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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딩크부부는 처음부터 딩크였을까?

합치로 가는 길

by Jessmin

남편과 연애 시절

20살 쟈스민은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좋은 사람임은 틀림없으나 이제 20살. 결혼에 큰 뜻이 없던 내게는 너무나 먼 미래 이야기였다.


그때도 우린 미래 자녀계획에 대한 대화를 하곤 했었다. 물론, 결혼도 자녀계획도 먼 미래였기에 그저 27살 남자친구의 패기 어린 계획을 들어줄 뿐이었다.




“난 아이를 셋은 낳을 거야. 자식 셋을 경쟁시켜서 나한테 가잘 잘하는 자식한테 내 유산을 물려줄 거야. “


이 말에 그 어떤 것도 공감할 수 없었다. 아이 셋도, 자식끼리의 경쟁도, 또 그 대단한 유산도.


“그렇구나. 근데 난 자녀는 잘 모르겠어.”


이혼가정에서 자란 남편은 ‘새로운 가정‘에 큰 뜻이 있었다. 본인이 꾸린 가정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가꾸고 싶은 꿈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게 그는 미국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

4년이란 기간 동안 한국-미국-중국을 오가며 롱디 (장거리연애)를 지속했다.



그는 첫 직장을 해외에서 가졌고 약 8개월 만에 만났을 땐 얼굴이 많이 야위고 수척해진 상태였다.


그는 다시 한번 자녀계획을 언급했다.


“그래도 외동은 역시 외로울 것 같아. 난 크면서 형과 많이 의지하면서 자랐어. 그리고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 그 짐을 형과 나누니 좋더라고. 역시 둘은 있는 게 맞을 것 같아. “


이때까지만 해도 그와 결혼을 생각하기엔 어린 나이였다. 처음과 다르게 그의 패기는 다소 빠져있었고 전보단 현실적인 생각들이 앞서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에 그는 여러 번의 이직, 중간의 작은 사업 이것저것을 겪으며 남편의 결혼적령기가 성큼 다가왔다.

그는 결혼을 위해 요구되는 것들을 꽤 이뤄 놓았었다.


정말 결혼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본인의 성장과정, 부모님의 성격, 가족문화 등 많은 것들을 알려주며 나와의 결혼을 본격적으로 구체화하고 있었다.


나 또한 자녀계획에 대해선 너무나 확고한 신념을 가졌기에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 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아이를 가질 마음이 없어. 그게 돈 때문도 뭣도 아닌 난 그냥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이 한 몸 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는 게 내 꿈이야. “


남편은 지난 7-8년의 세월 동안 '자녀 셋'이라는 꿈에서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의 사고로 전환이 되며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역시 '무자녀'는 여전히 그에게 무척 낯선 개념이었다.




여기까지 보면 알 수 있듯,

번식 유전자를 부정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닌 ‘나‘하나였다. 즉, 그는 딩크를 동의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결혼얘기를 꺼낼 무렵 난 내 의지를 한번 더 확고히 했다.


“난 아이 생각이 없어. 뭐 아이가 싫어서도 아니고 그냥 아예 생각조차 들지 않아. 오빠가 아이생각이 있다면 우리는 결혼하지 않는 게 나아.”


T가 90%가 넘는 완전한 Thinking형(사고형) 인간으로서 내린 결론이었다. 나의 결정이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불행하게 만들 것 같다면 그 결혼은 성사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 뒤 그를 다시 만났을 땐 그는 공원을 뛰고 걸으며 사색의 시간을 보낸 뒤였다.




"결혼하자.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하는 건 아니니까. “


그는 평범한 사람이다.

남들처럼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리고 대부분의 부부처럼 아이 낳기를 꿈꾼 아주 평범한 사람.


일생일대의 결정을 나 하나 때문에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가 존중받았다는 느낌이나, 내가 이겼다는 승리감이 아닌 이게 옳은 선택인가에 대해 꾸준한 의심이 들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확언할 수 있는 미래 또한 없다.


지금의 확고한 마음이 미래에도 지속되리란 법은 없지만, 나의 마음은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결혼 후, 그는 날 설득하지도 구태여 내 의견을 다시 묻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가끔 이야기를 한다.

자녀가 없기에 누릴 수 있는 이 여유가 너무 좋다고.


바쁜 매일을 보내는 우리 부부는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없는 편이다. 그래도 그가 느끼는 경제적 여유는

본인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 보였다. 물론, 주로 노후를 걱정하는 주변인들과의 대화에서 비롯된 안심이다.


자녀를 갖는 것을 단 한 번도 선택의 영역이라 생각해 본 적 없던 그는 결혼하고 싶었던 여자로 인해 인생의 큰 결심을 하게 됐다.


주변의 임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난 그에게 묻는다.


"어때 오빠? 오빠는 괜찮아?"


"쟈스민, 난 괜찮아. 원래 인간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은 존재해.

생각해 봐, 남들이 다 가진 아이폰이 너만 없다면 너도 궁금하지 않겠어? 근데 그냥 딱 그 정도야.

그게 부럽다란 느낌으로 와닿진 않아. 그들 또한 우리의 삶과 여유가 궁금할 거야. 각자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는 것뿐이야."


그는 “난 전혀 생각 없어.”와 같이 대답하진 않는다.

그저 본인의 의견을 솔직 담백하게 전한다.




간혹 딩크라는 결정에 대해 남편의 의견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그냥 솔직히 얘기해 준다.

"그는 그저 내 의견을 존중하는 거지, 날 사랑하니까.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장점이 더 많아서 마음에 들어 하고 있어.”


누군가가 우리 부부가 처음부터 딩크였냐고 묻는다면 말한다.

"저는 확고히 평생 아이를 원한 적이 없어요. 그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


그러나 누군가가 현재 우리의 삶이 정말 괜찮냐고 물어본다면

"아직까진 아무 문제없어요. 우리 부부는 솔직하게 대화하고 있어요."

정도로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 셋'이라는 계획에서 '무자녀'로 넘어오기까지

그의 인생은 여러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그가 꿈꿔본 적 없던 딩크부부의 삶을 살아가며, 여러 가지 장점을 찾아 나름 마음에 드는 생활을 하고 있다.


혹시라도 딩크부부를 꿈꾸는 예비부부가 있다면 두 사람 모두 진솔하게 터놓고 대화해라.

두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성이 맞는지 확인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더욱 윤택한 결혼 생활을 만들어 줄 것이다.



딩크이신 여러분은 처음부터 딩크이길 원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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