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를 표합니다
결혼 후에 만나는 사람들은 확실히 결혼 전과는 다른 종류의 질문들을 한다.
결혼 전 질문이 ‘나‘를 향했다면, 결혼 후엔 ‘네가 만든 새로운 그 가정’으로 향한다.
어르신들의 "아이는?" 이란 질문은 젠틀하다. 그저 "없어요." 라도 대답하면 끝일 질문.
그런데 간혹 선을 넘는 질문들이 있다.
아주 사적인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무례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뱉는 질문들 말이다.
"아이는 왜 안 낳아?"
"노후는 어떡하려 그래?"
등등 여러 가지 황당한 질문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중 가장 저렴한 질문은
“아이도 안 낳을 건데 결혼은 왜 해?”
타인의 출산계획에 지속적 관심을 가지는 것은 괴상하다. 최근 한 개그맨의 와이프가 지난 몇 년간의 여성암투병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수차례 항암을 진행하며 임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투병사실을 털어놓은 데는 몇 년간 지속적으로 괴롭힌 출산 관련 악플들 때문이었다.
악플러들은 그녀가 결혼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임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했다.
대부분의 악플은 그녀를 골드디거 (물질적 이익을 위해 남성과 사귀거나 결혼하는 사람) 대하듯 물어뜯었다. 반박하기 위해 그녀는 과거 투병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기괴하지 않은가?
그녀는 조선시대 중전이 아니다. 그녀가 먼저 지혜를 구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그녀의 출산 계획에 가타부타할 필요가 없다.
각자의 삶을 재밌고 열심히 살면 된다.
하나 예시를 주자.
사람들은 종교 전도를 극도로 경계한다.
전도하는 이들 입장에선, 그들이 종교에서 얻은 그 큰 거룩함과 평안을 남들도 알길 바라며 미션을 전한다.
반면, 종교를 통한 평안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에게 전도는 그저 하나의 강요이자 부담스러운 행위에 불과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행복함을 타인에게 전하고 싶은 것뿐일 수 있다.
내겐 당연한 세상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다.
그러므로 조심성 없이 전달하는 행복감 역시 '부담스러운 행위'에 그칠 수 있다.
모든 충고는 상대가 요청했을 때만 용인된다. 요청 없는 충고는 그저 간섭에 불과하다.
하루는 온라인에서나 거론될 것 같은 질문을 들었다.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런데, 아이도 안 낳을 거면 결혼을 왜 했어?"
“꼭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하는 거야?"
“그게 아니면 그냥 동거하면 되잖아.”
“글쎄,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있어. 또 아이를 계획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못 낳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나처럼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럼 결혼 안 하고 연애만 하고 사는 게 훨씬 재밌지 않아?"
“난 그런 삶이 그렇게 재밌진 않아. 내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반려자를 만났고, 그와 정식적 부부가 되기로 한 거야."
“결혼해서 제도적으로 더 나은 점이라도 있는 거야?”
그녀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대답을 흐렸다.
결혼의 목적은 여러 가지 일 수 있다.
그것이 아이, 행복, 경제적 풍요 등 모두가 다른 목적을 가질 수 있다.
내게 결혼의 목적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남은 삶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혼은 오로지 아이를 갖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반려자로 삼고 남은 삶을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다.
결혼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결혼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음.
즉, 사랑이다.
사랑이 있기에 결혼 후 암에 걸린 배우자를 지극히 보살필 수도 있고,
그렇기에 유산의 아픔을 함께 치유해 나갈 수도 있으며,
질병으로 인해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될지라도 부부는 돈독한 마음으로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
이 간단한 이치를 알지 못한 채
'애도 안 낳을 건데 결혼은 왜 해?'
라고 질문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풍요롭지 못한 그 마음에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