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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Apr 24. 2016

[긴 단락 여섯] 살아있는 자가 짊어져야할 무게


"지금 만날 수 없어? 나 좀 만나주면 안되냐?"


기운없는 목소리였다.


곧 마감인 프로젝트의 마무리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자 수화기 건너편에는 정적이 흘렀다.   바로 이른 휴가를 떠날 예정이었던지라 다른 날 보자고 할 수도 없었다.


한참의 정적 끝에 알았다고 말하는 녀석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목이 잠긴 것 같기도 했다. 평소같으면 잠깐 밥 한끼 먹을 시간도 안 되냐며 조르고도 남았을 놈인데- 내키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알았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전화를 끊은 것도 이상했다.


곱씹어보면 하나같이 다 이상했는데.... 일에 집중했던 탓인지, 곧 떠날 휴가에 마음이 너무 들떠있었던건지, 난 더 이상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이내 다시 업무로 빠져들었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지마자 예정된 휴가를 떠났다. 겨우겨우 구한 비행기를 타고 먼 타국에 내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하려던 순간, 로밍해온 휴대폰에 띠링- 문자가 도착했다. 그녀석의 번호였다.


"000 본인상

빈소: ... 병원

발인: ....월.. 일... 장소 미정

..."


걷던 자리에 우뚝 서서 삼십년 가까이 멀쩡했던 내 눈을 의심했다.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 뜬 메시지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실수한건 아닐까?... 대체 어떤 실수를 하면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을지 온갖 생각을 해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멍하니 쳐다보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뒤늦게 벨소리를 인지하고 천천히 통화를 눌렀다. '여보세요-' 라는 말이 꽉 메인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시 저 아래로 끌려내려갔다.

말 없이 귀에 갖다댄 수화기에서 엉엉 우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녀석과 종종 함께 어울렸던 다른 친구였다. 왜 로밍 메시지가 뜨는거냐며- 대체 지금 어디 간 거냐며- 00이 죽었대... 너 어디야... 너 어딨어 지금, 00이 죽었어... 라며 친구가 꺼이 꺼이 울었다.


멀고 먼 거리 때문이었을까, 아님 지직거리는 로밍통화 때문이었을까. 친구의 울음에도 난 실감이 안 났다. 여전히 거짓말인것 같았다. 그런데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그래서 자기가 받은 상처를 하나도 남김없이 기억했다.


유머러스하고 센스 있는 놈이었지만 자주 모난 말을해서 그 녀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가시 돋힌 말을 할 때마다 그 가시의 크기만큼 자기도 다쳤다. 자기가 다친 크기만큼 가시를 내뱉었던건지도 모르겠다.


늘 불안하긴 했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게 분명했고, 그걸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 가끔은 병든 자기 마음 때문에 힘들다며 투정도 부렸다.

한번은 한밤중에 SNS에 모두 잘 있으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설마 하는 마음에 전화를 수십통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학교 근처에 사는건 알았지만 정확한 주소는 몰랐다. 그 녀석과 가까이 사는 동기에게 전화했지만, 그 동기도 주소는 몰랐다. 결국 동기녀석이 경찰에 신고 전화를 넣었다.

속이 타들어가길 몇시간, 경찰이 집에 있는 그 녀석과 만났다고 연락이 왔다.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런 전적이 있는 놈이란걸 내가 너무 빨리 잊고 말았다.



그 녀석은 세상을 힘들어했다.

이 세상이 부조리한 것을 참지 못했고, 자신의 부모가 가난한 것도 납득하지 못했다.

머리가 좋은만큼 공부도 잘해서 원하던 회사에 취직했지만, 부당한 상사와 회사 시스템을 그냥 넘겨버리질 못했다.


학생때보다도 곱절로 힘들어하던 녀석은 결국 일년을 휴직했다.


쉬는 동안 그 녀석은 우리 회사 근처에 있던 체육관에 다녔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야근하던 나를 불러내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셨다. 난 매일 만나줄 순 없었지만 되도록 만났다. 또 SNS에서 잘 있으라는 글을 보고싶지 않아서... 회사에 눈치가 보여도 짬을 내어 만났다.


건강하고 여유로운 생활 덕분일까. 그 녀석은 참 많이 괜찮아졌고, 행복해했다. 자주 즐거워했다. 인생이 참 살만하다고 했다. 회사에 복귀하기는 싫어했지만 복귀하고 나서도 회사에서 받은 쿠폰이며 선물들을 싸들고 내 일터까지 찾아와 나눠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녀석이 괜찮은 줄 알았다.

괜찮아진거라는 그 착각을 철썩같이 믿어버렸다.



결국 바다를 건너 바로 돌아올 방법을 찾지 못했다.

가는 길을 지켜보기는 커녕, 장례식장에 발도 디디지 못했다.


마지막 통화가 사무쳤다. 내가 그날 바로 만나주었더라면, 힘들다는 푸념이라도 한번 들어주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하필 그때 휴가가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대신 내일 만나서 맛있는거 먹자! 라고 했더라면, 그 녀석은 다른 선택을 했을까?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온 힘을 쏟아야할 때였지만 머리가 정지해버린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겨우 퇴근하고 나면 집에 가는 내내 울었다. 가족들에겐 티도 못 내다가 잠들기 전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미안해서 울고 괘씸해서 울고 그리워서 울었다.

나도 결국 회사를 한달 쉬었다.



이럴 때일수록 뭔가 해야한다는 선배 손에 이끌려 필리핀에 갔다. 한국에 있는것 보다 덜 괴롭지 않을까 싶어 따라나선 그곳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다.

물 속은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물 속에선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물에서 열흘을 보낸 덕분에 나는 그래도 조금 괜찮아졌다.


그렇지만 그 녀석의 이름을 다시 입에 올리는 데에는 일년 반이 걸렸다. 휴직을 신청할 때 빼고는 친구가 죽었다는 얘기를 하지도 않았다. 그 얘기를 내 입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자살이라는 단어는 그 녀석 이름과 함께 입에 올릴 수가 없다. 친구들이 그녀석을 추억할 때면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녀석을 아는 친구들은 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니가 그날 만났더래도 언젠가는 이렇게 됐을 놈이라고. 그 녀석은 가버렸고, 나는 살아있으니까- 산 사람이라도 잘 살라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나 잘못이 아니라고.


지금은 머리로는 알고 있다.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가슴으로는 아마도 평생 인정하지 못할 것 같다. 가슴에서 점점 더 굳어져가는 녀석에 대한 부채감을 조금 덜어볼 수 있을까 싶어, 두번째 기일을 앞두고서야 겨우 글로 적어본다. 아직도 이 얘기를 입으로는 말할 수 없어서. 글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글은 물과 비슷하게 모든 걸 포용하니까.



그 녀석한테 한번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의 그 시니컬한 미소로 '아 됐어 괜찮아' 라고 말해주면 그땐 나도 완전히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미안하다고 말할 방법이 없어 수취인 없는 글을 공중에 띄운다.


다른 누군가가 이 글을 읽는다면. 나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을 뒤로 미루지 않길 바라며.


친구는 다음에 만나지 뭐.

부모님께는 나중에 잘해드려야지.

- 라고 안이한 생각을 하지 않길 바라며.



벌써 2년.

줄 수 있는게 졸렬한 글 뿐이라 미안해.


https://brunch.co.kr/@jesuckchun/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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