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단상] 화석 학번

by 직딩제스

매년 3월마다 대학 캠퍼스에서 빠지지 않고 떠도는 사진이 ‘암모나이트’, ‘삼엽충’ 같은 화석 사진이다. 고학번 선배를 가리켜 ‘화석’이라고 빗대어 일컫는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들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화석 타령’이 전~혀 웃기지 않다. 매우 불편하다.

고학번 = 화석.
즉, 캠퍼스에서 보기 힘든 학번이고, 있으면 안 되는 학번 같다.


고학번 선배들을 화석에 비유하는 SNS 포스팅

이 화석 타령에서 몇 가지 살펴볼 수 있다.

1.
화석 타령에는 선배를 보는 존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선후배 간의 존중은 없다.

예전처럼 선배가 후배 술 사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진로를 걱정하고 나아가 사회를 논하던 시대는 끝난 것 같다. 새벽까지 과방에서 선배랑 막걸리 마시고 가끔 졸업 선배까지 와서 신문지 위에 앉아 잔을 기울이던 모습은 이제 캠퍼스에 남아 있지 않다.

선배와 후배와의 공감대가 없으니 선배가 더욱 멀게 느껴지고, 선배를 찾지 않는 시대에 자기 살기도 바쁜데 나서서 후배를 먼저 챙기는 선배도 거의 없다. 그나마 선-후배를 이어 주는 장인 동아리, 학과, 학생회도 신입생들의 무관심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수업만 듣고 가는 학원 같은 대학 생활,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들어와서 또다시 학점 경쟁만 하다가 졸업하는 모습이다.

사회도 각박한데 대학 생활까지도 각박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2.
저성장,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인 시대에 5학년은 거의 필수가 되었다.

대학 정규 4년 + 취업준비+1년 + 휴학(어학) 1년 하면 대학을 5~6년 다니는 것은 여사 일이다. 남자는 여기에 군대 2년이 추가된다. 그러니 남자의 경우 입학과 졸업까지 8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 올해 신입생이 16학번이니 08~09학번이 캠퍼스에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고학번 선배를 화석으로 보는 것은 무슨 조롱 섞인 시각인가?

이런 따가운(?) 후배들의 시선을 뚫고 후배를 먼저 챙겨주는 선배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즉, 같은 캠퍼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선-후배 간 소통하지 않는다.

3.
여기서 저 학번들이 크게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선배 (先輩). 즉 사전 적 뜻대로 '지위, 덕행, 경험 등이 자기보다 앞서거나 높은 사람'에게서의 배움이다.

선배들은 학과 수업뿐만 아니라 CC 경험, 군대, 학점 관리, 동아리 등 학교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 먼저 경험을 하고 익혀 온 사람이다. 시간적인 면에서나 경험적인 면에서도 많은 정보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선배도 있다.) 그러니 듣고 배울게 있는 사람이다.

좋은 선배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풍부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고, 먼저 경험으로부터 성공에 대한 비결과 실패에 대한 교훈도 배울 수 있다. 즉, 어떤 일에 대해 실패할 확률은 줄어들고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수치로 표현해서 좀 그렇지만 그만큼 대학생활이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4.
사람은 사람에게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가장 크게 배운다.
백 마디 글자보다 옆에서 한 마디 해주는 것이 가장 피부에 직접 와 닿는다. 백 마디의 인터넷 말보다 잔을 한 잔 기울이는 한 마디가 더 따듯하다.
아무리 대학에서 학점을 잘 받아도,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 해도 졸업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그 사회에 모여서 생활하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그 사회의 구성원들과 가깝다는 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넘어, 요즘 같이 온라인이 발달한 시대에 오프라인 인맥은 큰 자산이다.

*.

참고로, 회사 들어오면 90년 대 학번이 파트리더고, 80년대 학번이 팀장님인 경우도 있다. 단언컨대, 00년대 선배를 대하는 것 보다 한 16배 어렵다.
.
.
.

암쪼록, 대학생들이 선후배 동기들과 어울려서 즐겁고 재밌는 대학 생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 나오면 대학 친구들 어울리고 놀 시간 더 없다.

- 슈퍼 고학번, 아니 화석 of the 화석 선배..

#직딩단상 #화석타령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직딩단상] 회사 다니면서 안 좋은 점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