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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세 고시로부터 자유로운 가요?

by Jessmin

94년생 쟈스민은 한글을 읽기도 전에 영어 공부방을 다녔다. 4살 많은 친오빠가 다니는 공부방에 깍두기 하나가 꼈다.


엄마는 혹여나 자녀가 뒤처질까 운전까지 배워가며 눈이 오나 땅이 어나 나와 오빠를 라이드 했다.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던 깍두기는 영어 읽는 법 조차 몰랐다. 영어 발음을 물어가며 읽고 또 읽었다. 부모는 겸사겸사 보낸 딸이 욕심 있게 하는 모습을 기특해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엄마는 7세 고시를 보게 하는 요새 대치 문화와 다를 바 없는 극성 엄마 같이 들릴 수 있다. 놀랍게도 그녀는 단 한 번도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다. 그저 자식들이 원하는 사교육을 요구할 때마다 최선을 다 해 선생님을 찾아줬을 뿐.




그녀의 목표는 매우 간단했다.

내 아이가 학습 부진아만 되지 않는 것.

다른 아이들보다 잘나길 바라지 않았고 미국인처럼 영어를 구사하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두니 초등 입학 날까지 한글을 읽지 못했다. 한글을 읽지 못하니 알림장을 쓸 턱이 있나.

그때부터 그녀는 한글 맹연습을 시켰고 나는 일주일 만에 알림장을 쓸 수 있는 아이로 거듭났다.


명문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고1 수준의 영어 독해, 문법, 에세이 작문을 하는 7살 아이를 둔 요새 엄마들이 들으면 기절할 이야기다.


물론, 난 여러 가지 사교육을 받았고 유학까지 갔다 온, 어찌 보면 완전체에 가깝다. 그러나 97년생 사촌 동생은 진정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 시대에 백단위를 호가하는 영어유치원-미국에서 초등학교- 외고- 명문대- 대기업 코스를 밟은 진정한 엘리트 청년이다. 과연 그는 행복할까?

놀랍게도 너무나 행복하다. 대기업에서도 그가 원하던 직무를 하고 있고 세계 곳곳을 출장 다니며 그의 부모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사촌동생을 보자니 자녀계획이 있는 친오빠도

아이 하나만 낳아 비슷한 코스를 밟게 해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명문 영어 유치원(학원)은 7세 고시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7세 고시가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고 유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도 시작은 내 아이가 ‘학습 부진아‘가 되지 않길 바란 것뿐일 수 있다.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7세 아이에게 요구되는 평균에 미달되지 않길 바라는 흔한 부모 마음일 수 있다.


또는 내 사촌동생과 같은 영어유치원 세대의 결과물을 보며 그러한 삶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나의 친오빠와 같은 마음일 수 있다.




친구의 조카는 초등학생 때 코로나를 겪었다.

등교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와 보냈다.

부모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교육을 강요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초 5이지만 시계를 볼 줄 몰랐고 구구단조차 헷갈려했다.


아이는 말 그대로 학습부진아 수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친구는 언니를 설득해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사교육이 결합되어서야 아이는 그 나이대에 맞는 학습 수준에 도달하게 됐다.


극단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사교육을 받은 모든 아이들이 엘리트코스로 이어지진 않지만, 받지 않는 아이들이 뒤처지는 것은 요즘 시대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 애는 기본은 하니 됐어.’라며 신념을 지키기 쉽지 않으리라.





남편과 7세 고시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쟈스민, 넌 아이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 거야?”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상상해 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나 또한 아이가 앞서진 않아도 뒤처지는 것은 보기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한국어 못쓰게 할 거야. 집에서 허락되는 언어는 영어랑 중국어뿐이야.”


어찌 보면 7세 고시보다 한 술 더 끄는 가혹한 방법일 수도 있다. 한국인 아이가 한국어를 떼기도 전에 제2외국어만 써야 한다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이 아이조차 벌써부터 7세 고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이쯤 되니 과연 어떤 아이들이 7세 고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현재는 대치 문화로 한정되어 누군가에겐 유난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7세가 될 무렵엔 그것이 수도권 문화가 돼 있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행복한 인간으로 키우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결심한 딩크는 아니었으나 한편으론 ‘무’가 주는 안심이 있다.

부모로서 중용을 지키는 미덕은 그 무엇보다 어려울 것이다. 마치 모 아니면 도와 같은 스탠스를 취하게 되는 셈이다.

무자녀 부부로서 이 현상을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또, 7세 고시에 뛰어든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런 문화가 만들어진 그 사회와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 자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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