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co house

사랑한다는 건 그에게만은 약해지는 것이다

by 미스킴라일락

그녀는 힘들어보였다.

박사연구원이라는 타이틀도 안정된 직장도 쉴만한 곳이 되지 못 한 듯했다. 오히려 내 딸만은 이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다며 좋아하는 것을 하게 살도록 해주겠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5학년이 되는 해 아이에겐 틱장애가 발견되었고 그때부터 아이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되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소설가 한강의 부모님은 그녀가 어릴 때 피아노를 사주지 못 한 한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는 커서 더이상 피아노를 원하지도 않았고 입시준비로 그럴 수도 없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말했다고 한다.

네가 배우기 싫어도 엄마아빠를 위해 1년만 다녀달라고. 안 그러면 한이 된다고.

피아노를 배울 수 없어 종이로 만든 건반을 두드리는 그녀를 보던 마음은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며 부모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희생하며 일한 댓가로 원하는 직위를 가졌지만 그녀는 생각한다. 매일같이 새벽 2시에 퇴근해 들어가던 충성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주말이면 밀린 잠을 보충해야하는 엄마라서 충분히 어리광부리지 못한 마음이 이렇게 쌓여 드러나는 것일까.


연휴의 어느 날, 우리집 고양이를 화상으로만 보던 아이는 엄마와 함께 드디어 화상 속 고양이를 직접 만나러 오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다운 어리광을 엄마에게 마음껏 부리기도 하고 고양이 뒤만 졸졸졸 따라다니며 좋아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하면서. 처음 만나는 주인이모에게 곧잘 다가와 말도 잘 걸고 웃기도 잘 웃는다. 여느 아이들처럼 순진하고 어리광부리고 가끔 엄마랑 말다툼도 하고 투정도 부릴 줄 아는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로 잘 자라고 있었다.

황금같은 연휴인데 이곳은 좀 심심하지 않냐는 말에 이렇게 아이랑 어디를 다녀보는 것도 사실 최근에 들어서 시작한 거란다. 언니는 퇴근을 해서 화장을 지우면서도, 출근준비를 하면서도 핸드폰 영상을 틀어놓고 부모교육강의를 듣고 또 듣는다. 그녀로서는 직장일을 하느라 좀 더 신경쓰지 못한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이렇게라도 만회해나가야 마음이 편할게다. 아이는 엄마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지 알지 못하겠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가지기 위해 그녀는 벌써 8개월째 이직준비 중이다. 그것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분야에 도전하면서. 일주일에 기껏해야 하루, 많으면 이틀은 이곳에서 자고 나머지 시간들은 사실 퇴근 후 서울집으로 가서 다음날 다시 두시간 거리를 달려 이 도시로 출근하며 지낸지도 8개월째. 그나마 이 집으로 퇴근하는 시간이 유일하게 혼자서 쉬는 시간이라는 말이다. 미안하지 않아도 될 일이 미안한 일이 되는 건 사랑하는 일이 그녀의 일이기 때문인다 보다.


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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