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옐로카드
3년 전 사진을 보았다.
고작 3년 남짓한 세월인데 그때의 모습이 벌써 앳된 느낌이다.
배우자의 늘어난 흰머리와 부쩍 거칠어진 피부가 지난 3년 또한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난 올해, 만 31세가 되었다. 꽤 젊은 나이라 생각하면서도 오랜만에 바뀐 앞자리로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배우자의 노화를 인식하는 것은 두려움이란 씨앗을 마음속 저 깊숙한 곳에 심어준다
무자녀부부에게 노화는 옐로카드다.
다소 황당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쟈스민의 꿈은 30살이었다.
밥만 잘 먹고 잠만 잘 자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30살이 왜 꿈이었을까?
30살이 되면 인생의 많은 고된 순간들이 정리된 후일 거라 생각했다.
20대 초반 무렵,
“자고 일어나면 30살이면 좋겠어.”란 말을 종종 했다.
당시 그리던 서른 살은 인생의 큰 숙제를 끝내고 이미 안정을 찾은 나이일 것만 같았다.
그땐 노화가 내게 무엇을 심어낼지 몰랐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대다수가 행하는 숙제 같은 게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부에 뜻이 있든 없든 간에 우선 대학을 간다.
대학 졸업 후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우선 취업하고 본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육아와 양육의 세계로 들어간다.
무자녀 부부로서 결혼까지 끝내고 나니
얼추 내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들이 끝난 기분이 든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걱정 없는 나날인가.
바랄 것 없다는 듯 여유를 즐기다가도
마음속 깊은 곳에 심어진 두려움의 씨앗이 슬금슬금 삐져나온다.
얼마 전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언젠가 일어날 내 옆의 부재, ‘남편의 부재‘가 떠올랐다.
혼자 남게 될 미래 말이다.
돌아가신 분께 드리는 마지막 한마디에
3남매는 ‘남은 할머니'에 대해 앞다투어 얘기했다.
"아버지, 남은 어머니는 걱정 마세요. 저희가 잘 돌볼게요."
절로 숙연해진다.
한편으론, 그들은 모두 그들의 삶이 있다. 안타깝지만, 혼자 남은 할머니 또한 대부분의 나날을 홀로 감당해야만 한다.
'딩크부부의 노후'에서 얘기했던 자식 없이 맞이하는 70대는 두렵지 않다. 꽤나 괜찮은 실버타운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날 소중히 여겨줄 사람이 없을 무수한 세월이 가끔은 두렵다.
“통상적으로 여자가 더 오래 살고, 내가 오빠보다 7살어리니까 높은 확률로 오빠가 먼저 죽겠지?”
“그렇지, 살아있는 동안 재밌게 살다가 와. 좋은 일도 하고 돈 펑펑 쓰면서 말이야. “
“아냐, 난 오빠 죽고 적당히 살다 스위스 가서 존엄사 선택할 거야. 그때 되면 노령인구 과다로 한국도 안락사 허용 할 수도 있고, 그럼 여기서 죽지 뭐.”
“죽긴 왜 죽어? 최대한 재밌게 살다와야지. “
“그럼 오빠가 나보다 오래 살아.”
“노력해 볼게, 내가 널 어떻게 혼자 두고 갈까 싶다. “
가는데 순서 없다는데, 노력해 준다는 말이 또 한 번 오늘을 걱정 없이 살게 해 준다.
누구에게나 노화는 달갑지 않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선명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할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러니 최대한 오늘에 집중해야 한다.
죽음이란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에 미리 벌벌 떨기보단
그저 저속노화를 위한 생활습관을 실천하는 게 현명하다.
할아버지는 새벽 4시, 병원에서 홀로 돌아가셨다.
그는 평소 지병이 없었고, 갑작스러운 폐렴증상으로
119를 불러 간 병원에서 3일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
죽음은 이렇듯, 자녀유무를 떠나 외로운 것이다.
그러니 이런 두려움에 잠식되기보단 지금 누리는 행복을 최대한으로 만끽하자.
딩크부부의 노화는 레드카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옐로카드다. 발견 시 잘 헤쳐나간다면 인생이란 경기를 잘 끝마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