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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Mar 10. 2016

[긴 단락 다섯] 이세돌의 패배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우리는 어떻게 인공지능에 맞서야 하는가

나는 바둑을 1도 모르지만,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바둑은 워낙 변수가 많고 직관적이며 고도의 '사고력'을 요하기 때문에 체스/장기와는 달리 인공지능에게는 난공불락일 것이라 했다.

이세돌은 그 누구보다 창의적이고 변칙적으로 바둑을 두는 기사기에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기계에게는 가장 어려운 적수일 것이라 했다.

그런 바둑에서, 그런 이세돌이 졌다는 소식에 나는,어쩌면 이세돌 본인보다 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다


알파고가 5개월 전에 둔 바둑을 보고 이세돌은 '프로급이 아니다' 라고 평가했다.

이세돌과의 첫 대국을 보던 해설자들은 '최정상 프로기사의 대국을 보는 것 같다' 고 평했다.

알파고는 5개월만에 아마추어-혹은 평범한 프로기사의 수준에서 세계 최정상 프로기사급으로 성장했다. 인간이라면 십여년이 걸릴 일을 단 몇개월만에 해낸 것이다.


기계-시스템의 빠른 성장은 비단 알파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례로, 기계-시스템은 단 5년만에 디지털 광고시장을 장악해버렸다. 겨우 5년만에, 사람의 머리로 전략을 세워 사람들끼리 만나 광고 미디어를 구매하던 방식은 멸종 위기에 놓였다. 지금은 구글이 만든 광고시스템이 '알아서' 효과가 좋은 광고 미디어를 '알아서' 최적의 가격에 구매해준다.


5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지... 알파고의 진화 속도를 생각하면 어지럽기까지 하다.



제 2의 산업혁명이 다가온다


아니, 이미 진행 중이다- 라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했듯이, 이제는 시스템이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면서 지적노동자들이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알파고의 승리는 시스템(혹은 프로그램이라고 해야할까?)이 단순 계산업무와 정보처리 수준을 벗어나 더 복잡하고 더 직관적인 일까지 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일부 해설자들은 '이름을 가리고 보면 누가 이세돌인지 알 수 없을 것 같다'고 평해, 알파고가 '기계적인' 사고를 넘어섰음을 시사했다.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시스템은 인간의 두뇌- 지적능력을 완전히 대체할 능력을 갖출 것이다.



그럼 나는 뭘 해야하지?


근대 학문의 '대세'는 인문학-사회과학-이.공학의 순으로 이동해왔다. (조선시대 '글 읽기'-1900년대 경제/경영/정치학-현대의 기계/화학/생명공학)

나는 내심 다음 차례는 아마도 "예술" 혹은 "창의적인 그 무언가"가 될것이라고 기대해왔다. 그리고 인간의 마지막 보루 역시 '창의성'이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알파고의 승리에 망연자실했던 것은- 이 생각마저 틀렸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계-시스템이란 것이 곧 인간의 창의성마저 뛰어넘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에.

'예술'의 영역에서도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일 내에, 기계-시스템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인간으로써의 알 수 없는 무력감마저 밀려왔다.


이미 기계-시스템으로 막장드라마 정도는 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하니, 인공지능이 쓴 희곡을 가상현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무대를 곧 보게될지도 모른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놀아야지 뭐~ 일은 기계가 다 할텐데...

그리고...


즐겁게 살아야 할 것 같다.

기계-시스템은 인간의 '일'을 대체할 수 있지만 '노는' 것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을테니까. 설령 대신 해 줄 수 있다고 해도 기계는 즐거움을 안 느끼니까. (느낄 필요도 없겠지만!)


사고력과 창의성마저 침탈당한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고유의 영역 '감정' 아니겠는가. 때론 완벽한 화음과 멜로디보다도 방금 실연한 사람의 거친 노랫소리가 마음을 울리듯, 기계의 완벽함을 이길 수 있는건 가장 불완전한, 감정일지도.


... 그리고 먼 훗날에, 기계가 마침내 감정까지 대신 느껴주게 된다 해도, 인간은 기계에게 '즐거움'만큼은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ㅎㅎ


노력하는 자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인공지능 따위가 순식간에 앞지를지도 모르는 성과, 숫자 따위에 지배당하지 않고 나의 삶을 즐거이, 풍부하게 살자. 그 즐거움 속에서 기계-시스템을 이길 새로운 무기가 탄생하리라고, 나는 한번 더 믿어보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꼭 일을 그만두고

꽤 오랫동안 여행을 해봐야겠다.

기계는 절대 못할 '즐거운 여행!'



덧.

나는 이 세기의 대결이 '알파고의 승리'가 아니라 '이세돌의 패배'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주체는 "사람"이라는걸 잊지 않기 위해서.


덧2.

구글이 무섭다.

공존을 위한 브레이크, 혹은 가이드라인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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