지 말아 다오. 배고파 미치겠다고.

 컨디션 떨어지는 증상이야 원래 자주 다녀가던 녀석이라 그렇다 쳐도 맥박이 이렇게 빨리 뛰는 증상은 확실히 이상하다. 그런데 낯설지는 않다. 3개월 전, 결국 중단 결정이 내려졌던 항암 일정을  날도 정말 딱 이런 증상이었으니.

 그날의 기억들이 다시 하나하나 떠올랐다.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간신히 몸을 가누고 앉아있었고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며 “젊은 사람이 얼마나 힘이 들면...”하고 걱정해주던 진료 대기실, “언제부터 이랬어”하며 놀라 하던 주치의의 첫마디,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던 응급실로 이어진 병원 복도, 혼자 이동하다 응급실 문 앞에서 다시 주저앉아 급격히 뛰기 시작한 심장 박동을 감지하며 처음으로 느껴 본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공포감, 나를 발견하고 급히 휠체어에 태워 응급병동까지 달려주었던 어느 수송 대원의 고마운 도움, 간호사로부터 “산소포화도는 100이니까 천천히 호흡하세요.”라는 무미건조한 말을 듣고는 커튼 안 침대에서 한참을 혼자 헉헉 거리며 호흡이 안정되기를 기다리던 기억까지... 그날과 몸의 상태가 거의 같았다. 다만 지금은 입원 중이라 복도에서 혼자 쓰러져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다행스러웠다.


 식사는 힘들다고 판단을 한 간호사가 다시 내 식판을 들고 가버렸다. 대신 수액공급을 하겠단다. 수액 맞으면 배고픔이 좀 가라앉으려나?


수액을 꽂고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다시 1박 2일을 검색했다. 이제 170번째 영상을 볼 차례였다. 늘 이렇게 힘든 날이면 웃음치료한답시고 누워서 정주행으로 보던 유일한 프로그램이라 170시간 정도 이런 시간을 겪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간중간 다른 채널로 이탈을 하기도 했으니까 실제로는 더 길었겠지만.

 일주일간 서서히 컨디션은 회복되어가서 배고픔을 전혀 달래주지 않았던 매정한 수액은 다음날부터 죽으로 바뀌었고 며칠 후 드디어 정상적인 식사로 돌아왔으며 내 손으로 식판을 들고 복도로 나와 혼자 반납할 정도가 되었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때의 기분이란 마치 긴 겨울잠을 끝내고 동굴에서 나오는 곰 같았다고나 할까. 며칠 만에 나와 본 병실 앞 복도가 그렇게 눈부실 정도로 반가울 수가 없었다. 여전히 어질어질하고 온 몸에 힘이 없었지만 다시 내 발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만족해했다.


 이곳에 입원한 3개월간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컨디션이 갑자기 떨어지는 증상은 여전했고 이제는 이상 맥박까지 동반되고 있다. 그리고 원인은 여전히 ‘모른다’. 본 병원에서는 그때 당시 식중독이 유행이라고 하니 그래서일 수도 있다고 어린아이 타이르듯 설명해주었고 지금 있는 요양병원에서는 일단 잘 먹고 좀 더 휴식을 취하라며,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힐 것 같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만 앵무새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증상에 대한 병명이 없으니 스스로도 상태가 나쁜 환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마냥 명랑해지지가 않는다. 곧 괜찮아질 것을 알지만 왠지 다시 모든 자신감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딱 3개월 전처럼. 이제는 컨디션 저하랑 세트로 따라다니는 녀석이다.


 다시 시작된 조바심과 불안감들은 슬며시 우울감을 몰아오고 있었고 다시 드문드문 눈물도 삐져나오려고 했기에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어야만 했다. 늘 말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약해지는 게 정말이지 싫다.

 몸이 100%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병원 환우 한 분을 따라 테니스 코트장에 갔다. 원래 운동을 하셨던 분이라 이곳에서도 컨디션이 너무 나쁘지 않으면 근처로 자주 운동을 나가고 계셨다. 어차피 나가는 길에 나를 태우고 나가시는 것이니 그리 민폐가 되지는 않겠다는 판단이 들어 용기를 내어 먼저 부탁을 드렸는데 그렇게 따라간 첫날, 역시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켓을 들고 휘두르니(겨우 기본자세를 따라한 것이었지만) 기분이 한결 상쾌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 이거다. 바로 그 자리에서 덜컥 레슨을 등록하겠다며 강습 시간을 받아왔다.


 병원에서는 건강이 회복되면 하라며 다들 걱정했지만 그 말은 너무나 무책임해 보였다. 건강이 회복될지 더 나빠질지 알 수 없을뿐더러 자꾸 쌓이는 불안감과 조바심 같은 스트레스를 혼자 어떻게 해소하란 말인가. 병원에 오래 있으면서 갇혀있느라 이래저래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이곳은 정녕 깡촌 시골이며 무엇보다 1시간 이내 거리에 대형서점이 없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최대한 시도해보고 내일의 컨디션을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순간만 생각하며 하루의 만족감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재를 감사하며 살기 위해서 말이다.


요즘 자꾸 이 말이 좋아진다.

‘그냥 오늘을 살자’

언제 또다시 끙끙거리며 쓰러져있을지, 나는 내일을 알 수 없다. 컨디션이 좋은 날, 그날의 에너지를 아껴두지 말고 기꺼이, 마음껏 쓰며 그 하루 동안만이라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행복하고 자유롭기로 했다. 그러면 내일 또다시 쓰러져 헉헉 거리더라도 오늘 하루의 만족감을 기억하면서 다시 힘을 내보자고 스스로를 부축할 수 있는 힘이 생기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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