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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딩제스 Oct 02. 2016

삶의 열정

직딩단상 | 삶

카페에 있는데 창가에 머리가 희끗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맥북을 하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 노트북을 쓰는 모습도 참 신기했고, 더욱이 윈도우가 아니라 Mac이라서 더 신기했다. 관심을 갖고 할아버지를 보았다. 한 손에는 맥북 매뉴얼을 들고 이것저것 눌러보면 세팅을 하고 계셨다. 처음 사셔서 어떻게 쓰는지 배우고 계시는 듯했다.

그 모습이 참 멋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데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배우려고 한다는 점에서 열정이 느껴졌다. 삶의 열정. 가까이 가서 말을 걸어 보았다.


"저기.. 안녕하세요."

"..."(오잉) '웬놈인고' 하는 표정으로 화면을 보던 눈을 돌려 나를 쳐다보셨다.

"뒤에서 보고 있는데 컴퓨터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 어서요. 그것도 맥북을 쓰고 계시네요. 어떻게 맥을 다 쓰세요?"

"아~ 내가 옛날에 잡지/책 편집을 했는데, 지금은 은퇴했고, 그동안 내가 만들어 놓을걸 정리를 하고 싶은데 그 파일이 다 매킨토시용이라서 윈도즈에서는 열 수가 없어. 그래서 이번에 매킨토시를 산거야."

"아 그래서 지금 사용법을 익히고 계시는군요."

"그렇지. 윈도즈만 쓰다가 이 매킨토시를 쓰려니까 내가.. 지금 정신이 한 개도 없어. 그래서 이거 책 보면서 배우고 있는 거야." 들고 계신 책을 Mac OS 사용 가이드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모델은 Macbook Pro 15". (내 거 보다 좋은 거다.)

"그렇죠. 좀 어렵죠. 저도 처음 맥을 쓸 때 윈도우랑 달라서 저도 한 참 애를 먹었습니다. 운영체제가 달라서."

"자네도 매킨토시 쓰나?" 할아버지께선 끝까지 매킨토시라 하셨고 나는 끝까지 맥이라고 했다. 그렇지 맥의 원래 이름은 매킨토시였지.

"네, 저기 제 맥입니다." 하면서 뒷자리에 내 노트북을 가리켰다.

"그래? 이거 잘 됐구먼. 이거 어떻게 하는 건가?"하시면서 끄는 방법, 부팅방법 등을 물어보셨다.

"아이고, 그런데 설명을 해도 내가 지금 뭘 알아야 더 물어볼 텐데, 한 개도 몰라서 좀 공부하고 더 물어봐야겠네"

"네네, 제가 뒷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필요하신 거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그려 그려."


카페에서 할아버지께서는 Mac 매뉴얼을 보시며 컴퓨터를 공부하고 계셨다.


"저, 그런데 할아버님 모습이 너무 멋있으셔서 제가 사진을 아까 한 장 찍었는데요. 보실래요?"

"아이고 뭐 얼굴도 잘 안 보이네 그려."

"제가 보내드릴게요. 이 메일 주소 알려 주세요. 그리고 제 블로그에 올리려도 될까요?"

"허허. 그려 뭐 그러세"  

"젊은이 내 블로그도 볼 텐가?"

"와~ 블로그도 있으세요?"

"그럼 있지."하시면서 http://www.fishillust.com으로 접속을 했다. 어류도감이라는 제목이었다. 어류 관련된 지식을 모으고 계셨고 그것을 책으로 내고 싶다고 하셨다. 직접 다 모으고 발췌하고 쓰신 거라고 하셨다. 심지어 영어로도 쓰셨다.

"정말 방대한 자료네요. 대단하세요."

"뭘~ 허허"

그렇게 블로그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또 할아버지께서는 스타벅스의 로고 인어 사이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셨다. 한참을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인사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다.


자리로 돌아와 앉으면서 뭔가 할아버지의 뜨거운 열정이 옮겨 붙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삶의 열정'

젊은 사람들에게만 있는 열정이라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께도 분명 그 열정이 느껴졌다. 나이 노소를 막론하고 배움에 열정이라는 것은 얼마 멋진 모습인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공자의 말이 떠올랐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다. 학문뿐만 아니라 무었든 새롭게 배우고 도전하는 모습은 언제나 열정적으로 보인다. 나이가 들어서도 늘 배울 자세를 가졌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일을 제외하고는 따로 무언가를 배우 지를 않았다. 배울 시간도 없고 주말에는 피곤해서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여력이 없다. 그런데 오늘 할아버지를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 사실 나는 '공부 안 하는 직딩' 이었다. 돈을 버는 것과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돈을 번다고 머리가 차는 것은 아니었다. 일을 아무리 해도 지적으로 충족되지는 않았다. 과연 나는 업무를 빼고 나면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을까. 점점 대학 때 배운 것도 까마득히 잊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잊고 머리가 굳어져 간다면 대학 때 공부한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직장인이 되고 나서 공부를 너무 놓고 살았던 것 같다. 더 늦기전에 배우고 또 익혀야겠다.

그렇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다.


#삶의열정. 직딩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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