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나의 고향이다.
부산역에 내리면 넓은 광장이 나오고 그 앞에 텍사스거리와 번화가가 있다. 고개를 들어 가장 멀리 보이는 산은 구봉산이다. 구봉산 끝자락까지 올라가 있는 마을, 부산시 동구 초량, 내가 나고 자란 곳. 초등학교 때까지 살다가 서울로 전학을 갔다. 그래서 부산은 나의 유년시절만 고스란히 담겨 있는 추억의 보물상자로 남았다. 부산역에 내리면 그때 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시 유년 시절로 되돌아 온 것만만 같다.
마음의 고향이자, 진짜 나의 고향이라서 그런지 부산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여행을 모르던 시절, 처음 여행을 온 곳도 바로 이곳 부산이다. 회사를 다니다 너무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아 혼자 부산을 여행했다. 카메라를 들고 달맞이 고개며, 해운대며, 이곳저곳 혼자 걸어 다녔다. 숨이 트였다. 밥도 혼자 먹고 잠도 혼자 잤다. 혼자한 여행이 처음인데 혼자서도 좋았다. 대학교에서 MT나 친구들이랑 여행을 갔고 여자 친구가 있을 때는 여친과 같이 여행을 갔는데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내 계획에 없었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친구들과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고, 여자친구는 없은 지 오래되다 보니 여행 갈 기회가 없었다. 아, 부모님 모시고 몇 번 갔다오긴 했다. 그런데 항상 사람들 속에 치여 살다보니 문득 혼자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약속도 없이,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무작정 혼자 떠나고 싶었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그 첫 여행이 너무 좋았다. 사진도 마음껏 찍고, 카페 들어가서 커피 마시고, 책 읽고, 잠들 때까지 그 누구의 방해도, 눈치도 없이 며칠을 자유롭게 지냈다. 혼자 밥 먹을 땐 외로웠지만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회사에, 관계에 지친 내게 그렇게 혼자만이 시간이 필요로 했나 보다. 여행이 그렇게 나의 위로가 되었다.
첫 여행에 눈을 떠서 그 후로 1년 간 세 번이나 해외여행을 갔다 왔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서른 중반이 돼서야 여행에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홀로 부산을 찾았다.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2시간 반, 옛날에는 5~6시간 걸렸던 것 같은데 현대 기술이 정말 좋아졌다. 새마을호보다 짧게 타면 더 싸야 하는 것 아닌가..?
부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오르막길을 올라올라 가면 산복도로가 나온다. 산복도로에 올라서면 부산 앞바다가 시원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굽이굽이 좁은 도로를 버스는 거침없이 달려 부산고등학교 정류장에 내렸다. 이곳은 옛날에 할아버지가 차고를 운영하던 곳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것이 정리 되고 기억만 남아 있다. 지금은 깔끔한 주차장으로 정비가 되어 있는데 남의 집 옥상에 이런 주차장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한 구조다. 소방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옛날에 내가 뛰놀던 골목, 친구가 살았던 집, 우리 가족이 살던 셋방집(집은 사라지고 터만 남은). 추억의 흔적들을 지나면 내가 살던 부산집이 나온다. 빨간 타일을 붙인 2층 빌라. 이 동네는 대부분 이런 모양으로 지어졌다. 같은 건설업자에게 맡겨서 비슷한 집이 많다.
마을 한가운데로 소방도로가 뚫려서 옛날 모습은 그대로는 아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뛰놀던 골목의 모습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내가 벽에 한 낙서도 남아 있었다.
'강동우 바보'
아랫집에 살던 친한 동생이다. 동우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 덩치는 나보다 컸다. 집도 가까워 맨날 같이 놀았다. 같이 농구하고 축구하고 볼보이도 많이 시켰다. 애가 순하데 좀 느려서 나한테 맨날 지고 살았다. 지금은 뭐 하고 사려나..? 그때의 친구들, 그때의 친척들, 그때의 아버지, 그때의 어머니, 누나...
그렇게 추억에 빠져서 길을 내려오다 보면 내가 입학했던 초등학교가 나온다. 부산동일초등학교.
'구봉산 맑은 정기 감도는 기슭~'하는 교과가 절로 나온다. 20년도 훌쩍 넘었지만 그 교과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 오늘은 사촌 동생집에서 자기로 했다. 서면에서 피자집 점장을 하고 있는데 어릴 때 우리 사촌들은 다 같이 살았다. 동생이 퇴근할 때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지만 그냥 먼저 가게에 가 있기로 했다.
서면역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부산에서 가장 큰 번화가다. 서면역 출구를 나와 조금 걸어 올라가면 오락실 골목이 나온다. 오락실이 얼마나 크면 실내에 디스코팡팡도 있다. 맞은편에 피잣집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저녁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홀은 한산했다.
"형 왔어요?"
"어 준아. 좀 일찍 왔다."
"응 좀 거기 앉아 계세요."
"뭐 마실 거라도 줘요?"
"아니, 그냥 물이나 줘."
준이는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피잣집에서 일했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준이는 피자를 돌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독립해서 일해서 벌고 혼자 살고 있다. 그 모습이 참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피자로만 10년 넘은 장인이다.
