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퇴근 후 집으로 출근한다
저녁 6시 30분. 이제 퇴근 정시 후 한시간 쯤 일을 더 했으니 슬금슬금 퇴근할 준비를 한다. 나는 여전히 야근이 성실함의 지표라고 생각하신는 팀장님의 눈치를 보는 타입이므로, 적절한 퇴근의 타이밍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몇명이나 퇴근했는지 자리를 둘러보며 컴퓨터를 끌까 말까 고민한다. 음, 이쯤이면 적당하군.
1층으로 향하는 엘레베이터를 누르고 짧은 숨을 몰아 쉰다. 오늘 하루도 순삭이로군. 퇴근으로 살짝 들떠있는 하강 엘레베이터를 타고 나도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구두 속의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 엘레베이터 문을 쳐다본다. 정문을 나서고 전화를 건다. "저녁 먹고 있어? 엄마 지금 퇴근해. 빨리 갈게!" 이제 집으로 출근이다.
회사 생활 10년차. 워킹맘 6년차. 워킹맘은 하루 두번 출근한다.
나는 운이 좋아 친정 엄마가 건강하고, 운이 좋아 엄마가 아이를 봐주고, 운이 좋아 엄마와 집을 합쳤다. 운이 매우 좋아 모든 집안일과 육아는 엄마가 한다. 나의 구원자 우리 엄마!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봄에 결혼하여 그해 여름에 나의 아이, 루크를 낳았고 출산 직후 몸이 나빠지면서 일하던 엄마에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7개월의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고 난뒤의 삶은 매일 야근이었다. 회사에서의 야근이 아니라 집으로 출근한 뒤 야근. 부랴부랴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이제 8개월 된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바톤터치 하듯 받아 밥을 먹이고 젖병을 씼고 수십장의 아기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이유식을 만들고 나와 남편의 빨래를 해야했다. 남편은 야근과 회식이 많았다. 일도 육아도 집안일도 매일 반복되는 과다한 일의 양이 버거웠다. 회사의 일이야 연차가 쌓이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업무에 매진하지 못하고 늘 쫒기듯 일찍 퇴근해야한다는 것 말고는 괜찮았다. 집안일은 그렇지 않았다. 기본적인 생활이라 하지 않으면 티가 너무 많이 났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아이가 발 밑에서 울었다. 놀아달라고 바지를 잡아당기지만, 당장의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종일 보고싶었던 아이었는데도, 퇴근 후 놀아줄 수 있는 많지 않았다. 결국 시간을 돈으로 샀다. 남편의 셔츠는 크린토피아에 맡길 수 밖에 없었고, 가끔은 청소 업체의 도움을 받아야만 소파뒤, 침대 밑을 청소할 수 있었다. 쉴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잠든 뒤, 아침이 밝아오기 전 까지 뿐이다.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매일 밤 울었다. 회사에서 일도 마음 껏 할수가 없고, 집에 와서 아이를 실컷 볼수가 없고, 집안일도 나만 하는 것 같았다. 신혼 초반에는 참고 또 참다가 어느날 터져버렸다. 펑펑 울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고 남편에게 화를 냈는데, 남편도 똑같이 화를 냈다. 자기 역시 힘들고, 대한민국 평균 남자보다 훨씬 가정적이며 집안일도 많이 한다면서.
네가 와이셔츠 한번 빨아준 적 있냐는 남편과는 2년만에 끝끝내 갈라섰다.
그리고 아이와 나와 나의 엄마 셋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퇴근 후 집으로 출근한다. 하지만 집으로 퇴근하는 발걸음이 예전과는 다르다. 엄마가 있어 나는 집에 도착하면 아이와 곧장 놀아주고, 조금은 놀아주고, 씻기고 머리를 말리고, 책을 읽어주고 재운다. 물론 나도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나도 할 수는 없지만 집안일로 전전긍긍하며 살지는 않는다. 집으로 출근하지만 나는 집으로 출근하는 놀이 선생님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지금 누리는 이 안락함이 모두 나의 엄마의 희생이고, 대부분의 워킹맘들은 이렇지 못한다는 것을. 서둘러 퇴근하고 육아와 집안일을 모두 해내며 매일을 살아가는 그녀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응원한다.