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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Dec 10. 2015

바퀴 두개가 그려내는 여유

자전거가 만든 네덜란드의 풍경들

'네덜란드'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전거다.


많은 유럽의 도시들이 자전거를 사랑하지만, 네덜란드는 유별나다. 암스테르담은 대도시인데도 자동차를 보기가 쉽지 않다. 빽빽한 건물, 좁디 좁은 도로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선호하게 되었을테지만, 수백년간 도로 넓힐 생각도 하지 않고 자전거를 애용하는 걸 보면 이들은 자전거 자체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Amsterdam, Netherlands ⓒ제석천

암스테르담의 자전거 도로는 늘 질서정연하다. 도로가 좁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앞 사람이 느리게 가더라도 추월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철저히 자전거 신호등과 수신호 체계를 지키며 여유롭게 운행한다.


조금이라도 빨리가려고 기를 쓰는 복잡한 서울의 길에 익숙해있던 내 눈에 비친 암스테르담의 길은 차분함과 안정감, 그 자체였다.

Amsterdam, Netherlands ⓒ제석천

자전거도로 옆을 걷고 있으면 출근부대의 자전거에서 들리는 삐걱삐걱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온다. 한명당 자전거를 평균 두세대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네덜란드인데도, 출근길 자전거는 하나같이 기어도 없는 오래된 놈들이다. 아마 저 자전거니까 속력을 내서 추월하는건 불가능하겠다... 싶을 정도로.


낡고 단조로운 자전거들이 삐그덕거리며 길 위를 굴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주인과 함께 보낸 세월이 그대로 느껴진다. 자전거와 주인이 한몸처럼 친숙해 보여 삐걱거리는 소리 마저 정감있게 느껴진다.

Amsterdam, Netherlands ⓒ제석천

이곳 자전거들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걷기도 전에 자전거 안장에 오른다는데, 고수일수록 여유가 있다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갑자기 보행자가 지나가도 자전거는 몇발짝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선다. 서울에선 길을 걷다가 뒤에서 벨을 땅땅거리며 달려오는 자전거 소리에 화들짝 놀란게 한두번이 아닌데. 이곳 자전거들은 절대 보행자를 헤집고 다니지 않는다.

물론, 나 같은 외국인들이 아니면, 보행자들 역시 자전거 신호체계를 알아서 잘 지키기 때문에 별로 부딪힐 일도 없다.

Amsterdam, Netherlands ⓒ제석천
Amsterdam, Netherlands ⓒ제석천

네덜란드는 시민의식이 높기로 유명하다. 지켜야할 건 철저히 지키고, 지켜받아야할 권리도 철저히 보장받는. 자전거 타는 모습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시민의식.


암스테르담 시내를 며칠 거닐며 이들이 자전거 타는 풍경을 보고있노라면,  높은 시민의식을 만들어낸것 역시 자전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자전거는 그 어떤 보호막 하나 없이 탑승자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내 모습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탈것. 마주오는 상대와 눈을 마주치고, 옆 사람의 얼굴을 오롯이 볼 수 있는. 상대의 숨결마저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 그 누가 서로에게 삿대질을 할 수 있겠는가. 내 얼굴과 온몸마저 드러나있는  순간에 그 누가 규율을 위반할 수 있겠는가.


차와 차로 마주해야하는 자동차의 도시에선 욕설과 비난이 자라났지만, 눈과 눈이 마주치는 자전거의 도시에는 여유와 배려가 떠나지 않았다.

Zaanse Schans, Netherlands ⓒ제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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