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 부탁 드리겠습니다!
부모님은 결혼 전 소위 말하는 강남 패밀리였다. 서울출신(?) 답게 그들은 자녀를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양육했다.
이런 가정환경 덕에 전통의 가치보단 효율성과 논리에 초점을 둔 가정교육을 받았다. 거기다 오랜 미국 유학생활을 한 쟈스민. 결코 고분고분한 며느리는 아니다.
남편과의 나이차가 어느 정도 있는지라, 시아버지의 연세는 부모님보다 거의 10살 가까이 많으시다.
그는 아들 부부가 딩크이신 걸 모르신다.
부모가 자녀의 자녀계획을 모르는 것이 한국 사회에선 꽤나 희귀한 일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천일공노 할 일쯤으로 보기도 한다.
시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보수적인 그의
정신적 안위를 위한 것이지 딱히 우릴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다. 인간은 다면적이라 한 단어로만 정의할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아들의 자녀계획에 있어서는 남들과 다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처음부터 날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싫어하진 않았지만, 어른을 무서워하지 않고
당당한 혹은 당돌한 MZ 며느리가 탐탁지 않으셨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아들이 본인보다 ‘못난’ 여자를 만나길 바랐다.
학벌, 직업, 연봉, 집안 등 아주 못나진 않아도 아들보단 조금 더 덜한 여자를 만나는 것이 그의 결혼생활에 득이 될 것이라 믿었다.
객관적 지표상 아들보다 나아 보이는, 하물며 자기 할 말까지 다 하는 예비 며느리가 영 내키지 않았다.
(물론, 그런 겉치레적 면모를 제외하고 그는 나란 사람과는 비교불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다.)
이런 MZ며느리가 딩크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무척이나 그를 괴롭게 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나 또한 더 큰 미움털이 박히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그렇다 할 이유 없이 남편과 시댁을 찾았다.
안부차 방문 한 것이었다. 그는 아기소식을 전하러 온다 생각하시고 한 주 내 내 기대하셨나 보다.
실망감에 소리치셨다.
“아이를 가지면 너희에겐 큰 축복이고, 우리에겐 큰 기쁨인데 왜 아직도 가지지 않는 것이냐.”
“아직이요.”
남편은 이 네 글자로 사태를 진정시켰다.
몇 개월 뒤, 첫째 아들내외와 함께 식사 도중
두 부부에게 물으셨다.
“아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래서 너희들은 아기를 가질 거냐 말 거냐? 도통 소식이 없냐. “
“ 아버님 그 말씀이 누군가에겐 상처를 줄 수도 있어요. 누군가는 노력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
이 말은 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실이었다.
첫째 아들 내외는 계획 중에 있었다. 그에게 알리진 않았으나 그들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난임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터라 어른을 어려워하는 그녀 대신 당돌하게 얘기했다.
몇 개월 뒤, 그들 부부는 마침내 임신에 성공했다.
첫째 아들네의 임신과 출산으로 우리를 더 압박할 수도, 반대로 더 이상 언급을 안 하실 수도 있다.
후자이길 바라지만, 전자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다.
이쯤 되니 부부의 출산 계획에 대해 부모님께 허락 아닌 허락을 받는 이 상황에 대해 의문점이 생긴다.
‘부부의 출산 계획이 어째서 그들 부모의 호통까지 이어지는 문제가 될까?’
‘언제까지 그에게 딩크인 것을 숨겨야 할까?’
‘아이를 돌봐주실 수도 없는데 어쩌자고 자꾸 낳으라고 하실까?‘
반면, 쟈스민의 부모님은 아이계획은 온전히 부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갖고 싶으면 갖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육아를 대신할 생각이 없다. 그것 또한 온전히 부부의 몫이라고 강하게 생각한다.
누군가는 야박하다 할 수 있으나
난 이것이 아주 건강한 마인드라고 믿는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있다.
그들은 손주를 돌보지 않는 삶을 택하고 선언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헌신했으니 이제는 그들 스스로를 위해 살겠다는 그들을 누가 비난하리.
이렇듯, 부모는 자녀의 자녀계획에 적극적인 서포트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면 그저 자녀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자아가 형성되고 다년간의 사회생활로 고집이 생겼다. 부모의 호통이 일생일대의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 그저 낳을 부부는 낳고, 낳지 않을 부부는 낳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그가 더 이상 우리 부부에게 묻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그 또한 받아들일 준비가 됐으리라 믿는다.
그럼 그때는 말할 수 있겠지.
“아버님, 저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노키즈 부부입이다.대신 아이를 낳지 않아 가질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로 아버님을 더 자주 뵙고, 함께 시간을 보낼게요. 그러니 너무 노여워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