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막 애순이로 만들어
아이가 없는 무자녀 부부는 무척이나 잘 맞아야 한다.
유자녀 부부보다 비교적 쉽게 관계를 정리할 수 있어서란 점을 알 것이다.
세상이 변했어도 아이를 위해 한번이라도 더 참아보는 부부들이 많다.
꼭 이혼을 참는 게 아닐지라도 아이들 앞에서 목소리 한번 높이기가 신경 쓰인다.
그들은 부부사이가 아주 좋진 않더라도 인내하는 무언가가 더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딩크부부는 까탁 하다간 그 관계가 끝나기 십상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양관식 캐릭터를 보자 하니 남편이 떠오른다.
남편 자랑을 늘어놓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배려 덕에 상을 차리는 쟈스민이 아닌
상을 엎을 수 있는 쟈스민이 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시아버지는 며느리 쟈스민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는 걸핏하면 시비를 걸어왔다.
“어머님, 이 반찬 너무 맛있어요. 어쩜 이렇게 요리를 잘하세요.”
이 한마디마저도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맛있게 먹지만 말고 와서 좀 배워라.”
옛말에 먹는 모습도 꼴 보기 싫으면 진짜 끝이라던데, 그와 나는 시작도 전에 끝이 난 것 같았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려 다음 방문 전에는 밥을 든든히 먹고 갔다.
그리고 말없이 먹었다.
“차린 사람에 대한 성의가 있지, 어머님 기분 좋게 팍팍 맛있다고 먹어라.”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말대꾸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할 말은 하고 살던 문학소녀 애순이가 관식이를 보며 참아내듯, MZ쟈스민은 하고픈 말을 밥과 함께 목구멍 뒤로 넘겼다.
그가 처음 예비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긴 이유는 아들보다 '못난'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지만
좋지 않게 여긴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코로나 인원 제한이 있던 시절 우리 부부는 결혼했다.
신혼여행 역시 국내 여행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혼여행이 끝나는 당일 바로 인사 오길 바랐다.
다음날 출근이 있어 그다음 주에 가겠다고 말씀드린 것이 그의 심사를 제대로 뒤틀리게 했다.
이 대화를 나눈 날은 부부의 결혼식 당일 아침이었다.
"이 결혼 물러도 된다. 아버지는 상관없다. 뒷감당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괜찮다."
남편은 그 말을 듣자마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차에 태워 헤어숍으로 향했다.
결혼식 당일부터 어긋나는 것 같아 보였던 쟈스민과 시아버지.
지금은 잘 지낼까?
놀랍게도 갈등 없이 잘 지낸다.
적어도, 그로 인해 우리 부부 관계에 금이 가고 있진 않다.
아버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경 쓰는 쟈스민을 보자니 도시 관식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루는, 결국 그 혼자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 쟈스민한테 잘 좀 해주세요. 장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어떻게든 단점만 찾으려 하지 말고 장점을 좀 보세요. 아버지 사업 해보셨잖아요.
고객 마음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잖아요. 쟈스민을 고객이다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가 쟈스민한테 잘해주셔야 한 번이라도 더 절 보실 수 있어요."
회유와 협박이 섞인 말이었다.
그는 오랜 사업 경력으로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이건 경고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터.
그는 태클을 멈췄다.
그 후론, 그저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아들 부부를 맞이하셨다.
이렇게 도시 양관식은 그의 방법대로 해법을 찾았다.
그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찾아내고 발전시킨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더하고, 없앨 것은 과감히 배제시킨다.
사실 이건 무자녀, 유자녀 부부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선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 드라마 속 관식이처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분명 부부를 더 끈끈히 결속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