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배운 삶의 '비움'
인도로 여행을 떠나기 전, 난 다소 어이없는 헤어짐을 겼었다. 꽤 오래 전이라 기억이 불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헤어짐 때문에 인도 여행을 결심한 건 아니었다.
내 인생 첫 배낭여행을 -감히- 인도로 가겠다고 결심했던 데에는 어릴적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땐 왜 인도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었는지.
여튼 난 인도로 가기 위해 휴학을 했고, 꽤 오래 해왔던 아르바이트도 그만두었다. 용돈으로 쓰고 남은 아르바이트비를 닥닥 긁어 비행기표를 질렀다.
떠나기 전날, 그 사람이 잘 다녀오라며 선물을 주었다. 그 선물을 받아든 이상, 그 사람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여행에서 배낭의 무게는 전생의 업
...이라고 인도에서 만난 한 여행자가 알려주었었다.
인도에서의 여정은 내 전생의 업을 일부 버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뉴델리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에서 입었던 두꺼운 옷을 버렸다. 인도의 봄날씨마저 춥게 느껴질 누군가가 유용하게 입어주길 바라며.
그렇게 시작된 인도 여행은 '생존'이었다.
지금처럼 여행코스나 시설이 발달한 시절은 아니었던지라, 가난한 배낭여행자 예산 내에서 참을만한 숙소 찾기와 배탈 안 날 식당 찾는게 제일 중요한 일과였다. 시도때도 없이 달라붙는 삐끼들, 천연덕스러운 사기꾼들을 피하기 위해 언제나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했다.
수행으로 업보를 정화하는 수도승처럼,
짐을 하나씩 줄일 때마다 행복했다.
짐을 줄이는만큼 내 어깨가 가벼워지니까.
서울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가지지 못해 안달이었고, 더 얻지 못해 속상했고, 남의것을 희생시킬지언정 내껄 자진해서 내놓는다는건 상상도 해본적 없었다. 그건 나쁜게 아니라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다.
처음엔, 내 짐 줄여보자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물건을 내놓았다. 인도에서 구하기 힘든 샴푸도 로션도 내껄 먼저 쓰라고 선뜻 내주었다. 그렇게 빈 샴푸와 로션 통을 버리면서, '버리는 것의 가벼움'을 처음으로 알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 가방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가끔은 새로운 걸 담아야할 때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짊어지고 왔던 많은 것들이 내 가방을 떠났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것들이 내 머릿속을 떠났다.
헤어졌음에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사람.
코앞에 닥친 취업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모두가.
아마도 처음엔- 매끼니 탈 나지 않을 밥과, 매일밤 안전한 숙소를 고르는게 가장 큰 고민이어서, 기본적인 '생존'에 대한 고민 뿐이니까, 더 고차원적인 고민들을 어쩔수 없이 잊게 되었던 것 긑다. 더 고차원적인 고민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말이 더 맞으려나...
하지만, 결국은. 내 가방처럼 내 머릿속도 버리는만큼 가벼워질 수 있다는걸 알았다. 내 인생을 위해 꼭 필요하다 생각했던 고민들마저도, 때론, 버릴줄 알아야한다는 걸 알았다. 처음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내 삶에 진지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왔었는데. 고민이 내 삶을 더 발전시키는거라고, 그렇게도 생각해왔었는데. 그 생각이 언제나 옳은건 아니었다.
친구들이 모두 죽어라 취업 준비를 할 때
난 인도로 떠났었다.
모두가 지금은 너의 앞날을 걱정할 때라고 말했지만, 그때 난 인도에서 다음 끼니로 먹을 밥 걱정 뿐이었다.
젊어서 고생해야 나중에 행복하다고- 지금은 고민하고, 공부하고, 준비할 때라고 들었지만,
난 인도에서 지금도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난 인생에서 낙오하지 않았고, 제대로 취직도 했으며, 대부분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오히려 죽어라 취업 준비해서 취직을 '잘'했던 친구들보다 더.
머릿속을 비워도 큰일 나지 않는다.
오히려, 머리가 가벼워진 그 시간만큼의 즐거움과 행복이 남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