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짝 떨어져야 알수 있는 것은...
저런 집에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했다.
개인 장비가 가득한 창고 문을 열어놓고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드는 집 주인을 보면서,
저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워했다.
여행에서는 끊임없이 아름다운 장소를 발견한다.
유적지거나 명소여서가 아니라,
지나가는 골목.... 그 골목 끝에 있는 집.... 저 멀리 보이는 빨간 지붕들... 곳곳이 다 그림같은 곳 투성이다.
아마도, 낯설기 때문에. 이국적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풍경이기 때문에.
단골로 자주 방문하던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힘든 일을 겪고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아름다운 풍경과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 덕분에 말도 안될만큼 큰 위로를 받았었다.
그곳을 떠날땐 마치 앨리스가 빠진 토끼굴에 다녀온 것처럼, 너무나 비현실적인- 행복한 꿈을 꾸다 깬 것만 같아서 펑펑 울었더랬다.
이렇게 행복했었다는게 감사해서, 그리고 그 꿈이 끝났다는 게 아쉬워서.
문제는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단 것이다.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지도 위에 너무도 명확한 위치를 갖고 있는 곳이라는 것.
이후 일년에도 몇차례 그곳을 다시 찾았고, 쉼이 필요한 많은 지인들에게 그곳을 소개했다. 그곳에 가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련해졌고, 친구들이 그곳에서 잘 쉬다오면 내 마음도 좋았다.
주인장과도 친해져서 종종 한국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대신 받아다주기도 했고, 갈때마다 게스트하우스에 필요할만한 선물들을 한아름 사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비밀스런(?) 루트로 주인장이 나를 포함한 몇몇 단골들에게 교묘하게 과한 숙박비를 청구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물건을 배달한 내 노력과 선물을 사는데 쓴 돈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원래 자진해서 했던 일이었건만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아깝기 그지 없었다.
이후로도 단골이기 때문에, 또 자주 가기 때문에, 친하기 때문에 그곳의 수많은 '내막'들을 알게 되었고, 그곳은 더이상 나에게 '힐링'의 의미가 될 수 없었다.
사실 그곳이 변한건 아닌데.
다른 것이라면 내 마음, 내가 알게 된 것뿐인데, 눈물 흘릴만큼 아름다운 그곳은 한순간에 지긋지긋한 곳이 되어버렀다.
내가 살고 싶었던 그 집에 사는 사람도, 실은 나와 별반 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가끔 행복하고 가끔은 불행하며 보통은 별다를 것 없는 일상.
기차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들판은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한 노동의 현장일 것이다.
여행이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낯선 곳'에 가서 내가 '낯선 사람'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이 나와 가까워지는만큼, 생소함과 생경함이 사라지는만큼, 여행의 아름다움은 빛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