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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Nov 27. 2015

진짜 '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배우는 '쉼'에 대하여

여행은 대표적인 '쉬는 법'이다.

매일 똑같은 생활, 똑같은 장소에 매여 있는 삶이라 그런지,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행'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내가 그렇다.

나에게 휴가란, 일을 안 하는 시간이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이란 의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여행에 집착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다.


떠나고 싶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이 반복되는 일상을 깨고 싶기 때문이다. 일상을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게 정말로 '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출근하는 것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야근하듯 밤 늦게야 숙소에 돌아오는 빠듯한 일정. 하루에 도시 하나는 다 봐야 뿌듯하다는 사람들. 비단 패키지 관광자들뿐만 아니라, 내가 여행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정말로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지런하게 여행한다. 어쩌면 이게 여행을 잘 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비용대비 효율/ 경험의 축적/ 견문 넓히기. 이런 '목적'이 있는 여행이 진짜 여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여행은 결코 '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 '휴양지'라고 분류된 곳에 가서 하루종일 바다와- 리조트의 수영장과- 마사지를 즐기면 어떨까? 나랑 내 친구들이 "이번 여행은 그냥 쉬러 갈거야." 라고 말하는건, 해안가에 있는 리조트에 가서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호화로운 리조트 식당에서 밥 한끼 먹을 때마다 '이게 얼마라고????'를 외치고, 돌아와서도 카드 명세서 보고 한숨 내쉬는 스스로를 보면, 이게 정말 '쉬는' 게 맞나- 싶다.


맞다면, 왜 쉬는건 이렇게 비싸야만 하는걸까.

Voldel Park, Amsterdam, Netherlands ⓒ제석천

겨우 열흘만에, 네덜란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건- 네덜란드 사람들이 너무 '잘 쉬는' 것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이 참 많다. 바다를 메워 겨우 조그만 땅덩이 만들어낸 네덜란드인데, 땅이 귀하기는 겨로 우리보다 덜하지 않을텐데, 길이 좁고 시내가 복작복작하기는 서울이랑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이 나라- 공원에는 절대 땅을 안 아까워 하는 것 같다. 넓은 잔디밭과 우거진 나무숲은 커녕, 모래 깔린 놀이터 하나 찾기 힘든 서울에 사는 나는 이 녹원이 부럽기 그지없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 좁은 골목- 좁은 도로- 좁은 운하... 복잡하고 답답해보이는 암스테르담 시내에 비해, 공원은 정말 넓고 탁 트여있다. 시내 도로보다도 더 넓은 자전거도로가 거대한 공원 둘레를 감싸고 있고, 사람들은 가족들과- 연인들과 자전거를 타며 공원을 즐긴다.


Voldel Park, Amsterdam, Netherlands ⓒ제석천


통상적으로 오후 4시면 퇴근하는 네덜란드 사람들. 여유로운 오후 시간은 대부분 가족들-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다고 한다. 잦은 야근으로 늘 피곤에 쩔어 있고, 겨우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술이라도 한잔 넣어줘야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풀리는것 같은, 내가 아는 '일상'과는 많이 다르다.


4시가 넘으면 시내 곳곳에 있는 알버트하인Albert Heijn 슈퍼마켓은 저녁거리 장을 보는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부부가 팔짱을 끼고 신선한 식재료를 고르는 모습을 보면, 저런거야말로 '행복한 결혼', 혹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일까... 싶다.


저녁식사 시간도 지나고 나면, 넓은 공원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무 거리낌없이 풀밭에 앉고, 누워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공원에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주 간혹, 피크닉 가방을 들고 나와 저녁식사를 하는 가족들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은 강아지를 데려와 강아지가 마음껏 뛰어노는걸 지켜보거나, 호숫가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풀밭에 앉아 연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IJ, Amsterdam, Netherlands ⓒ제석천
IJ, Amsterdam, Netherlands ⓒ제석천

주말이 되면, 암스테르담 곳곳을 가로지르는 운하는 작은 보트들로 가득찬다.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차는 안 사더라도 -사도 타고 다닐 수 있는 도로 상황이 안 되니까- 집마다 보트는 한대씩 구비해 놓는다고 한다. 평소에는 집 앞 운하 가장자리에 보트를 '주차'해두었다가, 주말이 되면 드리웠던 커버를 벗기고 운하를 '드라이브' 한다. 네덜란드에서 흔치 않게 해가 쨍쨍한 날이면 젊은이들이 보트 위에서 맥주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배는 음주운전 괜찮은건가...?)


그리고 기분 내키는 사람들은 암스테르담 중심을 흐르는 거대한 바다강까지 배를 타고 흘러나간다. 아주 유유자적, 천천히, 바다와 강을 즐긴다.


Amsterdam, Netherlands ⓒ제석천

1년 중 구름없이 맑은 날이 20일도 안 된다는 네덜란드에 해가 쨍- 나면, 사람들은 전부 건물 밖으로 나와 이 귀한 햇살을 즐긴다. 대낮에 시내의 모든 잔디밭과 온갖 광장, 노천 카페를 가득 메우고 앉은 사람들을 보면,  '대체 이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이 시간에 여기 있는거야?' 라는 생각이 절로 나온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해를 즐길 권리가 본인의 의무보다 앞서는 나라 같다.




아마도 내가 네덜란드 사람들의 '쉼'이 부러웠던 건 두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복작거리는 도심에서도 언제든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숲, 강, 햇살, 그 무엇이라도.


그리고,

이들에게 '쉼'은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것.


이들이 쉬는걸 보고 있으면, 평일에는 오로지 일, 주말에는 잠을 자거나 퍼져서 체력 회복하기 급급, 1년에 한번 있는 휴가마저도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압박을 받았던 내 지난 날들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물론... 모든 삶이란, 밖에서 보면- 또, 지나가면서 힐끗 보면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저들도 실제로는 진짜 행복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 언제나 '쉼'이 함께한다는 건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게도 난 네덜란드 사람은 아니지만, 아마도, 분명히, 내가 살고있는 이곳에서도 잘 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리라.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뤄왔던 잘 쉬기' 에 대해 이제는 꼭 한번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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