"휴가 내고 왔어요?" 물을 건네주며 준이가 말했다.
"어. 며칠 휴가 냈다."
"휴가도 쓰고 좋은 회사네" 준이가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 앉았다.
"우리 같은 서비스직은 쉬고 싶어도 못 쉽니데이"
"왜? 알바도 많잖아." 가게에 몇몇 알바생들이 오가며 음식을 준비하고 홀을 정리하고 있었다.
"말도 마요. 당일 날 빵꾸 내고 전화 안 받고.."
"진짜...? 그런 애들이 다 있어."
"인사하고 그만두면 다행이게요? 요즘 아들은 말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고 그냥 끝이에요."
"이야.. 사람 관리하는 게 쉽지 않네."
"피자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에요. 알바생 관리가 제일 힘들지. 빵꾸 내면 또 내가 나가야 되고.."
"힘들겠다잉..."
준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회사 다니는 게 제일 편한 거 같기도 하다. 오늘은 손님이 거의 없어서 일찍 마감할 거 같으니까 나보고 조금만 기다리라며 다시 주방으로 갔다. 나는 회사를 나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피자집 알바? 손이 느려서 대학생 때 카페에서 일하는 것도 힘들었다. 주문이 밀리면 정신이 없었다. 짧게 일하는데도 항상 긴장해서 그런지 중간에 밥도 안 넘어갔다. 알바가 끝나면 녹초가 돼서 집에 가서 잠만 자고 싶었다. 그래도 그때는 20대였으니 알바라도 할 수 있었지 서른이 넘어서 어디 알바하려면 일을 시켜나 줄지 모르겠다. 이 피자집도 점장인 동생보다 내가 나이가 많은데.. 나는 회사를 나오면 뭐 먹고사나? 먹고나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가게 마감 시간이 다 되었다.
"행님 오늘 내가 자주 가는 단골집에 가입시더"
"어. 그래 내는 다 좋다. 가자."
부산에 오면 나도 사투리가 조금씩 나온다. 어색하지만 재밌다.
사람 많은 번화가를 거쳐 골목으로 들어가니 차도 안 다니는 골목으로 준이가 나를 안내했다. 간판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어떤 불 켜진 가게의 샷시문을 '끼~익'하고 열었다. 실내 포장마차였다.
"이모 내 왔어요" 준이가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를 한다.
"어 왔나?"
주인아주머니가 반기며 인사한다. 둘은 정말 이모-조카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한다. 이모님은 뒤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처음 보는 친구네~"
"내 형님입니다. 서울에서 왔다아입니꺼?"
"맞나? 어서 오이소~"
정겹고 따뜻하게 나까지 반겨주신다.
"소주 게안치에?" 준이가 테이블에 앉으며 물었다.
"내는 소맥 하께"
"이모~ 좋은데이랑 카스 한 병이요."
술을 따르며 내가 물었다.
"니 여자친구랑은 잘 되고 있나?"
"헤어진 지 꽤 됐으요?"
"와...?"
"대학원 진학하고 그 집안에서 반대해서 뭐... 우짭니까..?"
준이는 5년 넘게 만나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알바하던 대학생이었는데 꽤 진지하게 만났다. 그런데 여자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다. 장거리 연애도 문제였지만 나이 차이가 꽤 있었다. 거기에 그쪽 부모님의 반대가 가장 컸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서울 인근에서 좋은 직장에 갈 테고 준이는 그 사이 계속 부산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있을 텐데.. 둘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는 모양새였다. 부모님의 반대가 가정 컸을 것이다.
"그래 됐심더. 행님은에?"
잔을 하며 준이가 내 안부를 물었다.
"내도 마 똑같다. 연애 못한 지 몇 년 됐다."
우리 둘은 소주 잔과 맥주잔을 번갈아 기울이며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곰장어 구이랑 오뎅탕, 골뱅이까지 먹었다. 1차를 마치고 2차로 편의점에 들러 간단하게 술을 사서 자취방으로 들어왔다. 남자 혼자 사는 집 치고는 깔끔했다. 정확히 말하면 가구가 없었다. 작은 TV 한 대, 행거, 냉장고, 서랍장 하나. 그중 가장 큰 것은 고양이 캣타워였다. '나비'라는 살색 고양이가 살았는데 덩치가 산만했다.
"잘 묵어서 살이 포동포동 찠다아입니까?"
준이가 안주와 술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나비를 쓰다듬으며 놀고 있었다. 고양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부산은 내게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시끌벅적한 관광도시가 아니라 추억을 거니는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 편의점에서 사 온 술과 과자를 쟁반에 놓고 마시면서 옛날이야기를 했다. 준이와 나는 같은 집에서 자랐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다른 삶의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나는 대학에 갔고 준이는 알바를 했고 나는 대기업에 갔고 준이는 피자집 점장이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처한 상황은 비슷했다.
30대, 솔로, 남자. 연애 오랫동안 못 함....
그렇게 부산의 밤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다음 날, 믿기 힘든 운명 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손톱만큼도 알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나는 당신이어야 합니다. 6화에서 계속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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