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과 여행으로 세부 CEBU 한 바퀴 (3)
대표적인 열대 휴양지로 유명한 필리핀의 세부는 사실 서양 다이버들이 발견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이버들이 발견한 지역이 바로 이곳, 거북이들의 섬, '모알보알 Moalboal'이라고도 전해져 온다.
스쿠버 다이빙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다소 과장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모알보알이 다이버들에 의해 발전해온 곳임에는 틀림없다. 세부 막탄 시내에서 산길을 꼬박 달려 세시간 걸리는, 사실 도시라고도 할 것 없는 작은 시골 마을인데, 이 조그만 마을에 전 세계의 다이빙샵이 모두 모여 있는 걸 보면 그 전설 아닌 전설이 진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필리핀의 많고 많은 섬들을 제치고 이 작은 시골 마을이 다이버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것은 '페스카도르 섬 Pescador Island'과 거북이, 딱 이 두가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구름같은 정어리떼가 정착해서 더 각광을 받고 있긴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 오롯이 솟아오른 작은 섬, 어부들을 지켜주는 등대가 있었던 '어부들의 섬' 페스카도르 아일랜드.
지형적인 특색 덕분에 온갖 어종을 만날 수 있는 천혜의 보고인데다 아름다운 산호들도 잘 보존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 섬에 뛰어들기 위해 모알보알을 찾는다.
하지만, 다이버들을 모알보알로 이끄는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거북이다
마을에 '거북이의 섬'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이니 예로부터 거북이가 많았던 곳이었다는 건 분명하다. 게다가 지금 모알보알 앞바다에 살고 있는 가장 큰 거북이는 추정 수명이 3~400살 정도 된 것 같다고 하니... 원래 이 곳의 진짜 주인은 거북이들일지도 모른다. 가끔 내 눈 앞에 있는 거북이가 조선시대부터 살아왔던 '분'이라 생각하면 알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슬프지만, 수백년간, 아니 그 이상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왔던 거북이들이 모알보알을 떠났던 시기도 있었다. 거북이 포인트로 유명세를 타고 수많은 다이버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시도때도 없이 만지고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 사람들의 등살에 못이겨 수많은 거북이들이 모알보알을 떠났다. 한동안 모알보알은, '거북이의 섬'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운이 좋아야 거북이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필리핀 정부 차원의 강력한 단속과 현지에서 살고 있는 의식있는 다이버들의 지속적인 캠페인으로 지금은 많은 거북이들이 귀향(?)하고 있는 추세다. 지금도 모알보알은 다이빙시 장갑 착용 금지 -장갑 끼고 마구 생물들을 만질까봐.. 라고 한다- 수중 생물 촉수 금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실제로 감시원들이 물 속에서 감시와 적발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이번 새해를 맞아 찾은 모알보알에서는, '거북이 축제'였다고 해도 될만큼 수많은 거북이들을 만나고 올 수 있었다.
처음 모알보알을 찾는 다이버들에게 현지인들이 가장 먼저 당부하는 것은 '절대 거북이를 잡지 말것!' 이다.
자연보호 캠페인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거북이를 잡는 것이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거북이들은 딱딱한 산호를 깨어 먹을 것을 찾는데, 그만큼 이빨(정확히는 입이라고 해야하나)이 매우 단단하여 한번 깨물면 손가락이 절단될 정도라고 한다. 더욱이 목을 자유자재로 늘릴 수 있는 거북이의 신체구조상 어딜 잡아도 물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더해 거북이 등딱지의 모서리는 무딘 톱날처럼 억세서 손으로 움켜쥐기라도 한다면 아주 심한 상처를 입게 된다고 한다.
까맣고 동그란 눈을 보면 순수하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온몸이 무기인 녀석이다.
거북이들이 뭍에서는 느리지만 물 속에서는 날래다고 알려져있는데 -실제로 굉장히 빠르게 헤엄치기는 하지만- 무거운 등딱지 때문에 움직임이 아주 민첩하지는 못하다. 덕분에 물 속에서도 웃지 못할 몸개그들을 자주 연출하곤 한다.
