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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Nov 22. 2015

암스테르담의 '광장' 즐기기

네덜란드다운 '텅빔' 의 매력

전 유럽적인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암스테르담에는 '광장'이 참 많다.


광장은 네덜란드어로 Plein. 플레인. 아무것도 없다. 텅 빈 곳이라는 뜻일까.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대부분인 네덜란드 하늘 아래 텅 빈 광장은 어쩌면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때론 예상치 못한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암스테르담의 광장이다.

24시간 교통권 한장 끊어 하루종일 암스테르담 시내 광장만 돌아다녀도 충분한 여행이 되리라.




암스테르담의 광장들은 파리나 로마처럼 화려한 장식물이나 분수는 없다. 말 그대로 '비어 있는' 공간 그 뿐인 경우가 많다. 냉철하고 무뚝뚝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성향이 공간에도 그대로 묻어있다.


네덜란드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대규모 간척사업에 필요한 돈을 충당하기 위해 엄청난 세금을 걷었다. 건물 너비와 장식, 창문 개수, 심지어 커튼 길이별로 세금을 매기는 바람에 암스테르담 시내는폭이 좁고 단조로운 건물들 일색이다. 광장을 별 장식 없이 놔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을까.


그래도 '국가 주도'로 세워진 동상은 가끔 만날 수 있다.네덜란드 국가 철학의 기반을 지지하고 있는 스피노자, 그리고 네덜란드가 고흐보다도 더 자랑스러워하는 렘브란트.


'자연철학'으로 유명한 스피노자의 동상은 당당히 시청 앞 워털루 광장에 자리잡고 있다. 이름과 함께 적혀있는 글귀는 'Het doel van de staat is de vrijheid',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

유럽에서도 시민의식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국가에 대한 의무도 철저하게 지키지만, 그만큼 자신의 권리도 철저히 지킨다. 권리가 침해당한다고 느끼면 격렬히 저항하는게 네덜란드의 시민이다. 왜 스피노자의 동상이 시청 앞에 있는지 알 것도 같다.


'렘브란트 광장'에 있는 렘브란트의 동상 앞에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야경꾼> 등장인물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스페인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민병대의 모습을 그렸다. 네덜란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자유를 쟁취한 민병대의 모습이라는 것 역시 상징적이다.



레이체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원래 여기는 밤에 와야 진가를 알 수 있는 곳이라는데, 하절기에는 오후 10시에도 해가 질까말까한 네덜란드에서 어두컴컴한 밤을 기다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Leidseplein, Amsterdam, Netherlands ⓒ뚜르

트램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있는 맥주집 테이블에 앉아본다. 레이체 광장은 주변에 있는 맥주집들에서 내놓은 테이블로 가득차 있다. 대낮인데도 이미 테이블 곳곳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덕분에 키 작고 머리 까만 외국인의 낮술도 그렇게 부끄럽지만은 않다.


암스테르담은 도시 전역에서 대규모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하이 서울 페스티벌'쯤 되려나. 세계각국의 예술가들이 들어와 흥미로운 축제를 벌이지만 신경 안 쓰면 모르는 그런... 페스티벌.

암스테르담의 축제 역시 동네 슈퍼마켓 찾는데도 한참이 걸리는 여행자에게는 와닿을리 없는 축제였다.

Leidseplein, Amsterdam, Netherlands ⓒ뚜르

아마 페스티벌에 참가하러 온 일행인 것 같았다. 처음으로 '아, 암스테르담 축제 중이었지' 라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라틴계로 보이는 청년 몇명이 낮술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레이체 광장 한가운데에 섰다. 어색한 영어로 브라질 유술인 '카포에라'에 대해 설명하더니 이내 거침없이 카포에라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춤 같기도 하고 묘기 같기도 한 고난이도 동작들과, 아마존 전사를 떠오르게 하는 거친 대련 기술들.

윗옷을 벗어던지고 열정적으로 카포에라를 선보이는 브라질 청년들에게  광장이 떠나갈듯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기대에 없던 사건이 선물처럼 찾아오는 곳, 그곳이 네덜란드의 '광장'이다.



예기치 않은 박력 넘치는 스트릿 공연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공연을 마친 이들은 나를 한참동안이나 신기하게 쳐다봤다. 공연에 빼앗겼던 시선을 되찾은 건너편 맥주집 사람들도 드문드문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동양인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네덜란드에서는 익숙해져야 하는 시선인데, 아주 가끔은 무시당하는 것 같아 슬프다.

이런 '구경당하는' 시선을 느낄 대마다, 한국에 돌아가면 절대로 외국인들, 특히 동남아계 외국인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시청 앞에 있는 워털루 광장에는 -스피노자 동상뿐만 아니라- 굉장한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대규모 벼룩시장.

진정한 벼룩시장 답게 중고물품이나 생활소품들이 주된 상품이다. 헌옷, 중고 자전거, 헌책 등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관광객들를 위한 작은 기념품들도 있고, 그 유명한 '대마초 캔디'도 판다. 물론 대마초 캔디를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합법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네달란드에서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가끔 보이는 대마초 카페도 거의 텅텅 비어있는게 실상.

약물의 효과보다도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결과다.


(혹시나 해서 첨언하는데, 네덜란드 발 비행기에서 내린 짐들은 마약탐지견이 일일이 검사한다. 꿈에라도 대마초 '기념품' 따위는 사올 생각일랑 말길!)


Waterlooplein, Amsterdam, Netherlands ⓒ뚜르

워털루 광장 벼룩시장은 문 닫은 날도 매력적이다. 각 가게마다 그 가게의 특징을 담은 그림과 사진으로 셔터를 장식해 두었다.

저 시계점이 문을 열면  오래된 시계만큼이나 나이든 할아버지가 저 모습 그대로 시계를 고치고 있을 것만 같다.


정돈된걸 좋아하고 법규라면 칼 같이 지키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시청 앞에 벼룩시장을 만든 것도 의외인데, 건물을 장식할줄 모르는- 아니 장식따위 안 하는 이 나라에서 노점을 저렇듯 예쁘게 꾸며놓았다는 것도 의외다.


'의외'를 볼 수 있는 곳. 차갑고 이성적이기만 할 것 같은 네덜란드 사람들의 깊은 따스함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암스테르담의 광장인것 같다.


* 자전거 애호가라면 워털루 광장 벼룩시장은 꼭 들르길 바란다. 자전거가 주 교통수단인 도시답게, 듣도보도 못한 갖가지 자전거용품들을 파는데, 그 종류도 어마어마하게 다양하다.



텅 빈 광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네덜란드의 역사와 정신이 느껴진다. 이렇게 시민의식을 온 몸으로 내뿜는 도시가 어디에 또 있던가.


암스테르담에서 여유로운 하루가 생긴다면, 꼭, 광장 투어를 계획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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