새해 마지막날엔 부채산호에 걸려 버둥대는 거북이를 만났다. 몸집을 보아하니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은 녀석인 것 같은데, 그물처럼 얼기설기 얽힌 부채산호 사이에 섣불리 들어섰다가 발이 걸린 모양이었다. 이때만큼은 현지 가이드가 '촉수엄금'의 룰을 어기고 다가가 거북이 발을 산호에서 꺼내주었다. 녀석은 산호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수면으로 숨을 쉬러 날아갔다.
어류와 달리 아가미가 없는 거북이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물 위로 숨을 쉬러 올라가야 한다. 제때 숨을 쉬지 못하면 죽는다. 현지 가이드 말로는 어린 거북이들이 바위틈 같은 곳에 걸려 질식사 하는 사고도 가끔 발생한다고 한다.
이 녀석도 이 타이밍에 우리와 만나지 못했다면 큰일 났을지도 모른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거북이가 장수와 복을 상징하는 동물이었고, 제주도에서는 숨 쉬러 올라온 거북이의 머리를 보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도 있는데... 새해 전날 이런 인연으로 만났으니 너도 나도 복 많이 받도록 하자 거북아.
거북이 등껍질은 딱딱해서 뼈 같은 느낌일까- 생각했었는데, 저 등껍질에도 모두 신경이 닿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끼가 끼거나 미생물들이 번식하면 매우 간지러워한댄다.
대부분의 거북이들이 등이나 배를 청소해주는 청소고기 -주로 빨판상어라고 부른다. 이 청소고기들은 상어도 아닌데 이름은 상어인 재밌는 녀석들- 를 데리고 다니는데, 종종 성질 급한 아이들은 빨판상어의 청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렇게 바위틈에서 등을 벅벅 긁곤 한다.
기가 막히게도 빨판상어를 데리고다니는 녀석들은 등이 깨끗한데, 외로이 홀로 다니는 녀석들은 꼭 등딱지가 물이끼나 따개비 같은 것들로 어지럽혀져 있다. 등딱지만 봐도 그 거북이의 성격을 지레짐작할만 하다.
하나같이 순박한 눈을 한 녀석들도 각자 나름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 녀석 한 녀석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이 아이들이 살고 있는 바다를 더 깨끗하게 지켜줘야겠다는 뜬금없는 사명감이 불타오른다. 아, 아이들이 아니라 나보다 연배 높은 할배일 수도 있을텐데, 실례!
하지만, 할배라고 하기엔 거북이들은 종종 너무나도 귀엽다.
사지를 쭉 뻗고 있는 거북이가 보여 혹시나 아픈가- 걱정돼 가까이 가봤더니, 뭐가 그리 피곤한지 동굴 앞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물살에 출렁이다 벽에 머리를 쿵- 쿵- 박고 만다. 그래도 잠이 안 깨는지 한참동안 물살에 몸을 맡기고 꾸벅꾸벅 조신다.
이런 귀여움 때문에 거북이는 보고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다이버들이 그 어떤 희귀한 수중생물을 봤을 때보다도 거북이 한마리 봤을 때에 더 환호한다. 거북이에겐 정말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긴 한가보다.
기본적으로 거북이들은 사람들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단지 귀찮아할 뿐. 예전엔 사람이 옆에 다가가면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속도를 맞춰 함께 유영하는걸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거북이들이 사람과 마주치면 방향을 홱- 틀어 얼른 도망가버린다. 아마 그 동안 꽤 많은 귀찮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겠지.
물 속에서 헤엄치는 거북이는 정말 빨라서, 가끔 다이버가 카메라를 들고 쫓아가려고 해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 까맣고 영롱한 눈을 들여다 보고 싶은데... 아무리 안 괴롭히겠노라고 온몸으로 표현해도 이미 지쳐버린 거북할배들은 영 들어주시질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만, 조금만 더, 자연을 아끼는 마음으로 바다를 대하면, 언젠가는 거북이의 새까맣고 깊은 눈을 보며 함께 유영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나보다 더 긴 삶을 살고, 나의 후대와 또 그 후대까지도 함께 살아갈 거북이들이 건강할 수 있는 세상이 계속 되기를.
(계속되는 '모알보알' 의 새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